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원형은 파리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코믹이며 「천국과 지옥」을 작곡 한 잭 오펜박크에 영향을 받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빈에서 오페레타(위너·오페레타)를 발전시켜 그것이 베를린 오페레타로 근대화 한다.
또한 하버트 후림르 론바그 등이 미국에 반입하고 뉴올리안즈에서 행해지고 있던 쇼가 되어 탄생됐다고 한다.
처음은 스토리성이 없고 쇼(Show)적 요소의 강한 레뷰가 중심이거나 남녀의 연애를 그려서 해피 엔드에 끝나는 단순한 스토리의 작품이 많았다. 그 당시의 대표적 작품으로서는 레뷰를 중심으로 한 상연물을 연기하고 한 시대를 선을 그은 「지그프리트포리즈」등이 있다.
그 후 서서히 인종문제나 에이즈 등 사회성의 높은 문제를 도입해 복잡한 스토리를 그리는 현대적 뮤지컬로 발전해 왔다. 현대적인 뮤지컬의 최초의 작품은 1927년의「쇼 보트」이다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해 락 음악을 도입한 「헤어-」나 주역의 배후에 있는 무명의 댄서들에게 초점을 맞힌「코러스 라인」등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럽의 오페렛타의 여러형태의 희가극이 소개되면서 미국의 뮤지컬은 크게 발전하였다. 노래와 세익스피어의 희곡과 오페라를 혼합한 형태의 악극형태인 "민트럴 쇼 ", 가벼운 뮤지컬 극인 "보드빌", 해학적인 내용을 담은 장막 풍자극인 " 벌레스크" 등이 공연되면서 미국적인 뮤지컬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현대 뮤지컬의 발생지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뮤지컬의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영국의 식민통치하에서 존 케이시가 작곡한 " 거지 오페라 "가 상연되고 부터이다. 미국의 뮤지컬이 영국 등 유럽의 오페렛타로부터 탈피하여 독자적인 형태를 갖춘것은 1920년대의 일이다. 이 시기에 롬버그 의 "사막의 노래 (1921)" 와 프림 의 "로즈마리(1925)" 같은 오레펫타 계열의 우수한 뮤지컬이 발표되었다. 1928년 미국의 생활과 정서를 담은 획기적인 작품 "쇼 보트" 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뮤지컬은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된다.
1942년에 들어서 미국의 뮤지컬은 눈부시게 향상되어 현대뮤지컬의 예술성을 갖추게 되었으며, 사업적인 대중극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미국 뮤지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 "오클라마호 (1943)" 가 햄러스타인 에 의해 발표된 것은 이 무렵이다.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의 목가적인 연애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오클라마호"는 무려 2천여회 이상의 공연기록을 남겼다. 이밖에도 포터 의 "키스미 케이트 (1943)"," 버린 의 "애니여 총을 들어라 (1946)", 남태평양 (1949)" 등의 걸작이 발표되어 뮤지컬이 미국의 국민연극으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의 뮤지컬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데는 1950년대 이후이다. 2차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전쟁의 아픔을 달래고 정신적으로 위로받기를 갈망하던 미국인에게 뮤지컬은 청량음료와 같은 공연예술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뮤지컬은 콜 포터 , 레너드 번스타인 , 어빙 벌린 이 중심이 되어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대중적 성격을 털어내고 예술성은 갖춘 전문적인 양식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새로운 작품 "아가씨와 건달들 (1950)", "왕과 나 (1951)", "마이 페어 레이디 (195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57)" 등이 발표되었다.
1960 - 70년대의 미국 뮤지컬은 특유의 낙천적인 면이 사라지고 사회적 문제등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진지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헬로우 돌리 (1964)", "지붕위의 바이올린 (1965)", "헤어 (1967)", "코러스라인 (1975)" 등이 이 무렵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대중성보다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조되고 호소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를 맞으면서 미국의 뮤지컬은 대형 공연물로 각광받으면서 공연예술의 상업화를 주도하는 장르로 부상하였다. 또한 미국 중심의 지역성을 불식시키면서 세계인이 공유하고 향수할 수 있는 극예술로 그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레미제라블 (1980)", "캐츠 (1981)","오페라의 유령 (1981)" 등은 장기공연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연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의 극양식이 선보인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서구 음악극을 모방하여 가수의 노래에 연기와 무용을 추가한 30년대의 악극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공연도중에 막간을 이용하여 변사나 삐에로 같은 출연배우들이 짤막한 코미디나 만담, 가요, 숨은장기 등을 보여주는 막간극이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자 독립적인 오락물로 공연하게 되었고, 노래, 춤, 코미디 등이 연관없이 나열되던 종래의 형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갖추면서 가극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들어서 대중극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가극은 연극시장, 태양극장, 협동무대, 낙랑좌 등에 의해 더욱 연극적인 양식으로 다듬어졌으며, 명칭도 악극으로 바뀌었다.
