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펼치자마자 우리나라의 주부 4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12%는 자살충동을 경험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후드득 떨렸다. 나도 그랬으니까. 서기 2000년, 남들은 한 세기가 마감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그때 나는 부쩍 심해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기와 함께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던 삶이 어느 순간부터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나이 ‘마흔’. <아줌마표>로 인해 홀대받는 중년, 그 날이 멀지 않았던 것이다. 자식들은 스스로 커온 듯 목소리에 힘을 싣기 시작하고, 어린아이처럼 돌봐주어야만 하는 연로하신 부모님, 직장의 눈칫밥에 나날이 허리가 굽어가는 남편.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나날 속에서, 내가 마치 짐을 잔뜩 실은 당나귀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비관적이고도 우울한 의식은 자폐증 환자처럼 내 안으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도서관 한 뼘 공간 속에 고개를 디밀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책들과 만났다. 지식과 지혜로 축적된 저자들과 마주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만난 책 중의 하나가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였다.
중년기의 전환점. 보통 40살 전후이거나 빠르면 30대 중반이 될 수도 있는 시기에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이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듯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드러내지도 못한 채 자신만의 일로 치부하고 그 고통의 시간을 혼자 감내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년의 초입은 인생의 중대한 전환시점이고 내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명하고 확고한 중년기의 모습은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죽음과 여성의 사랑,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 혼외정사, 자녀와의 관계, 직업과 일의 의미, 성공 등 여러 가지 예화와 함께 적응을 위한 방안까지 조목조목 제시해 놓았다. 위기의 원인은 변해버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유연성을 갖고 마음을 열 것, 중년기의 위기를 담담하게 수용할 것, 우울한 감정도 성장을 위한 움츠림임을 인정할 것, 최후에 갖고 싶은 이미지를 확립할 것, 문제를 덩어리로 뭉뚱그리지 말고 쪼개어 볼 것, 건강을 돌보는 생활양식으로 바꿀 것, 감정을 표현할 것,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할 것, 방법적 회의를 시도해볼 것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작자는 진짜 성공이란 건전한 가치에 기반을 둔, 잘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평생 동안 추구해 가는 것이 자신의 가치 실현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중년은 누구나 한 번쯤은 통과 의례처럼 겪고 지나가는 인생의 전환점이다. 따라서 인생의 제 2막을 알차게 시작할 수 있는 스스로의 해법이 필요하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이 먹어버린 나이’를 두려워하는 대신 ‘숫자만큼 깊어지는’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질문은 자주 나를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마음의 각오를 되새기며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장정희/광주 대광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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