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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태원, 운명으로서의 번역과 『삼국지』/삼국지 전문 비평가 송강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08:57

박태원, 운명으로서의 번역과 『삼국지』

- 박태원,『삼국지』(깊은샘, 2008)

 

1. 시대와 현실의 무게

 

한국에 전래된 외국 문학 가운데 『삼국지』처럼 끊임없이 리바이벌되고 또 리메이크된 작품도 드물 것이다. 박경리 선생처럼 여성 작가이거나 아니면 일전에 작고한 이청준 선생같이 오로지 창작에 몰두한 경우가 아니면 어느 작가 할 것 없이 한 번쯤 『삼국지』 번역에 손을 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출판사의 권유라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도 있겠지만 작품 자체가 지닌 거부하기 힘든 대중적인 마력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삼국지』는 지금까지 그랬고 또 앞으로도 장구히 번역될 처지에 놓여있는 물건 중의 물건이다. 한 마디로 『삼국지』는 영원한 출판 아이템인 것이다. 국내 역자만 보더라도 한용운, 박태원, 박종화, 김구용, 이문열, 황석영 등등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울 정도의 수많은 작가들이 끝도 없이 『삼국지』를 번역하였으니 뉘 아니라서 천하제일기서랴!

 

그런데 이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삼국지』 역자들 가운데 더욱 특이한 예가 있으니 그가 바로 구보 박태원이다. 『삼국지』를 적지 않게 읽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박태원의 『삼국지』 번역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타의 『삼국지』 역자들과는 달리 그는 생의 전환기이자 중대한 고비 때마다 『삼국지』를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처한 시대의 운명일 것이다.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또는 월북 작가로만 인식되는 그에게 『삼국지』라니! 놀랍게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중국소설과 번역은 백화 양건식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미 예견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에게 『삼국지』 번역은 어떻게 보면 창작 활동으로서는 낙수(落穗)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궁극적으로 그 자신을 만들었던 작품인 것이다.

 

2. 박태원과 『삼국지』 번역

 

박태원은 『삼국지』를 번역하기도 전에 『지나소설집』의 출간으로 이미 충분히 중국소설 번역자였다. 그런 그가 일제 말 『신시대』라는 잡지에 「신역삼국지」를 연재하게 된 것은 얼마간 운명이라고 할 것이다. 어느 누구는 이 같은 작가의 고민을 가지고 소설 창작이 아닌 일종의 글쓰기로 나아갔다고도 하였다. 사상적인 억압이 심했던 일제 때 작가의 성향 특히 이념적인 색채를 띠지 않고 그나마 자유롭게 원고를 쓸 수 있었던 유일한 출구였던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사회적인 수요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터,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바로 그 답일 것이다. 『경성일보』에 연재되었던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가 일정한 인기를 누렸기에 그의 번역도 요청되었을 것이다.

 

1930년대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겐차이자, 모더니스트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당시 곰팡이 냄새가 나던 빛바랜 『삼국지』를 자신의 유려한 문장과 산뜻한 빛깔로 새롭게 뽑아내었다. 그가 시작한 「신역삼국지」는 그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현대판 『삼국지』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그의 『삼국지』 번역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정음사 최영해 사장의 권유에 따라 다시 『삼국지』 번역에 착수한 그는 기존의 버전을 새롭게 다듬어 이른 바 정음사본의 기초를 놓게 된다.

 

그러나 6.25를 전후한 박태원의 월북으로 그의 이름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삼국지』의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정음사 사장이었던 최영해는 박태원의 뒤를 이어 나머지 부분을 완역해서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것이 소위 정음사본이라는 것인데 이 『삼국지』의 영향력 또한 대단해서 그 무렵의 식자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월북 이후 박태원의 『삼국지』 번역은 사상적으로 고난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말 억압적인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삼국지』 번역이었는데 북한에서 사상적인 억압을 겪은 이후에 나온 작품이 『삼국지』 번역이라는 데는 기연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의 그의 『삼국지』 번역은 1959년 제1권으로 시작하여 1964년 제6권을 마지막으로 전6권으로 간행되었다.

