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시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독특한 구조로 보여 주는 소설. 몇 달 동안 치명적인 병을 앓았던 서른네 살의 작가, 시드니 오어는 1982년 9월 18일, 브루클린에 있는 한 문구점에 들어가 포르투갈제 파란 공책을 산다. 이때...
나의 평가
이 책은..
세상에는 정말 뛰어난 이야기꾼들이 넘 많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집어 넣고, 또
다른 이야기를 또 집어 넣으므로 우리들을 다소 헷갈리지만 진정 흥미만점의 바다로 풍덩 빠트린 이 소설의 작가 폴 오스터 또한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 확실한 듯 합니다. 와우! 정말 그 동안 제가 얼마나 독서에 소홀했나 심각하게 반성해봤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또한 첨 접한 거였
거든요.
그런데 이 작가는요. 다른 작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철철 넘치는데요. 뭐랄까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약간은 우화적인 글을 쓰는 이상주의 작가이고,
파울로 코엘료가 거치른 생의 다양함에서 비롯된 무한한 경험을 펼쳐 놓으면서 하나를 위한 지향
점이 뚜렷한 작가라면, 또 새로 알게된 알랭 드 보통은 솔직담백하면서도 유머가 넘치고, 날카로
운 시선으로 사물을 파헤치는 예리함이 빛나는 작가라고 보여지는 것에 반해 이 작가는 이 모두 를 적절히 혼합해 놓은 듯 하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개성없어 보인다는 말은 절대루 아니구요.
차라리 그 반대이지요.
많이 우화적이면서 현실적인 듯 해보이고, 그러면서도 생의 녹록치 않은 관조를 드러내는 깊은
맛이 느껴지며, 아주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마치 눈 앞에 어떤 인물이 잡힐 듯 하고, 또한 무척이 나 날카로운 듯 합니다. 유머 또한 빼 놓을 수 없구요. 하여간 재주로 똘똘 뭉쳐진 또 하나의 멋 진 작가여서 그의 작품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두루두루 읽어볼 참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새로운 발견을 향한 저만의 탐험이 되는 것이며 늘 가슴 설레고, 이게
좀 넘치다 보면 제 자신이 폭발할 것 같은 찐한 전율감마저 주는 최대의 유희가 되는 것이죠. 사
실 전 영화보기도 아주 좋아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고즈넉한 밤에 나지막한
소파 위에서 책을 읽는 것이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단 낫다고 말할 거랍니다. 정말 그 기
쁨은 뭐와 바꿀 수 없는 희열임과 동시에 때론 아주 성스럽기조차하게 느껴지구요. 제 자신 이 전보다 훨씬 고양된 영혼의 존재임을 실감하게 되기도 한답니다.
이번에 읽었던 이 소설 ‘신탁의 밤’은 그냥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은 분명 아닙
니다. 다소 집중을 요하고, 또 삶의 의외성에도 어느 정도 동감해야 스토리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으며, 철학적 사유에 대해 냉소적이지 않은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독자에 따라 한 없이 단순하게만 받아들일 부류와 좀 더 깊고 은밀한 바닥으로 나동그라질 부류
도 있을 게 확실하고, 어떤 이들은 이 책의 구성부터 세세한 내용 모두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반면 어떤 이들은 많이 삐딱하게 불편해 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물론 저처럼 호기심 많고 세상에 흘러다니는 뭔지 모를 기운에 늘 이목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에
겐 이런 류의 책이 딱이지요. 제 자신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기꺼이 내 놓을 준비가 되어있기에 아무런 두려움없이 그저 숨막히는 흥분만으로 이 책을 끝마쳤습니다. 역시 저의 이러한 동참에 이 소설은 신비와 불예측성, 그리고 아이러니와 역설로써 명쾌한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소설의 작법이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선심을 베풉니다. 아주 소상하게 작가의 내면과 글쓰기 과정을 보여주지요. 바로 제 곁에
지금 이 책을 쓴 작가가 존재하는 듯 아주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늘 제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화두 ‘삶의 불예측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주
기에 더욱 눈과 정신이 솔깃해졌지요.
