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
H씨 가족은 12년 동안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살다가 올해 초 한국으로 들어왔다.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결혼 직후 미국으로 갔으니 살림을 꾸려나가는 본격적인 안주인 역할을 타국에서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생활 방식과 주택 인테리어 역시 외국 스타일에 익숙하다. 미국과 싱가포르는 우리나라 아파트에 해당하는 콘도미니엄조차 자연친화적이어서 이들 가족은 한국에 들어와 집을 구할 때도 자연스레 조경이 갖춰진 빌라들부터 둘러봤고, 인테리어 공사를 의뢰할 때도 당연히 도배 대신 페인팅으로 벽 마감을 주문했고, 주방은 거실과 분리되는 구조로 리모델링하기를 원했다.
쇼룸 구경하는 취미
그녀는 미국,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에도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어서 쇼룸 구경하러 가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여행을 가도 호텔에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고, 카페, 레스토랑의 맘에 드는 부분은 사진을 찍어오곤 했다. 더블 매트리스를 놓고 메인등 없이 양쪽으로 취침등을 설치한 침실, 거실에 대나무를 꽂아둔 과감한 사이즈의 화기를 데코한 것, 테이블 아래 카펫을 깔아 정돈한 것, 인테리어 숍에서 가정집에서는 안 쓴다며 여러 번 말렸던 독특한 디자인의 등을 골라 거실에 매치하는 등의 세련된 스타일링은 오랜 세월 외국의 인테리어를 보며 다져진 감각인 듯하다.
갤러리 창 바리에이션
집주인이 리모델링의 포인트로 잡은 것은 엉뚱하게도 ‘장동건이 출연하는 청정원 CF’의 갤러리 창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인터넷으로 청정원 CF를 봤는데 갤러리 창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 장면이 제가 원하는 집의 이미지였어요.” 보통 사람들 눈에는 장동건만 보이는 CF에서 인테리어 힌트를 얻은 예리함 덕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집의 콘셉트를 잡기 위해 장동건이 출연하는 청정원 CF를 수십 번 되감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주방, 거실, 침실, 아이방 등 공간의 특성을 살려 갤러리 창을 시공했다. 안방에는 더블 매트리스 침대가 놓일 것이니 창의 크기를 줄여 갤러리 덧문을, 아이방은 채광이 중요하니 빗살을 움직여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루버 셔터가 달린 갤러리 창으로, 세탁실은 갤러리 문 안쪽으로 유리를 덧대 방한 및 방습이 되도록, 거실과 주방 사이 가벽은 사선이 아닌 각재를 수평으로 붙여 내구성을 높이고 공간은 나누되 갑갑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거실 전면을 확장 면의 날개벽에 이어 가벽을 세워 에어컨을 숨겼는데 역시 전면을 갤러리 창으로 시공해 집 전체 분위기에 통일감을 주었다.기획 이나래 | 레몬트리
거실
앞마당이 주어진 1층 아파트. 거실 전면부가 각이 져 있어 마치 주택 같다. 싱가포르에 살 때는 거실이 넓어서 3인용 소파 2개를 두고 살았는데 소파는 감싸듯 동그랗게 휜 등받이가 푸근해 보여서 구입한 것. 거실 조명은 인테리어 숍에서는 가정집에 과하다고 말렸지만 구름 같은 모양이 맘에 들어 골랐는데 오히려 거실에 포인트가 되었다.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주방
도면 변경 다섯 번, 욕망의 리스트를 실현한 주방
6인용 식탁과 아일랜드 조리대, 주방 확장 면에는 여자를 위한 작업 코너까지, 이 집의 주방은 제한된 공간을 요리조리 꽉 채워 주부들의 욕망의 리스트를 모두 갖췄다. 취재 당일 함께 있었던 집주인의 친언니의 표현대로 그녀가 ‘천상 여자’, ‘살림꾼’이기 때문에 세심하게 체크해가며 ‘환상의 주방’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가전제품과 아일랜드 조리대는 일하기 편한 동선을 고려해 배치하고, 거실 쪽에서 주방이 보이지 않을 것, 식탁은 반드시 주방에 둔다’의 3가지 대원칙을 세웠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주방 확장 면 날개벽 뒤로 냉장고를 두고 주방 공간에는 키큰장을 짜 넣어 수납을 해결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냉장고는 조리대, 개수대와 무조건 가까워야 할 것 같아 굳이 주방 안으로 들였고 덕분에 그 확장면에 작업 코너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수납장과 조리대의 역할을 할 아일랜드도 꼭 있어야 해서 조리대 옆으로 붙여 ㄷ자로 잡았다가, 거실 쪽을 향하도록 했다가, 식탁까지 들어가면 갑갑할 것 같아 이동형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주방을 거실과 분리하는 방법도 처음에는 가벽으로 구상했다가 지금의 갤러리 창 형태로 제작하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날개벽에 책장을 짜 넣거나 조리대 옆으로 싱크대 상판을 확장하거나 아일랜드 조리대의 길이를 1m로 보통보다 짧게 제작하는 등 그간의 시공 경험을 살려 도면을 다섯 번이나 수정해가며 주인의 욕망의 리스트와 생활의 편의를 모두 해결하였다.
