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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기독교박물관(숭실대- 한국 초기 개신교 역사 자료 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22:25
                         

의사 존 헤론 선교사에게 고종이 내린 교지

 

헤론 선교사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있으며 최초의 매장 선교사이다.

 

존 헤론(John W. Heron, 惠論, 1857 ~ 1890)은 조선 선교를 자원한 최초의 미국인으로, 국립병원(광혜원) 원장을 지내는 등 의료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헤론은 1883년 테네시 종합대학의 의과대학을 개교 이래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의 안정된 의사 생활 보다는 그의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땅끝'으로 가기를 원했고, 동양의 여러 나라중 '코리아'를 찾아내었다.

장로교 선교 본부를 찾아갔으나, 선교 본부에서는 조선 선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과, 지금이 바로 선교해야할 때라는 의견이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개화파와 척사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1866년에는 9명의 프랑스 신부를 포함한 8천여명의 천주교 신자가 학살당했고,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등 서양의 여러나라들과 대립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조선에는 정식 개신교 선교사는 없었지만, 외국에 있는 조선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1876년 이후, 조선 최최의 개신교인으로 기록된 이응찬이 만주에서 세례를 받았고,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은 미국에서 사절로 있는 동안 복음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이미 조선어로 번역된 마가복음이 발간되어 있었다. 선교본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로부터 조선 선교가 시급하다는 보고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교사와 의사로서 선교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전략까지도 제시되고 있었다. 조선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자 했던 헤론의 열망과는 달리 1884년 알렌, 아펜젤러 등이 먼저 조선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닥터 헤론은 일본에 머물면서 조선어를 익히고 1885년 6월 21일 한성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5년동안 조선인들에게 의술을 베풀며 선교활동을 하다가 1890년 7월 26일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당시 전염병이 돌아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에서 운둔하며 쉬고 있었지만 헤론은 매일 사대문까지 들어와 병든 자를 치료하다가 본인이 전염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그의 장례 문제로 한성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사대문 안에 낯선 서양인의 시신을 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환자들이 그의 손에 의해 치료를 받았고, 은밀한 중에 전도가 되어 예수를 믿은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의 집 뒤뜰에 가매장을 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한성 근교의 양화진이 선정되어 헤론은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겨둔 채 낯선 땅에서 주의 군사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최초로 들어가서 선교하고 싶었던 조선에서 한강변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무덤에 최초로 묻히게 된 것이다.그는 조선 땅에서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밀알이 되어 제2이 제3의 헤론들이 태어나 복음의 빛을 빛을 갚고 있는 것이다. 이 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 양화진에 뼈를 묻었고, 한국 기독교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것이 양화진의 시작이다.

 

헤론 선교사 양화진 묘지

 

            

떨잠(족두리), 19세기 초 명성황후가 제중원 의사인 헤론 선교사의 부인에게 하사한 족두리 장식

 

      

떨잠, 옆 모양

 

헤론 선교사가 고종으로 부터 하사받은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찬미가, 1897년 존스(G.H.Jones) 외 공역, 미 감리교회 최초의 찬송가

 

그리스도 신문, 1897년 4.1- 1897년 12.23

 

선교사 언더우드가 1897년 창간한 순 한글판 기독교 주간신문

             

찬송가, 1908년 언더우드 편역, 감리교, 장로교회 연합 찬송가

 

신학세계, 1918년 7월, 1919년 1월, 협성신학교, 현 감신대 교수회에서 발행한 신학지

             

성경잡지, 1918년 2월, 1919년 3월, 조선예수교서회 간

 

중국의 "성경잡지"를 한글로 번역한 월간잡지로 성경강해나 교리해설 수록

 

 

 

명심도, 1918년 성서를 동물 그림에 비유하여 설명한 전도문서

십계요해, 1918년 한국인의 입장에서 십계명을 한글로 풀이한 해설서

 

 

만국주일공과

 

미 감리회 강령과 규칙, 케이블, 최명화 공역, 1910,

 

사과지남, 게일, 한글문법교습서, 1894, 외국인을 위한 최초의 교습서

 

성교촬리, 존 저, 언더우드 역, 1890, 기독교 교리를 간략히 설명한 전도문서

 

약한의긔록한글복음, 요한복음 한글판, 펜윅, 1893, 캐나다 그리스도교회 독립 선교사 펜윅이

번역한 요한복음 한글판

 

주일학교공과, 유경상, 1921,

 

진리편독삼자경, 야소교서국, 1895, 기독교교리를 한자 3음절로 말을 짓고 한글로 해석을 붙인

교리해설서 

 

활천,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1928, 1922년부터 성결교회에서 간행한 신학잡지

 

장로회 신학교 졸업증서, 1907.6

 

감리교회 조례, 1908년 윌리암즈, 안창호 공역

 

목사직첩, 1911년 감리교회, 감리교회에서 김정길에게 목사직을 허가하는 확인증명서

 

 

집사증장, 1918년 감리교회,  미국감리교회 조례에 의해 이강우를 집사로 임명하는 증명서

출처 : Joyful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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