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테크/내적치유 병원

[스크랩] 상한 마음의 내적치유에 관한 연구 2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4. 06:41

상한 마음의 내적치유에 관한 연구 21

 

3. 용서를 통한 치유


드러난 감정의 문제나 아픔의 일들은 이제 새롭게 처리되어져야 한다. 무작정의 감정 분출은 본인에게나 누구에게나 아무런 유익이 없다. 드러난 감정은 이제 하나님의 용서라는 방법을 통하여 새로운 회복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용서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의 세계, 풍요로운 세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하늘의 모든 기업과 하늘의 능력과 모든 권세를 예수님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가로막고 있다. 바로 이것을 푸는 열쇠가 용서라는 것이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놀라운 것이 내 속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진정한 자유와 회복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의 원리이다.


성처로 인한 분개했던 일은 고백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를 공격했던 자들은 조건 없이 용서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해방의 시초요, 새로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20장 23절 말씀에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며 사하여 질 것이요 뉘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은 아니지만 다른사람을 용서하며 그대로 용서된다는 내용이다. 또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19절에 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너희에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도 보면 내가 땅에서 무엇을 하면 하늘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또 마태복음 18장18절 말씀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 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비슷한 말씀이 있다. 용서와 관계해서 하늘의 열쇠라는 것은 특징적인 하나의 표현이다. 나의 용서와 관계되는 용서가 하늘의 열쇠라는 것이다.


크리스챤들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므로 다른 이들을 기꺼이 용서한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이 아주 지독한 잘못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잔혹한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후 유럽과 미국을 다니며 용서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르위스 슴데스는 그녀가 뮌헨에서는 설교 후 취한 행동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설교를 마쳤을 때 한 남자가 손을 뻗치고 그녀에게 왔다. "네, 아가씨. 방금 당신이 말했듯 예수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SS친위대의 일원으로서 교활하고 호색적이며 조롱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양옆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용서할 수 없었다. 모두들 용서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실제 육신을 가지고 서 있는 친위대원을 대했을 때 그녀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두려워진 그녀는 기도하였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저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할 때 그녀는 용서하는 자로서 알려진 자신의 형편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용서받았으며 포용되엇음을 느꼈다. 그녀의 손은 순간 풀렸다. 증오의 얼음이 녹았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그녀는 용서받음을 느꼈을 때 용서하였다. 따라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이해하고, 그 용서를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속박으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용서의 바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부모가 병이 있거나 선한 의도를 가졌다거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기심과 죄악에 대해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용서한다. 용서함을 받은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는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용서라는 단계를 거친 후일지라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두려움과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투사하는 일로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하여 투쟁해야 할지도 모들겠다. 어쩌다가 우리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우리들의 지상의 권위의 인물들의 왜곡된 상을 통해서 보려는 강한 경향을 갖기도 한다.총명과 지혜를 위해 이 '권위의 인물'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친절한 상을 반영시켜 우리가 누구라는 사실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한 실존의 하나님이시라는 그 실조 자체를 사실대로 보면 볼수록 우리는 그분을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이 넘치게 될 때 그분을 닮아가기 시작하게 되어 있다. 이같은 단계별 해방은 우리들이 조건없이 용서하거나 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게 될 때 용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찾아들게 되어 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