2 주방에는 타일 대신 백 페인트 글라스를 시공했는데 기억할 것 많은 주부에게 너무나 만족스러운 메모장이라고 한다. 아일랜드 조리대는 보통 길이보다 20cm가량 짧게 만들고 이동식으로 디자인해 좁은 공간에서 효율성을 높였다.
3 아이방에서 바라본 안방. 신혼 초 화장대로 쓰던 앤티크 콘솔을 복도에 두었다. 액자를 바닥에 둔 것도 스타일리시한 데코.
4 주방 확장 면의 여자를 위한 작업 코너. 창밖으로 푸른 잎이 보여 마치 주택에 사는 기분이 든다.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오래 쓰는 가구를 쇼핑하는 법
“동생이 미국에 살 때 집에 갔더니 글쎄 6인용 식탁에 의자가 달랑 3개만 있는 거예요. 그것도 디자인은 같은데 빨강, 검정, 초록으로 제각각이었어요.” 언니의 말에, 당시 첫아이만 있었던 시절이라 의자는 식구 수대로 우선 필요한 3개만 구입한 것이고, 컬러를 달리한 것은 본인은 빨간 의자, 남편은 검정(특별히 암체어로 구입했다고 한다), 아이 것은 초록으로 맞춤 쇼핑을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지금 집에 놓인 의자가 바로 그때 구입한 빨강·초록·검정 식탁 의자. 거의 10년 가까이 쓴 것에 감탄하니 식탁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미국 가서 첫해던가 남편이 텍스리펀 받은 것으로 포트리반에서 구입한 식탁이에요. 여기 우리 큰아이가 이유식 먹던 시절 숟가락으로 톡톡 쳐서 생긴 자국도 남아 있어요. 식탁 아래는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린 그림도 있지요.”
안방과 아이방 사이에 놓인 콘솔은 신혼 때 화장대로 쓰던 것이고, 그때 화장대 의자는 지금 주방 작업 코너의 의자로 사용한다. 주방 작업실 책상은 테이블과 책장으로 분리되는데 두 번에 걸쳐 따로 구입한 것이다. 거실에 놓인 소파와 오디오장은 싱가포르에서, 아이들 방 책상도 거기서 구입해 여태껏 쓰고 있다. “합판이나 MDF 가구를 사서 자주 바꾸기보다 돈이 모일 때까지 없이 살더라도 한 번 살 때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소재, 디자인으로 골라요.” 이 집의 가구는 싫증 나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 소재는 대부분 원목이다. 아이들 책상과 의자도 높이를 조절해가며 클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리모델링하면서 새로 산 물건이 없고 거실에 놓인 커다란 화기조차 싱가포르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두었다는데 가구를 살 때마다 심사숙고해서인지 가구와 소품이 서로 잘 어울려서 풀세팅을 한 듯 세련되고 조화롭다.기획 이나래 | 레몬트리
안방,아이방
2 본래 집 전체를 화이트로 페인팅하려다가 아이들 방에 컬러 포인트를 주었다. 채도가 높은 옐로 컬러로 페인팅한 일곱 살 둘째 딸 방은 베란다를 플레이룸으로 만들었다. 창 아래는 마음껏 낙서할 수 있도록 백 페인트 글라스를 시공했다.
3 블루 컬러를 좋아하는 5학년 큰딸은 드래곤 블루라는 딥한 블루를 선택했다. 창에는 채광을 조절할 수 있도록 루버 셔터가 달린 갤러리 문을 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