또한 작가는 현재와 과거, 거기에 미래까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아니 연결하고 있는 우리
들의 의식을 그대로 표출합니다. 우리들이 현재에 발붙이고 있다고 해서 현재만을 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거지요. 우리의 현재는 밀접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또한 미래와도 연결되
어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며 서서히 느껴가게 만듭니다. 우리가 언뜻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부분들도 우리의 의식 안에 머물다 언젠가는 도드라질 수도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
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작가의 탁월성이 아닐까 여겨졌구요. 대단한 흡인력과 관찰력, 그리고 감
성과 재주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책을 읽고 느꼈다고 여기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는 건 인정하더라도 바로 그 당시에서만큼은 그 느낌이 참인 걸까란 의문 이 드는 겁니다. 어쩜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그게 맞을 것 같고, 그게 가장 보편타당한 걸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거지요.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그 느낌 을 서술하기가 좀 어려워졌다고나 할까요? 누군가에게 읽혀져 잘못된 편견을 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워졌다고 하면 맞는 말일까요? 자신에게, 타인에게 틀린 걸 맞는 것인 양 전달 할 수도 있음에 대해 경계심이 든다는 게 옳은 표현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의 부족한 기억력으로 인해서, 또 충분히 다 숙독할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제 안에 받아들였던 느낌을 다 풀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뒤늦은 후회감이 늘 저를
감싸고 있습니다. 더 잘해서 누군가에게 감명을 주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능력의
부족에 자극 받아 더욱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해야지 하는 결심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 오르
는 좌절감에 추락하는 마음을 부여잡아야 할 때가 여러 번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감정에 복잡미묘한 심사이면서도 또 책을 읽고 느낀 제 감성을 이렇게 적어놓고
드러내지 않기엔 허전함을 진하게 느끼는 이 심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저 안의
외로움이 절 이렇게 부추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소통에 목마름을 느끼고 그것을
갈구하기에 책을 통해 남의 생각을 읽고 싶어하고, 그걸 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면서 안위하고
진한 기쁨도 느끼고, 좌절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오늘 이 시간 저의 결론은 그렇
게 내려졌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또 집어 넣으므로 우리들을 다소 헷갈리지만 진정 흥미만점의 바다로 풍덩 빠트린 이 소설의 작가 폴 오스터 또한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 확실한 듯 합니다. 와우! 정말 그 동안 제가 얼마나 독서에 소홀했나 심각하게 반성해봤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또한 첨 접한 거였
거든요.
그런데 이 작가는요. 다른 작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철철 넘치는데요. 뭐랄까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약간은 우화적인 글을 쓰는 이상주의 작가이고,
파울로 코엘료가 거치른 생의 다양함에서 비롯된 무한한 경험을 펼쳐 놓으면서 하나를 위한 지향
점이 뚜렷한 작가라면, 또 새로 알게된 알랭 드 보통은 솔직담백하면서도 유머가 넘치고, 날카로
운 시선으로 사물을 파헤치는 예리함이 빛나는 작가라고 보여지는 것에 반해 이 작가는 이 모두 를 적절히 혼합해 놓은 듯 하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개성없어 보인다는 말은 절대루 아니구요.
차라리 그 반대이지요.
많이 우화적이면서 현실적인 듯 해보이고, 그러면서도 생의 녹록치 않은 관조를 드러내는 깊은
맛이 느껴지며, 아주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마치 눈 앞에 어떤 인물이 잡힐 듯 하고, 또한 무척이 나 날카로운 듯 합니다. 유머 또한 빼 놓을 수 없구요. 하여간 재주로 똘똘 뭉쳐진 또 하나의 멋 진 작가여서 그의 작품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두루두루 읽어볼 참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새로운 발견을 향한 저만의 탐험이 되는 것이며 늘 가슴 설레고, 이게
좀 넘치다 보면 제 자신이 폭발할 것 같은 찐한 전율감마저 주는 최대의 유희가 되는 것이죠. 사
실 전 영화보기도 아주 좋아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고즈넉한 밤에 나지막한
소파 위에서 책을 읽는 것이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단 낫다고 말할 거랍니다. 정말 그 기
쁨은 뭐와 바꿀 수 없는 희열임과 동시에 때론 아주 성스럽기조차하게 느껴지구요. 제 자신 이 전보다 훨씬 고양된 영혼의 존재임을 실감하게 되기도 한답니다.
