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축제로 하여 휴강하였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나요? 놀 땐 열심히 노는 게 남는 겁니다.
그 전 시간에는 묘사의 방법으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묘사란 필자가 본 것을 모두 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고 하였지요. 복습으로 작업광경의 묘사를 함 볼까요? 글쓰기를 잘 하려면 역시 좋은 글을 많이 읽는 행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잠깐 김장 김치 이야기를 할까요.
아파트에서 겨울 동안 먹을 것을 열 포기 정도 담그는 요즈음에 그 시절을 떠올리니 그 일은 정말 신선한 감회가 있습니다.
먼저 트럭을 싣고 오지요. 혹은 손구루마로 오기도 했지요. 그것을 마당에 부릴 때면 뭔가 큰 일이 이제 시작되는 수선스러움과 함께 풍성함이 가득 차오릅니다. 우리집은 층계가 있는 높다란 언덕 위의 집이어서 트럭이 힘들게 올라와 집 앞길에 부려 놓은 후 그것을 다시 큰 대야에 네다섯 포기씩 나르기도 하고 어머니와 나와 동생도 끼어서 나르면 그 많은 배추가 어느새 다 날라집니다.
배추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잎의 두께가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았지요. 잎 자체에 달고 구수한 맛을 풍기고 있는 배추를 어머니는 잘 골라 내셨습니다.
배추 끝에는 커다란 꼬랑지들이 그대로 달려 있어, 가마니에 묻어 주었다가 겨우내 그것을 깍아 먹는 일도 즐거움이었습니다.
커다란 무쇠 식칼로 배추를 쪼개는 일, 큰 포기는 네 쪽으로, 작은 것은 두 쪽으로 마당가에서 쪼개었지요. 배추를 쪼개면 그 속에 고실 고실한 연한 노랑색과 연두색의 작은 잎들이 나타나지요. 그 부분을 따로 소금에 절여 양념을 속에 싸서 먹지요.
다 쪼갠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았다가, 다음날 아침에 김장을 시작합니다. 우물가에서 배추를 씻어 커다란 소쿠리에 걸쳐 놓으면 전날 그렇게도 많아 보이던 배추도 양이 많이 줄어듭니다. 무를 채칼로 채를 쳐서 고춧가루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으로 버무리고 생굴도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청각도 많이 집어넣습니다.
앞부분이 파르스름한, 너무 크지 않고 맛있어 보이는 무들은 동치미감으로 따로 골라 내놓았지요.
할머니가 시골서 올라와 계실 때면 할머니도 함께 하셨습니다.
마당과 마루에는 김장거리로 즐비합니다. 그런 날은 창호지문을 닫아도 방문이 열린 듯 휑하니 스산스럽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 스산스러움이 끝나지 않던 것입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발을 구르며 들어와 아랫목에 버선발을 파묻고 시뻘곃게 얼고 불어터진 손을 녹이며 손이 가려워하던 것, 손이 매워 뜨거운 물에 담그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둠이 찾아왔는데 다시 밖으로 나가 주섬 주섬 그릇들을 챙기고 뒷마무리를 하던 것, 곡괭이라는 말이 오가도 김치독을 파묻을 일이 남아 있던 것, 그리고 김치 속을 해서 밥을 먹고 나면 깜깜한 한밤중이었어요.
며칠 후 어머니는 쇠고기를 몇 근 사다가 푹 고아서 그 국물을 식힌 다음 김치둑에 부어 넣습니다.
김채원, <겨울의 幻>
김채원 작가는 파인 김동환과 최정희씨 사이의 난 사람입니다. 자매들이 모두 작가 화가로 부모님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 받은 것같습니다.
각설하고,
그럼 오늘은 서사의 방법으로 글 쓰는 것에 대하여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서사라는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 볼까요? 서사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과정을 기록하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다 서사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서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란 글쓰는 이에게나 읽는이 모두에게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하기때문입니다.
가령 대표적인 서사문인 신문기사나 보고서를 보면 독자에게 관심을 끌 수 있거나 그들의 삶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만 그것을 기사로 취급합니다.
의미있는 서사가 되려면 일정한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서사에는 사건의 내용과 그것이 전개되는 시간적 과정, 그리고 완결되고 통일된 의미가 특히 강조됩니다.
서사에는 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누가 등의 조건이 들어있어야 하고 사건의 발생과 경과 결과에 대한 인과와 함께 완결성이 필수적입니다. 서사에는 이처럼 시간의 완결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렇지만 서사에서 사건과 인간의 행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뒤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사라고 하여 사건의 전과정을 다 기술하는 것은 아니죠. 사건의 내용을 전달하는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통일성 있게 잘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육하원칙이라고 부르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여섯가지 요소는 올바른 서사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그러나 이 요건만 갖추었다고 의미있는 서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요소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기술될 수도 있고 인과 관계에 따라 기술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방식으로 기술되든 각각의 요소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남으로써 일정하게 완결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사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문의 사건 기사(동아일보)
문익환 목사는 1일 최근 정부의 조국 통일 범민족 연합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 및 수배 조치와 관련, 노태우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청와대에 보냈다. 문목사는 이날 공대된 이 서한에서 "통일 운동에 관한한 관은 민을 배제하고 민은 관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었다."고 전제하고 "범민련 준비 위원장으로 각하와 허심탄회한 대화로 범민련에 관한 모든 오해를 풀기 위해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역사적 사건의 서사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1896년의 의병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군은 이제 막 제복을 갈아 입고 신식 소총을 멘 개화군이었다. 비록 개화군이 연약하기는 하였지만 일본군 장교가 일일이 무기 사용법과 사격법 그리고 작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이었고 활 창 칼 심지어 맨손을 쥔 오합지졸이었다. 무기에 관한 한 의병들이 동학군보다 열악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학란 때에는 비록 고철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극려백포니 회선포 불랑기 대포니 ㅎ는 각종 포기가 사용되었으나 의병들에게는 그것마저 모두 없어진 뒤에 일어났기때문에 화승총이 최대의 무기였다. 조선왕조때의 구식 대포는 자칫 잘못하면 발포시에 발포자 자신이 화상을 입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고 사용법이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의병장 김하락이 광주산성에 올라갔을 때 대완기 불랑기 천황포 지자포 등이 각각 수십 문씩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던 것이다.(박성수 <독립운동사 연구>)
문학적 서사
종잡을 수 없는 유탄 귀머거리 만드는 폭음 무릅쓴 채 고향에 남아 산다는 것이 바보짓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없는 자 고향을 뜨기가 있는 자 이민 가기만큼 쉬운 일인가. 화성군 쿠니 사격장 육십일대째 토박이 전만규 그리하여 그는 고향을 버리는 대신 되찾는 일에 뛰어들었다. 뻘밭에 고등 껍데기 뒤집어 쓰고 기가 기총소사에 비명도 없이 죽는 게새끼처럼 살 수 없다고 다짐하였다. 폭격으로 귀비섬 사라지고 농섬 무너져 가는 마당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고향 고온리가 조국으로 보이더라고 했다.
그는 지금 수원에서 징역밥 먹고 있다. 휴지가 된 청원서 진정서 집어 치우고 사격장 울타리 뛰어 넘은 죄이다. 조용하던 주민들 선동해 미공군 폭격 훈련 줄기차게 방해한 이른바 이적죄이다.
(최두석의 <전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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