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테크/아파트이야기

[스크랩] 오늘의 집 | 힐탑아파트,남산 외인아파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6. 25. 05:22

 

090622_아파트 문화사

오늘의 집 | 힐탑아파트,남산 외인아파트

외국인을 위한 최초의 고급 아파트

 

힐탑아파트를 계기로 우리나라 아파트에도 엘리베이터가 등장했다. 자동식 전화와 붙박이 가구도 설치됐다. 지상 11층의 높이는 그때만 해도 놀랍도록 높은 것이었다.

 

 

경제개발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1960년대 후반. 선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많은 외국인들을 초청했다. 이들 외국 기술자들은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존재였고, 그래서 최고 대우를 해줘야 했다. 이들을 위한 음식과 옷은 수입을 통해 조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살 집이었다. 짧게 머무는 외국인 사업가들은 시내 조선호텔과 도뀨호텔, 코리아나호텔에서 묵었지만 장기 체류하는 대사관직원과 상사주재원이 살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국인 전용 공동주택을 건설해야 했다.

 

힐탑아파트의 인상적인 기록들

이런 필요성에서 탄생한 아파트가 바로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힐탑아파트다.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공동주택인 힐탑아파트에는 새로운 것이 많았다. 엘리베이터가 처음 등장했고 밖으로 뛰어가지 않고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자동식 전화가 놓였다. 당시 귀했던 스프캔과 감자칩, 스파게티면도 힐탑아파트 내 외국인 전용매점에서 살 수 있었다. 힐탑아파트는 기획부터 준공 후 관리까지 철저하게 외국인을 위한 주택이었다. 지상11층짜리 힐탑아파트를 지으면서 우리나라에 고층아파트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주택공사는 일본 다이세이(大成)건설에서 빌린 100만 달러어치 철근과 목재를 이용해 주택공사 소유 한남동 땅에 아파트를 건립하기로 했다. 1967년 3월 공사를 시작한 후 1년 7개월만에 지하1층, 지상11층 120가구 규모의 고층 건축물이 완성됐다. 힐탑아파트는 일단 높이에서 압도했다. 이전까지 등장했던 아파트는 고작해야 5층을 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든 오티스(Otis)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옥상정원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나타났다. 이 뿐 아니다. 차량소음이 시끄럽고 빛이 안 들어 입주자들이 1층을 꺼린다며 필로티 구조(건물 전체나 일부를 기둥으로 들어올려 건물을 지상에서 분리시키는 것)를 과감하게 도입하기도 했다. 건물 외벽은 단열효과를 고려해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브이자로 꺾인 건물은 단순히 멋내기용이 아니었다. 남향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더 오래 받고 북쪽 판잣집을 가리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냈다. 힐탑아파트는 내부도 넓었다. 당시는 19~23㎡(6~7평) 크기에 방1개와 부엌, 복도에 화장실이 딸린 아파트가 대부분이었지만 힐탑아파트는 62~108㎡(19~33평)으로 구성됐다. 방이 1개 있는 유형부터 방 3개짜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이 중 84㎡(25평)형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자. 대리석을 깐 현관으로 들어서면 양 옆으로 침실 2개와 넓은 거실 겸 부엌이 나온다. 안쪽으로는 욕실과 또 다른 침실이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단 높이를 맞췄고 온돌 대신 중앙 스팀난방을 채택했다. 요즘 설계된 아파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실 전면이 아닌 옆쪽으로 작은 발코니가 있다는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힐탑아파트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도록 선반 등 가구 일부를 벽으로 집어 넣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일종의 붙박이 가구인 셈이다. 또 밖으로 뚫린 발코니는 세대를 분리하면서도 이웃과 이웃을 잇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아파트발굴사>(효형출판, 2009)에 따르면 힐탑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 안병의씨는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남측으로 난 발코니는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중략) 햇볕을 쬐고 식사를 한다. 옆집과 사이에 나있는 벽의 오프닝(공간)을 통해 이웃과 다양한 얘깃거리가 이루어진다. 화분을 놓거나 음식을 건네주고 받을 수 있고 직접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입주민을 위한 서비스는 호텔급이었다. 1층에는 세탁실과 외국인 전용매점이 있었고 경비도 철저했다. 외국인 학교로의 통학버스가 다녔고 미군버스도 지나갔다.

 

 

제 2의 힐탑, 남산 외인아파트

힐탑아파트만으로는 몰려드는 외국인과 미 8군 수요를 맞추기에 부족했던 정부는 본격적으로 외인아파트 공급에 나선다. 남산기슭에서 1970년 착공해 1972년 완공한 남산외인아파트는 힐탑아파트의 동생 뻘이다. 92.5~115.7㎡(28~35평) 16,17층 규모 2개동 아파트는 온수난방방식을 적용해 세대별로 온도조절이 가능했다. 비상시 대피하기 위해 옥상 헬리포트 시설을 설치한 첫 아파트이기도 하다.

 

 

 

 

모두 외국인을 위해 지었던 고급 주택이었지만 나중에 두 아파트의 운명은 달랐다. 남산기슭에 있어 어디서나 눈에 띄었던 남산외인아파트는 남산을 가로막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1994년 철거됐다. 1994년 11월20일, 2개동이 먼지 속에 무너지던 발파 장면이 전국에 TV로 생중계됐다. 건설할 때 선진 건축 기술을 선보였던 것처럼 철거 때도 첨단 철거 공법을 적용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남산외인아파트 자리에는 남산 야외식물원이 조성됐다. 힐탑아파트는 ‘리모델링’이라는 변형을 거쳤지만 아직 살아남았다. 2003년 리모델링 후 ‘힐탑트레저’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이제는 한국인도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 임대 수요가 많은 편이다.

 

 

 

 

090622_아파트 문화사

오늘의 집 | 힐탑아파트,남산 외인아파트

외국인을 위한 최초의 고급 아파트

옮김|seorabeol_THS

 

 

 

 

 

 

 

 

 

출처 : 서라벌블로그입니다
글쓴이 : 서라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