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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권 12장 하나님은 우상과 구별되며 따라서 하나님만이 완전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19

 

제 1 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제 12 장

 

하나님은 우상과 구별되며 따라서 하나님만이 완전한 경배를 받으실 수 있다

 

 

 

1. 참된 종교는 우리를 유일신이신 하나님께 결속시킨다

 

더우기 우리는 이 책 첫머리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냉랭한 공론(空论)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수반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 올바르게 예배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취급하였는데, 이것은 앞으로 다른 곳에서 더욱 충분히 다루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다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단히 반복하고자 할 뿐이다. 즉 성경이 유일신을 말할 때에는 언제나 그 이름만 가지고 논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른 것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것으로 순수한 종교와 미신이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는 것이 명백해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종교" 의미하는 헬라어 유세베이아 역시 정당한 예배를 뜻한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는 맹인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예배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정한 법칙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케로(Cicero)는 "종교"(religion)라는 말을 아주 유식하게 렐레게레(relegere)라는 라틴어에서 끌어냈지만,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부자연스럽고 당치 않은 것이다. 그는 선량한 예배자는 자주 읽고 또 읽어서 참된 것을 성실하게 숙고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오히려 방종과 대치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것은 닥치는대로 다 생각 없이 그대로 붙잡고, 여기 저기 배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건이란 것은 확고한 기반위에 서기 위해서 적당한 한계 내에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신이라는 말도 역시 규정된 방법과 질서에 만족하지 않고 쓸데 없는 수많은 공허한 것들을 모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더 이상 어의(语义)를 생각하는 일을 그만 두더라도, 모든 시대에서 종교가 언제나 허위와 오류로 말미암아 타락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은 인정된 사실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각없는 열심에서 나온 어떤 것을 허용한다고 해도 미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며대는 핑계는 실로 어리석은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비록 이러한 고백이 모든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러운 무지를 나타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 명시한 대로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존하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며 만일 인간이 자기를 가공적인 신과 혼동한다면 가혹하게 복수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하였다(출 20 : 5).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합리적인 예배를 제정하셨다. 하나님은 율법에 다음 두 가지를 포함시키셨다. 첫째는 신자들을 자신에게 종속시켜 자신이 그들의 유일한 율법 수여자가 되게 하신 것이요, 둘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당연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예배하는 규범을 제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율법은 그 용도와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앞으로 적절한 곳에서 이를 논하려고 한다. 현재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만, 율법으로 말미암아 한 굴레가 인간에게 씌어져 저들로 하여금 악한 예배에 빠지지 못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하나님의 신성의 고유한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께 귀속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박탈당하고 그에 대한 경의는 더렵혀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미신이 농간을 부리는 그 교활함에 대해 더욱 조심스럽게 경계하며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로 외관상으로 미신은 지고하신 하나님을 버릴 만큼 다른 신들에게 기울어지거나 또는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신은 하나님에게 최고의 지위를 허용하면서도, 수많은 저급 신들로 둘러싸고는 이 저급신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능을 행사하게 한다. 이렇게 은밀하게 또는 교활한 방법으로 해서 전적으로 한 분에게만 있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은 여럿으로 조각이 나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옛날에는 이방인 뿐 아니라 유대인도 무수한 신들을 신들의 아버지와 지배자 밑에 두었다. 그리고 이 신들 각자는 그 서열에 따라 최고신과 함께 천지를 통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세기 전부터 이 세상을 떠난 성자들이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로 높여져서, 하나님 대신에 영광과 기도와 찬양을 받게 되었다. 실로 우리는 이러한 혐오스런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엄이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위엄이 대부분 짓밟히고 소멸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최고의 권능에 대해서는 빈약한 의견을 다소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한편 우리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 여러 신에게 이끌려 가는 것이다

 

 

 

2. 차이점이 없는 구별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소위 라트리아(lstria, 예배)와 둘리아(dulia, 봉사)의 구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천사와 죽은 사람들에게 드려도 아무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고안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주의자들이 성자(圣者)에게 돌리는 영광은 실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로 그들은 전혀 차별 없이 하나님과 성자들에게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비난받을 때에는 예배(latria)가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는 것은 무엇하나 상처를 받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고 우물쭈물 변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말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예배라는 사건 그 자체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무시하는 자들을 누가 용납하겠는가?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이 이상 더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그들의 구별은 마침내 하나님께만 "예배"(cultus)드리고, 다른 것에는 "봉사"(servitium)한다는 것으로 요약이 된다. 헬라어의 "라트레이아"(latreiva)는 라틴어의 "쿨투스"(cultus)와 같은 것을 뜻하고, "두레이아"(douleiva)는 "세르비투스"(servitus)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자주 등한시되었다. 설사 이 구별이 변치 않는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이 두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곧 두레이아(doule va)는 봉사를 의미하고, 라트레이아(latreiva)는 예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봉사가 예배보다 더 범위가 크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경하기를 원하면서도 그를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려울 때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자에게는 보다 큰 것을, 하나님께는 보다 적은 것을 돌린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많은 저술가들은 그러한 구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구별이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3. 형상 숭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행위이다

 

그러한 세밀한 구별은 그만두고 문제 자체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깨우침을 받기 전까지는 어떠한 처지에 있었던가 함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dulia)하였더니"(갈 4 : 8)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라트리아" (latria)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미신이 변명될 수 있겠는가? 분명히 그는 사악한 미신에 "둘리아"(dulia)란 명칭을 붙임으로써 "라트리아"(latria)라는 말을 사용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둘리아"(dulia)를 정죄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 : 10)고 하는 이 말씀의 방패를 가지고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셨을 때에도 "라트리아"(latria)라는 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요구한 것은 다만 엎드려 경배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이 천사 앞에서 무릎을 끓었다는 이유로 천사의 책망을 받은 일이 있는데(계 19 : 10, 22 : 8-9),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을 천사에게 드리고자 하였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종교와 결합된 경건한 행위는 어떤 것이라도 신적인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지 않고 천사에게 무릎 꿇어 "절(knelt)"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로 우리는 자주 인간이 예배를 받는 일에 대해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말하자면 세속적인 경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종교는 이와는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다. 종교가 일단 예배 행위와 결합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넬료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행 10 : 25). 그의 경건은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최상의 경배를 드릴만큼 그렇게 불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베드로 앞에 "엎드리어 절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 대신에 그를 예배하려는 의도에서 한 것이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의 그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금하였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인간에 대한 예배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속하는 것을 무차별하게 피조물에게 옮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시기를 원한다면, 그의 영광을 티끌만큼이라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에게 속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스가랴는 교회의 회복에 관해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홀로 하나"라는 것을 명백하게 주장하였다(슥 14 : 9). 이 말이 하나님은 우상과 같은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예배를 원하시는가에 대해서는 후에 적절한 곳에서 거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율법으로 선과 의를 규정하고, 따라서 인간이 제멋대로 예배를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일정한 규범에 그들을 붙들어 두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문제를 뒤섞어 독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올바른 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겠다. 다만 어떠한 경건의 의식이 한 분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에 드려지게 될 때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훼방하는 신성모독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미신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태양과 별들, 그리고 우상을 위해 생각해 냈다. 다음에는 야심이 뒤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썩어 없어질 인간을 장식하고 신성한 것은 모두 더럽히고 말았다. 그리고 최고의 존재를 예배하는 원리가 비록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호신들, 저급신들, 또는 죽은 영웅들에게 아무 차별 없이 제물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큰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하나님만이 독점하고 있는 것을 수많은 우상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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