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기도의 나라

[스크랩]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언더우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8. 2. 19:00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언더우드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호레이스 H 언더우드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1885년이었다.
 
그 해 스물다섯살의 이 청년은 막 만들어진 서양식 병원 학교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다.
 
그로부터 30년 후, 언더우드는 사촌형 존 언더우드로부터 거금을 희
호레이스 H 언더우드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1885년이었다.
 
그 해 스물다섯살의 이 청년은 막 만들어진 서양식 병원 학교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다. 하사 받아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다.
조선은 이미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들어가고 말았지만, 
그는 이 밑 모를 투자에 힘을 다했다.
 
 연희전문을 설립한 이듬해, 그러니까 1916년,
그는 이 학교의 후원금을 모으러 미국으로 갔으나,
 이미 몸에는 큰 병이 번져 있었고, 결국 그 때문에  숨을 거두었다.
 
언더우드가 서울에 도착한 지 몇 년 후에 쓴 것으로 보이는 기도문을
한 장 읽게 되었다.
 
기도문은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이라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차라리 냉정한 당시 조선에 대한 관찰이었다.
"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니, 열악한 환경을 탓할 곳도 마땅치 않을 터에, 언더우드는 조선의 마음을 찾으려고 자신의 생애를 걸었다.
 
그에게 생긴 병은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얻은 암이 아니었던가 추정하고 있다.
학교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협조는커녕 모함과 사기가 더 심했던 모양이다.
 
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것을 암시하는 구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마르고 가난한 땅'을 향한 애정이 드러나는 구절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광혜원과 연희전문은 지금 연세대학교 의 뿌리가 된다.
분명 '눈물로 기뻐할' 만큼 큰 학교가 되어 있다.
출처 :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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