악극은 1930년대의 동양극장을 무대로 당시의 흥행극단들이 공연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었다. 조선 악극단, 반도 가극단 등 대표적인 악극단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던 악극은 195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나라에는 1962년에 예그린 악단이 창단되면서부터 현대적 뮤지컬 공연이 시작되었다. 창단 후 연극형태의 음악극을 공연하던 예그린 악단이 본격적인 뮤지컬 공연을 시작한 것은 최창권 작곡의 "살짜기 옵서예 "를 공연하면서 부터이다. "살짜기 옵서예"는 음악, 무용, 연극 등 각분야의 전문인과 인기배우들이 동원되어 당시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 뒤 예그린 악단은 국립 가무단(1976)을 거쳐 국립 예그린예술단으로 활동할때까지 "꽃님이 꽃님이 (1967)", "대춘향전 (1968)", "바다여 말하라 (1971)", "화려한 산하 (1971)", "종이여 울려라 (1971)", "시집가는 날 (1974)", "상록수 (1975)", "태양처럼 (1976)" 등을 공연하였다. 이 단체는 1977년 서울 시립가무단 (현 서울 뮤지컬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세종문화회관을 주무대로 "달빛나그네 (1978)", "포기와 베스 (1984)", "지붕위의 바이올린 (1985)", "간도 아리랑 (1995)" 등을 무대에 올렸다.
예그린 악단과 더불어 우리나라 뮤지컬의 현대화에 기여한 공연단체는 현대극장이다. 1977년부터 꾸준히 뮤지컬 공연에 정성을 기울인 현대극장은 상업극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빠담빠담빠담 "을 비롯해서 "피터팬 (1979)","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80)', "사운드 오브 뮤직 (1981)", "에비타 (1981)", "올리버 (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87)", "레미제라블 (1988)" 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연하였다.
극단 민중, 대중, 광장 등은 1983년 "아가씨와 건달들 "을 공동제작하여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로 지금까지 약 이백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로 극단 민중은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 (1992)"을, 극단 대중은 "쉘브르의 우산 (1989)", "캐츠 (1990)', "넌센스 (1991)" 등을, 극단 광장도 극단 민중과 합동공연한 "캬바레 (1984)"를 비롯하여 "코러스 라인 (1993)", "레미제라블 (1993)" 등을 공연하여 뮤지컬 붐 조성에 이바지 하였다. 극단 민중, 대중, 광장 등은 1983년 "아가씨와 건달들 "을 공동제작하여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로 지금까지 약 이백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로 극단 민중은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 (1992)"을, 극단 대중은 "쉘브르의 우산 (1989)", "캐츠 (1990)', "넌센스 (1991)" 등을, 극단 광장도 극단 민중과 합동공연한 "캬바레 (1984)"를 비롯하여 "코러스 라인 (1993)", "레미제라블 (1993)" 등을 공연하여 뮤지컬 붐 조성에 이바지 하였다.
이밖에도 88서울예술단이 "한강은 흐른다 ", "백두산 신곡 ", "꽃전차 ", "아틀란티스 ", "애랑과 배비장전 " 등을, 롯데월드예술극장이 "신비의 거울속으로 ", "가스펠 ", "아가씨와 건달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돈키호테 " 등을 공연하여 뮤지컬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1990년대에는 극단 맥토가 "동숭동연가 (1993)","번데기 (1994)" 를,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1995)", "사운드 오브 뮤직 (1995)", "7인의 신부 (1995)", "만해 한용운 " 등을, 서울뮤지컬 컴퍼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 (1995)", "쇼코메디 (1996)", "브로드웨이 42번가 (1996)" 등을 공연하여 한국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뮤지컬 프로덕션 에이콤이 출법하면서 뮤지컬 전문단체를 표방하고 "아가씨와 건달들 (1994)", "스타가 될거야 (1995)", "겨울나그네 (1997)"를 공연하였다. 에이콤은 지난 1995년 국내에서 공연하였던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가지고 1997년 8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의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함으로써 한국 뮤지컬 역사의 새장을 열었다.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연기학부 윤현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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