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10대제자
1. 지혜(智慧)제일 사리자(舍利子) - 사리푸트라
최초에는 코올리타(목련)와 함께 산자야의 제자였다. 어느날 산정제(山頂祭:제사)를 구경 간 두 사람은 무상을 느끼고 출가하여 산자야의 교단에 출가하였다. 어느날 왕사성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한 사문(앗사지라고 함)을 만났다.
사리자 : 사문이여, 당신의 정은한 그 태도에 나는 매혹이 되었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시구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그리고 그 스승이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지를..
사문 : 사문이여, 나의 스승은 석존이옵니다.
사문은 자신이 불제자임을 밝히고 그 스승인 부처님에 대해서는, 자기는 비구가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 그것을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요강만을 말해 주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다.
제법(諸法)은 인연에서 생겨나고
여래는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제법의 소멸역시
대사문은 이같이 말씀하신다.
사리불은 이 말을 듣고 그 부처님란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리불은 이 사실을 친구인 목련에게 알렸으며,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두 사람은 산자야를 설득하였으나 그는 완고하게 응하지 않았다. 마침내 산자야는 뛰어난 두 제자와 그 두 사람을 따라서 2 백 50 명의 제자들이 부처님께로 가는 것을 보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절명했다고 한다.
2. 신통(神通)제일 목련존자(目連尊者) - 목갈리나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두 번째는 목련존자( 또는 목건련 - 못가라나)이다. 지혜제일인 사리불에 대해 목련은 <신통 제일>이라 한다. 목련은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리불과 함께 산정제를 구경 나갔다가 무상을 느끼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둘이서 출가를 결심한다. 처음에는 산자야의 제자로 있다가 나중에 사리불과 함께 불교 교단에 귀의하게 된다. 불교 교단에 귀의한 후에도 두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데바닷다의 반역 행위에 의해서 교단이 분열의 위기에 직면 했을 때 이 데바닷다를 따라서 교단을 빠져나간 비구들을 다시 설득해 데려온 것이 이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때를 같이하여 입멸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성격은 대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리불이 <지혜 제일>이라고 불리우는 사색형의 사람인데 반하여 <신통 제일>의 목련은 오히려 행동형의 사람이였다. 불교에서는 <사통행(四通行)>이라는 말이 있다. 사통행은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써, 최종적인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빠른가 느린가, 그리고 또 그 길이 편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거기에 이르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낙(樂) - 고(苦), 속(速) - 지(遲)의 조합으로 네 가지가 된다. 즉, 낙속통행 - 고속통행 - 낙지통행 - 고지통행의 네 가지가 그것이다.
사리불은 낙속통행의 타입이었고, 목련은 그의 자기 평가에 따르면 고속통행의 타입인 것 같다. 사리불이 천재형인데 비해 목련은 노력형의 불자라할 수 있다.
- 육신통 -
신통력에 관해서 불교에서는 <육신통>을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 - 원하는 장소에 자유로이 출현할 수 있는 능력.
2) 천안통(天眼通) - 사람들의 미래의 운명까지도 내다보는 능력.
3) 천이통(天耳通) - 예민한, 초인적인 청력.
4) 타심통(他心通) - 남의마음을 들여다 보는 능력.(독심술)
5) 숙명통(宿命通) - 자신이나 남의 전생의 모습을 아는 능력.
6) 누진통(漏盡通) -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
누진통은 다른 종교로써는 얻어질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초능력인 것이다. 부처님은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이 누진통을 얻어 부처가 되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는 누구나가 누진통을 포함한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석존은 <육신통> 가운데 누진통을 제외한 다섯 가지 신통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계셨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지혜의 종교이지, 다른 종교처럼 기적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부처님의 만년 무렵의 사건이다. 코오사라국의 유리왕이 부처님의 고국인 석가국을 침공했을 때의 일이다. 유리왕은 젊은 시절에 석가국에 유학을 했었는데, 그때 석가국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았었으므로, 말하자면 복수를 해 주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나선 공격이었다. 부처님은 처음에는 석가국으로 통하는 거리의 큰 나무 아래서 조용히 참선을 하고 계셨다. 두 번, 세 번까지는 유리왕도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고 진격의 일시 중단을 명령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왕의 심경은 분노에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던 것이었다. 석가국의 멸망의 날은 가까웠다. 그래서 목련은 부처님께 제안했다.
“어떻게 신통력을 가지고 석가국을 지켜 구원하지 않으렵니까?”
석가국을 쇠울타리로 탁 쳐 덮어 버릴 것을 목련은 간절히 진언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목련의 이 간청을 단호히 물리쳤다. 석가국 전체의 사람들이 쌓은 업(業)의 응보(應報)를 그 누가 대신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석가국이 멸망하는 것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을 간파하여 그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의 지혜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연기>의 이법이지만 그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곧 누진통이다. 즉 지혜를 젖혀 두고 우선 신통력(기적)에 의해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은 큰 착각이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생각하여 목련에게 신통력의 사용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도 거리의 나무 아래에서의 좌선을 중지하셨다. 유리왕은 석가국을 공략하여 석가국의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그렇지만 유리왕 역시 귀국 후 뱃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에, 갑자기 인 폭풍우에 배가 전복하여 그대로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교를 미워하는 외도(--> 타종교 )의 사람들은 이 목련 존자를 최대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의 불교 교단이 그처럼 흥성하는 것은 거기에 목련이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도적을 사주하여, 그 목련 존자를 죽이게 했던 것이다. 목련은 한 번은 그 위기를 모면했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업을 자각하고 스승인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드린 후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목련 존자는 무턱대고 신통력을 사용하여 도망쳐 다니지는 않았다.
