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그에 글을 쓴 것이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 그 다음에는 내 글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메인에 네번이나 걸려서, 베스트 블러거 특종상도 한 번 받아서, 켐코더를 받아서.....숨은 고수 100인에 선정도 되었고 . 소박한 블러그 100인에도 ..."다음' 이 내게 준 선물을 나는 인생의 축복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글을 쓸 때는 최고의 집중력으로 오직 글쓰기에만 몰두 할수 있는 기쁨이 제일 좋았다.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
글쓰기에 대한 소망은 70년도 부터 시작되었지만 스스로 단지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렸다.
대학교 4학년이 었던 1973년 9월 "결핵성 늑막염"으로 학교 부속병원에 한 달을 입원했고 그후 만 3년을 매일 세 번씩 한 주먹이 다 되는 결핵약을 먹었다.
학교 동기들은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했지만 나는 언제 완쾌 될지 모르는 투병을 하고 있었다.
일 년은 방에 반듯이 누워서 식사 때나 일어나서 밥을 먹고 약을 먹는 지루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해질 녘이면 동네 뒷산에 올라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본능적인 외로움과 삶에 대한 고민을 참 심각하게 했었다.
그 당시 읽는 책도 모두 "형이 상학적"인 철학책이나 "허무주의"에 심취했으니 생각은 안으로, 안으로 침잠되어 사람을 참 지치게 하였다.
이렇게 살다가 폐인 이 될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 "장편소설' 이었다.
글쓰기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으니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그때도 현실을 좀 잊고 싶어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의 덩어리를 머리 속에서 몰아 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 였다.
다음 해 가을, 완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본 신문 광고 구인란에서 "교사 구함. 경기도"를 보고
찾아 간 경기도의 소도시 (지금은 인구 50만의 대도시로 변했음)의 한 남중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4년을 살았다.
퇴근후 남아 도는 시간이 아까워서 전에 써 놓은 "장편 소설'을 "여성 동아 장편 소설 "에 응모 하여 최종에서 탈락을 하였다.
그 때의 심사위원은 ..강신재, 김주영 선생님과 또 한 분의 성함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본선에 오른 작품은 평가를 해주었는데 모두 "구성'에 대해서 지적을 했었다.
그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기르면서 글을 차분하게 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남의 글만 계속 읽었다.
12년을 '책대여점"을 하며 참 많은 책을 읽었고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장사기에 그 들과 대화를 하기위해서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려고 "인터넷 소설이라고 칭 하는 소설도 140권이나 읽었다.
"귀여니"라는 필명을 가진 소녀의 책이 제일 재미도 있었다.
내용의 90%가 실제 있던 사건들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요즘 중고등 학생들의 문화의 단면을 알게 되었다.
작년 3월 "책대여점'을 그만 두고 인터넷을 접하게 됐고 호기심 반 , 설레임 반으로 "다음"블러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오프 라인'에서 데뷰를 늘 꿈꾸며 일종의 연습의 장으로 블러그에 나의 인생을 풀어 놓기 시작하였다.
나의 글들은 컴맹 수준인 내가 독수리 타법으로 정성껏 쓴 순수한 나의 삶의 기록이다.
아무리 조회수를 기대한다 해도 나만의 룰이 있다.
나를 변명하거나 삶에 공치사를 위해서 주변 사람의 단점은 쓰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와 관계 된 가족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글이란 것이 현실보다 약한 것은 글을 써 본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나의 인생을 더 솔직하게 쓴다고 해서 후련한 것은 없고 후회만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이 남과 좀 다르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으로 더 열심히 살았다.
나는 두 아들 앞에서 당당하고 어떤 때고 그 아이들에게 바른 길로 가라고 말 할 수 있는 에미이다.
그것은 30년동안 나의 삶을 지켜 본 아들들이 내게 의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수 있다.
근 일년 반을 블러그에 글을 쓰면서 참 행복했고 많게는 9만명이나 되는 조회수를 기록해 준 방문자들에게 감사하다.
부산의 끝 동네 구석에 있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로의 아지매의 이야기를 전국 방방 곡곡에서 읽어 준 네티즌에게 다시 감사를 드린다.
한 인간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살았고 , 그 애씀에 감명을 받아서 주변 사람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도와주고 , 무엇보다도 에미의 고단함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 아들과 남편이 나의 노력을 인정하고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서울 사람으로 부산에 와서 27년을 살았지만 상점을 하면서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갑자기 상점을 그만 두니 정말 '한 낮에도 너무 적적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블러그와 "미니 홈피"였다.
고생이라고는 모르다가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몰려 왔었는데 모두 극복하고 이제 숨 한 번 크게 쉬고 잊었던 나를 찾았다.블러그에 나의 삶의 기록을 쓰면서 깊은 시름도 잊었고 . 고달팠던 지난 세월도
글을 쓰면서 응어리가 풀렸다.
마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놓듯이 바로 나 자신에게 보이려고 글을 쓰기 시작 했는데 .....
열심히 살아 온 댓가로 받은 상이 너무 많다.
앞 날을 모르는 인생의 아이 러니가 다른 측면에서 판단 한다면 인생을 살 맛나게 하는 묘미인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기회는 공평하다.
기회를 잡고 최선으로 매달리는 지혜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아주 복잡한 주관식 수학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 상쾌함이 나의 마음을 벅차게 하고 있다.
물론 응어리 졌던 한도 다 풀어졌다.
나의 인생 앞에 ....죽고 싶을 만큼 고달팠던 적도 있었지만 잘 견딘 나 자신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고통이 오면 그냥 견디면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시간..30년. 참 긴 시간이었다.
나의 수련 기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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