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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기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25. 21:51

시기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 시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가 읽은 최초의 책에서 배웠다. 시기심은 백설공주의 계모가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나, 신데렐라를 모욕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신데렐라를 학대하는 자매들의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데렐라와 비슷한 민담인 <한 눈이>는 하나의 눈을 가진 자매와 세 개의 눈을 가진 자매가 두 눈을 가진 자매를 시기하는 이야기인데, 시기의 이유는 자기들이 “한 개” 또는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부족하거나 너무 많은데 비해 그녀만 정상적으로 “두 개”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민담은 시기하는 두 자매가 시기의 고통을 인내하는 두 눈이를 굶겨 죽이기 위하여 모든 음식들을 다 가지고 도망가는 것으로 전개된다. 이 민담에 나타난 시기심은 남에게 고통을 주고 파멸시키는 것이 그 목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시기 받는 대상은 시기심의 공격이 자신의 주체적 실재를 무(無)로 만든다고 느낀다. 여기에서 시기의 모습이 칭찬으로 나타나든지 질책하는 것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시기받는 사람은 시기하는 사람에 의하여 객체로 바뀐다. 인간으로서의 그의 실재는 말살되어 버린다. 시기심의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그의 상처, 분노, 또는 충격은 시기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인 역사에 관한 어떤 사실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예컨대, 신데렐라의 이야기에서 신데렐라 또한 같은 아버지의 매우 사랑받는 딸이었다든지, 또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든지 하는 사실들은 시기하는 자매들에게 아무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정신분석의 실제로부터 온 하나의 예를 든다면, 자매에 의해 시기받는 한 여인은 그녀 자신도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지금 자매의 시기심의 목표가 되고 있는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힘들게 일해 왔다고 항의해 보지만, 그 녀의 시기하는 자매는 그 항의에 대해 목석 같은 반응을 할뿐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의 이러한 사실들은 자매의 시기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또한 단순히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시기받는 사람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기심의 대상인 하나의 사물로 변화된다. 그녀는 단지 시기하는 사람의 이상화 및 박해와의 관련에서만 존재한다. 시기 받는 사람을 이상화하는 경우 시기하는 사람은 그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으로 팽창시켜서, 시기하는 사람이 미칠 수 없이 높은 데 있는 존재로 그리고 사실 인간적인 범주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시기하는 사람이 시기받는 사람에 대한 악의적인 경쟁심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이다. 시기받는 사람은 반신(半神)이 되거나 그 역할을 떠맡도록 강요받는다. 시기받는 사람을 박해하는 경우에서도 이상화했을 때에 사용했던 동일한 방어기제가 작용한다. 다만 그 반대쪽 극단의 모습을 띠고 있을 뿐이다. 이제 시기받는 사람은 전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보여지고 시기하는 사람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로 여겨진다. 이 때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기심을 시기받는 사람에게 투사하고 전가함으로써 자신이 시기한다는 사실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시기심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고 시기받는 사람에게 있으며 비난이 자기 반성을 대신한다. 상대방을 이상화하는 경우나 박해를 하는 경우 모두에 있어서 시기받는 사람은 추상화된 어떤 영웅 혹은 악한으로 변함으로써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도둑맞게 된다. 또한 시기심은 사람들을 일반화시킨다. 그것은 인간적인 요소들을 지워 버리고 그 속성들로 대치한다. 그리고 그 속성들마저도 개인의 특수한 속성들이 아니라 일반화된 이상의 부분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시기하는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시기 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시기하는 사람이 부정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시기심이 항상 가져다주는 고통과 쾌감의 끔찍한 혼합이 시작된다. 시기하는 사람은 마침내 자신의 결핍을 늘어놓으면서 약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본래의 고통뿐 아니라 새로운 고통이 더해지는 커다란 고통이 있다. 다른 사람을 추상화시켜 버린 효과가 즉각적으로 자신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경우로부터 인간은 없고 커다란 공포의 요소들만 있는 거대한 일반화의 공백 속으로 옮겨진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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