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삼국지’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을 적잖게 봐 왔다. 그들은 삼국지를 수십번 읽었다면서 등장인물은 물론 사건 하나하나를 정확히 기억해 술술 읊어대곤 했다. (여기서 삼국지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여러 판본의 소설 일체를 뜻한다. 중국 정사인 25사에 속하는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나도, 마니아는 아니지만 삼국지를 열 번 넘게는 읽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집에서 삼국지를 구입했는데 특이하게도 일본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永治)의 삼국지였다. 훗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번역본을 읽고는 ‘역시 요시카와의 삼국지가 훨씬 경쾌하고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누가 쓴 삼국지이건 삼국지에는 공통분모가 있고, 그것은 삼국지 애호가들에게 가슴 벅찬 로망을 제공한다. 그런데 며칠전 삼국지에 관한 해설서인 ‘삼국지 강의’를 읽고는 그 로망에 금이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책이 주장하는 삼국지의 진실들, 삼국지 마니아인 당신은 용납하겠는가.
유비는 조자룡을 총애하지 않았다?
조자룡(조운)은 삼국지가 배출한 숱한 스타 중에서도 특별히 빛나는 별이다. 유비 진영에서 볼 때 그의 비중은 유비 3형제-제갈공명 다음쯤으로 자리매김된다. 조운은 관우·장비 못잖은 걸출한 용력을 지녀 장수끼리의 대전에서 패한 적이 없는 데다 유비에 대한 충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관우·장비는 의형제라서, 공명은 스승 같은 면모가 있기에 유비와의 관계를 충성심이란 잣대만으로 재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게다가 삼국지에는 조운이 목숨을 걸고 아두(유비의 아들 유선의 아명)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비가 장판교에서 용맹을 떨친 그 전투에서, 조운은 홀로 적장 50여명을 죽이는 고군분투 끝에 아두를 구한다. 그가 아두를 넘겨주자 유비는 “어린 놈 때문에 하마터면 나의 대장 하나를 잃을 뻔 했구나.”라면서 내팽개친다. 눈물이 핑 돌만큼 멋진, 군신간 의리요 정 아닌가. 그런데도 유비가 조운을 총애하지 않았다니.
‘삼국지 강의’는 “조운이 일생에서 한번도 최고 명예의 장군을 해 보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상장(上將)을 임명할 때도 관우·장비·마초·황충 4명만을 골랐지, 삼국지에 나오는 것처럼 조운을 포함시켜 ‘오호대장’을 임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유비는 말년에 조운보다는 위연을 더욱 신임했고, 장군 벼슬로도 위연이 윗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조조는 양수의 재능을 시기해 살해했다?
계륵(鷄肋=닭의 갈비)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먹자니 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 고사성어는 조조와 양수의 관계에서 나왔다.
조조가 한중 땅을 차지한 유비를 치러 직접 출정했지만 전투는 지지부진했다. 하루는 닭탕을 먹고 있는데 부하가 그날의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물었다. 조조가 무심결에 닭갈비라고 했더니, 이를 전해들은 양수가 즉시 철군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주위에서 물으니 ‘닭갈비가 주군의 심리 상태를 뜻한다면 내일쯤 철군 명령이 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에 각 부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조조는 군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핑계로 양수를 참수했다는 내용이다.
이 고사에서 ‘계륵’이라는 성어가 탄생했지만, 아울러 이 이야기는 조조가 제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양수의 재주를 시기해서 트집을 잡아 죽였다는, 그래서 조조는 역시 간특한 인물이라는 주장으로 종종 비화하곤 한다.
과연 그렇까. ‘삼국지 강의’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양수는 “작은 총명으로 영양가 없는 잔꾀만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수는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으며, 나중에 그가 죽임을 당한 까닭은 후계자 문제에 깊이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삼국지 강의’는 관우를“나쁜 버릇이 든 아이”로, 제갈공명을 뛰어난 정치가이지만 용병술에는 약한 인물로 평가하는 등 우리가 환호하는 삼국지 인물들에게 의외의 판정을 내놓는다.
‘삼국지 강의’는 ‘중국의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는 이중톈 샤먼대 교수의 저작이다. 중국이 축적해 놓은 ‘삼국지학’을 바탕으로, 온갖 역사서를 동원하며 논리의 그물을 촘촘히 짜낸다.
이 책을 읽고 소설 삼국지의 뒷면을 들여다 볼지, 책을 무시하고 삼국지가 준 로망을 마음에 계속 간직할지는 각자 선택할 문제이지만, 꼭 기억해 둘 일은 있다. ‘삼국지 강의’를 읽는 재미가 삼국지를 읽는 재미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신이 역사, 진실, 권력, 인간관계 같은 단어들에 매력을 느낀다면 그 재미는 몇배로 팽창할 것이다.
요즘 네이버에 이런저런 삼국지글들을 찾아다니다가 재미있는글이 있어서 이렇듯 가지고 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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