이번에 읽었던 이 소설 ‘신탁의 밤’은 그냥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은 분명 아닙
니다. 다소 집중을 요하고, 또 삶의 의외성에도 어느 정도 동감해야 스토리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으며, 철학적 사유에 대해 냉소적이지 않은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독자에 따라 한 없이 단순하게만 받아들일 부류와 좀 더 깊고 은밀한 바닥으로 나동그라질 부류
도 있을 게 확실하고, 어떤 이들은 이 책의 구성부터 세세한 내용 모두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반면 어떤 이들은 많이 삐딱하게 불편해 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물론 저처럼 호기심 많고 세상에 흘러다니는 뭔지 모를 기운에 늘 이목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에
겐 이런 류의 책이 딱이지요. 제 자신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기꺼이 내 놓을 준비가 되어있기에 아무런 두려움없이 그저 숨막히는 흥분만으로 이 책을 끝마쳤습니다. 역시 저의 이러한 동참에 이 소설은 신비와 불예측성, 그리고 아이러니와 역설로써 명쾌한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소설의 작법이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선심을 베풉니다. 아주 소상하게 작가의 내면과 글쓰기 과정을 보여주지요. 바로 제 곁에
지금 이 책을 쓴 작가가 존재하는 듯 아주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늘 제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화두 ‘삶의 불예측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주
기에 더욱 눈과 정신이 솔깃해졌지요.
또한 작가는 현재와 과거, 거기에 미래까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아니 연결하고 있는 우리
들의 의식을 그대로 표출합니다. 우리들이 현재에 발붙이고 있다고 해서 현재만을 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거지요. 우리의 현재는 밀접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또한 미래와도 연결되
어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며 서서히 느껴가게 만듭니다. 우리가 언뜻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부분들도 우리의 의식 안에 머물다 언젠가는 도드라질 수도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
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작가의 탁월성이 아닐까 여겨졌구요. 대단한 흡인력과 관찰력, 그리고 감
성과 재주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책을 읽고 느꼈다고 여기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는 건 인정하더라도 바로 그 당시에서만큼은 그 느낌이 참인 걸까란 의문 이 드는 겁니다. 어쩜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그게 맞을 것 같고, 그게 가장 보편타당한 걸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거지요.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그 느낌 을 서술하기가 좀 어려워졌다고나 할까요? 누군가에게 읽혀져 잘못된 편견을 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워졌다고 하면 맞는 말일까요? 자신에게, 타인에게 틀린 걸 맞는 것인 양 전달 할 수도 있음에 대해 경계심이 든다는 게 옳은 표현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의 부족한 기억력으로 인해서, 또 충분히 다 숙독할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제 안에 받아들였던 느낌을 다 풀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뒤늦은 후회감이 늘 저를
감싸고 있습니다. 더 잘해서 누군가에게 감명을 주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능력의
부족에 자극 받아 더욱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해야지 하는 결심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 오르
는 좌절감에 추락하는 마음을 부여잡아야 할 때가 여러 번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감정에 복잡미묘한 심사이면서도 또 책을 읽고 느낀 제 감성을 이렇게 적어놓고
드러내지 않기엔 허전함을 진하게 느끼는 이 심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저 안의
외로움이 절 이렇게 부추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소통에 목마름을 느끼고 그것을
갈구하기에 책을 통해 남의 생각을 읽고 싶어하고, 그걸 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면서 안위하고
진한 기쁨도 느끼고, 좌절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오늘 이 시간 저의 결론은 그렇
게 내려졌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출처 : bambi
글쓴이 : 꿈을 가진 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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