 

3. 박태원 『삼국지』의 특징

 

북한에서 완역되었던 『삼국지』는 깊은샘 출판사의 노력에 의해 다시금 전10권 형태로 새롭게 부활한다. 『삼국지』 제1권의 서두를 보면 장남 박일영 님의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라는 글이 실려 있다. 글 가운데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정이 잘 드러나 있고 또 『삼국지』 출판과 관련된 저간의 사정이 서술되어 있어서 당시 출판을 전후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번에 나온 박태원 『삼국지』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 과거 『신시대』 연재분을 단행본으로 내던 시절의 박문서관본이나 정음사본과 달리 본문 전체를 번역한 점이다. 따라서 모종강본에 실렸던 원문 한시를 모두 번역하였다는 점에서도 과거 번역본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국내 『삼국지』 번역본 가운데 민음사의 이문열 『삼국지』가 놀라운 판매부수에도 불구하고 모종강본의 한시를 모두 번역하여 수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바 있고, 또 이에 대한 보완 차원에서 창비사의 황석영『삼국지』가 원문의 한시를 모두 번역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황석영의 『삼국지』는 그 계보를 따르자면 과거 박태원 『삼국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작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들 『삼국지』가 어느 하나로 귀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자의 번역 태도나 방법 그리고 문장이나 맛이 다르므로 독자들은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번역에 사용한 어휘에서도 "민울", "모꼬지", "서랑" 같은 표현들이 등장해서 또한 묘한 느낌을 준다. 민울하다는 것은 '민망스러운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함'이라는 뜻이며, 모꼬지는 '놀이, 잔치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임'이란 뜻이다. 이 같은 어휘의 사용에 대해서도 박태원 연구자들이 향후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 한시 번역에서 보여주는 박태원의 유려한 한시 독해 능력은 이번 『삼국지』 번역본의 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자의 『삼국지』 번역본들은 이런 점에서 전공자들의 적지 않은 의문을 자아냈으나 박태원은 놀랍게도 한시의 의취를 잘 꿰뚫어서 풀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리듬감 있는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중 서모찬(徐母讚)이 있다.

 

어질도다 그 어머니

꽃다운 그 이름이 천추 유전하리로다

홀어미로 절개 지켜 집을 옳게 다스리고

아들을 가르치되 내 몸 돌아 안보도다

산 같이 높은 기개 의기도 장할시고

유예주를 찬미하고 위무제를 꾸짖도다

가마와 도끼도 두려울 줄 있으랴

자식 욕이 조상에게 미칠 것만 겁내도다

복검(伏劍)과 동무되고 단기(斷機)와 짝하리라

살아서 이름나고 죽어 제 곳 찾았으니

어질도다 그 어머니

꽃다운 그 이름이 천추 유전하리로다

(복검은 한고조 유방을 도운 왕릉의 어머니 고사, 단기는 맹모단기지교라는 고사에서 유래.)

 

뿐만 아니라 원문에서도 국내 번역본들이 지닌 의문점을 능가하는 좋은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유비가 조조와 대면했을 때 조조의 입에서 나온 영웅론도 그중의 한 예이다. 모종강본으로 보면 제21회로 제2권 273쪽에 나온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는 크나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곧 그에게는 능히 우주를 싸고 감출 기모(機謨)와 가히 천지를 삼켰다 토했다 할 대지(大志)가 있는 자라야 하오."(박태원, 『삼국지』제2권, 2008)

 

이밖에 이 책에 실린 삽화도 그 유래와 인연이 다 있는 것이다. 원래 삽화로 사용된 등장인물도는 청대 모종강본에서 서문과 독법 등이 나오는 첫째 권에서 취한 것인데 이것은 이보다 앞서 1950년 정음사에서 나온 박태원의 『삼국지』에 이미 이들과 유사한 그림이 삽화로 사용된 바 있어서 이번 삽화 사용도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박태원의 『삼국지』는 등장인물도의 화상찬(畵像讚)에 해당하는 한문을 모두 푼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해서체도 있지만 초서와 전서가 대부분이라 석초(釋草) 과정의 어려움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자체로도 독자에게 좋은 삽화 감상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박태원의 이 『삼국지』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 해석에는 과거의 전통적인 해석에 고착된 부분도 있어서 아쉽게 여겨지는 대목도 눈에 보인다. 허나 어느 작품이든 시대적인 한계는 지니는 법이므로 그 자체로 『삼국지』 한국어 번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생각한다. 연의 독자의 일독을 권해마지 않는다.

 

송강호 sehando@hanmail.net 삼국지 번역비평가. 고려대 중문과 졸업. 평론 <삼국지를 찾아서>외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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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트힐
글쓴이 : 박다니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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