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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크리스 해리슨 목사 [내적치유 세미나] -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2. 20:35
  
크리스 해리슨 목사 [내적치유 세미나] -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  
골로새서 2장 9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자신을 통해 보여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12장을 보겠습니다. 18절에서 21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과 온유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거리에서 시끄럽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외치셨다」라는 구절이 성경에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온유하시고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 바로 이러합니다. 
마가복음 보겠습니다. 10장 13~16절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친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언제나 시간을 내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4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진리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언제나 진실하십니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상처 받는 것 중 하나가 가족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면 아버지를 신뢰할 수 없게됩니다. 
남편이 거짓말을 하면 남편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부모는 자녀를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짓말의 힘은 파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만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5장 32절과 14장 14절을 읽겠습니다. 
「긍휼」이란 어떤 것입니까? 
긍휼은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랑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긍휼하신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가? 
누가복음 23장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꺼이 용서해 주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조차도 예수님은 기꺼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신학적인 이론으로만 알고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가 하나님의 용서 인데도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용서받는 것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를 거절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비참한 죄인이다」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자신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죄책감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죄책감에 굴복해 버려서 죄책감이 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상태로 살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면서 누리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을 거부할 때입니다. 
마음속에 결심을 합니다. 
「나는 저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절대로 남자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묶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온전함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사랑을 막는 거절감 
우리는 지난밤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흐르지 못하게 막는 것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밤 이러한 장벽들에 대해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거절감」입니다. 
거절감은 우리 삶 속에서 「나는 거절당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아무도 나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좋은 관계를 갖기가 어렵게 됩니다. 
거절감은 방향을 바꿔가며 옮겨 다닙니다. 
거절감은 우리를 화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또 우리가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게까지 합니다. 
이것과 반대로 거절감은 자기가 자기를 거절하게 합니다. 
자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게 됩니다. 
자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종종 우울증에 빠집니다. 
자기 거절감의 끝까지 가게 다닙니다. 
거절감은 우리를 화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또 우리가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게까지 합니다. 
이것과 반대로 거절감은 자기가 자기를 거절하게 합니다. 
자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게 됩니다. 
자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종종 우울증에 빠집니다. 
자기 거절감의 끝까지 가게 되면「너 왜 죽지 않니? 죽어버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 이런 말이 항상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시편 23편 4절을 보겠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우리가 이런 골짜길를 경험할 때마다 
- 특별히 관계의 문제,재정적인 어려움 등 -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옵니다. 
형제 자매님, 
하나님께서는 이 그림자를 바람처럼 날려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망의 그림자로부터 자유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자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고 외로움에 빠지고 결국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편 118편 17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바라십니다. 
죽음의 생각과 싸우시는 분이 계시다면 더 이상 그런 것에 고통당하지 않고, 
그런 생각은 날려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 거절감」이라는 장애물이 삶 속에서 뽑힐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반응」 
두 번째 장애물은 어린아이와 같은 반응입니다. 
신약에서는 어린아이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4절입니다. 
여기서 핵심단어는「어린아이와 같이」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뜻에서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긍정적인 속성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아이들은 잘 배웁니다,겸손합니다. 그리고 쉽게 용서해 줍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속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장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입니다. 
13장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성령 안에서 사역을 하는 동기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을 자기 삶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장 11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반응,유치한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치한 반응,어린아이와 같은 반응은 어떤 것들입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많은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유치한 반응은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숨겨진 어린아이의 본능 
첫 번째 예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숨겨진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버튼을 누르게 되면 유치한 어린아이가 올라옵니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말을 하고 행동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고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일이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10~30분 정도만 지속되다가 멈춥니다. 
그 아이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굉장히 창피합니다. 패배감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죄성이 있는 것들이 이렇게 하게 합니다. 
분을 품는다든지, 정욕을 품는다든지, 
누구나 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이러한 반응을 하게 됩니다. 
이 속에 이러한 유치한 어린아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 상처를 받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사랑이 결핍된 무시되었거나 거절을 당한 아이일 때 이렇게 됩니다. 
아니면 아이의 부모가 사랑을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경우입니다. 
이 아이가 자랍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어느 한 구석에 이 아이가 묶여 있습니다. 
누군가 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감추어져 있던 어린아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이렇게 수많은 장애물들을 갖게 됩니다. 
★ 불안정한 부모의 영향 
두 번째 예는 부모님이 안정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불안정해집니다. 
아이가 엄마와 집에 있을 때는 착합니다. 
그런데 옆집 박씨 아주머니가 엄마와 이야기를 하러 오면 달라집니다. 
그것이 싫은 겁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도 박씨 아주머니와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쥬스를 들고 마루바닥에다 쏟아버립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는 이번에는 연필을 들고 벽에다 낙서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바닥에 누워버립니다. 발버둥을 칩니다.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주머니가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아이는 다시 착해집니다. 
그 아이가 5살이 됩니다. 
엄마랑 슈퍼마켓에 갑니다. 엄마는 쇼핑을 합니다. 
슈퍼마켓에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큰 소리로 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엄마는 부랴부랴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줍니다. 
아이가 이겼습니다. 
이제 아이는 어떻게 엄마를 조종할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아주 유치한 반응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조종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조종해서 나쁜 짓을 하게 합니다. 
조금더 나이가 듭니다.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깁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만약 네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나을 위해 이것을 해야 해」 
이것이 뭡니까? 
조종하는 것입니다. 유치한 반응입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듭니다. 
결혼을 합니다. 
이것은 정말 끔찍한 재난입니다. 
남편은 분노로 조종하려 합니다. 
내가 화를 내서라도 내 뜻대로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어떻게 조종합니까? 눈물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웁니다. 
이런 사람들의 결혼생활은 눈물과 분노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을 때에 조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배하고 괴롭히는 것들도 유치한 어린아이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유치한 어린아이를 꺼내기 원하십니다. 
*출처-온누리신문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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