3. 두타(頭陀)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 마하카샤파
인도의 마가다국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촌에 핏파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종교심이 많았는데, 양친을 여의고 난 다음에는 출가를 하여 수행에 전념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결혼할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하던 그도 마침내 한 가지 타협안을 내 놓는다. 즉 핏파리는 순금으로 실물 크기의 예쁜 여성상을 만들게 해 가지고, 이러한 이상적인 여성이라면 결혼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행운이지, 불행인지 꼭 닮은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황금상 그 자체를 약혼 선물로 하여, 핏파리의 부모는 서둘러 결혼을 시키려고 청혼을 했다. 여성의 부모는 기꺼이 승낙을 하였다. 핏파리는 20세였고, 아릿다운 아내는 16세의 바들러였다.
청년 핏파리의 양친은 돌아가셨고 그의 나이 32세가 되었다. 핏파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쟁기로 파 젖어 놓은 흙더미 속에서 한 마리의 작은 벌레가 머리를 내민다. 공중으로부터 작은 새가 내려와 그 벌레를 탁 쪼아 가지고 다시 날아간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핏파리는, 순간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를 범했음을 느끼고 깜짝 놀랬다. 그리고 확고히 출가할 결심을 굳히는 것이다. 아내인 바들러도 뜰에다 참깨를 널어 말리우고 있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작은 새가 날아와서는 참깨 위에 기어 가고 있는 벌레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를 범한 것을 알고, 출가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같은 결심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리고 둘이서 함께 동시에 출가한다. 도중까지는 같은 길을 갔지만, 남녀가 함께 같은 곳에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갈림길에서 바들러는 왼쪽 길로, 핏파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오른쪽 길로 든 핏파리는 거기서 부처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핏파리 부부가 출가하던 순간에 대지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그의 출가를 알고, 그가 오는 길을 미리 알고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찾아온 핏파리에게
"마하가섭이여, 이리 와서 앉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부처님 쪽에서 먼저 부르셨다고 한다. 핏파리, 즉 마하가섭도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본 순간, 이 사람을 젖혀 두고 달리 내가 귀의할만한 스승은 없다고 깨달았던 것 같다. 이리하여 부처님께 귀의한 마하가섭은 스승의 교설을 금방 이해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스승을 만난 후 8일 후에 깨달음을 얻고 아라한(성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부처님의 의발을 물려 받은 인물이다. 즉 후계자가 된 것이다.
마하가섭은 <두타제일>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두타란, 의, 식, 주에 대한 집착의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한 수행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두타의 실천 항목으로서는 열두 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그것을 <십이두타행>이라고 한다.
1 .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마을과 떨어진 산림에서 산다.
2 . 상행걸식(常行乞食) 언제나 탁발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3 . 차제걸식(次第乞食) 걸식을 하는데 있어서 집의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4 . 수일식법(受一食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5 . 절량식(節量食) 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6 .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중식 이후에는 음료(국물)를 마시지 않는다.
7 . 착폐납의(着弊納依) 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8 . 단삼의(但三依) 세 개 옷밖에는 갖지 않는다.
9 . 총간주(塚間住) 무덤 사이에서 산다.
10. 수하지(樹下止) 나무 아래에서 산다.
11. 노지좌(露地坐)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 但坐不臥)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눕지 않는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나선 금욕의 성자상이다.
4. 천안(天眼)제일 아나율(阿那律) - 아우룻다
아나율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출신으로서,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나율에게는 형제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형제에게 출가의 결심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아나율이 털어놓은 결심을 들은 형제 또한 출가의 결심을 굳히고 있는 터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출가를 해 버리면 가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 대가 끊기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함께 의논한 끝에 아나율이 출가하고 그 형제가 집에 남게 되었다. 아나율은 마침내 어머니에게 출가를 승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대로 출가를 승낙하지 않았다.
"죽어도 내 자식을 내 놓을 순 없어. 하물며 살아 있는 자식을 집을 나가게 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것이 그의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내 자식아, 만일 밧디야가 출가를 한다고 한다면 그 때는 너한테도 출가를 허락해 주지."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을 포착하고, 그 때부터 아나율은 밧디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밧디야는 석가족 중에서도 명문의 귀족이었으며, 이미 정치적으로 좋은 지위에 올라 있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설마 그 밧디야가 출가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어머니의 계산이었는데, 아나율의 열의는 이 밧디야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던 것이다. 아나율과 밧디야, 거기에 다섯 친구를 합해 모두 일곱 사람이 동시에 출가한 것이다. 이 중에는 십대 제자로 꼽히는 아난타와 우바리도 있었으며, 데바닷타 또한 이 때 같이 출가를 했다.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코오사국 사위성의 교외에 있는 기타태자의 임원에 건립되어진 정사이다. 그 때 석존은 기원정사의 강당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청중들은 출가자만이 아니었고 재가의 사람들도 와 있었던 모양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은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좌수를 하고 있는 승려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나율이었다. 그를 슬쩍 흘겨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은 재빨리 그것을 눈치채셨다.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잠을 잔다. 그것도 좋겠지."
부처님은 그런 식으로 말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아나율을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좌가 끝난 다음, 부처님은 아나율을 한 사람만을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그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도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출가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대가 설법을 들으면서 선잠을 자다니, 도대체 그 최초의 결심은 어디로 간 거지. 정신이 해이되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래."
아나율은 부처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스승의 날까로운 지적에 그는 마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히 내 마음이 해이된 탓입니다. 오늘 이후로 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 가령 이 몸이 썩어 부서질지라도 세존 앞에서 절대로 자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나율은 잠과 싸우기 시작했다. 잠을 거부할 것을 맹세한 아나율의 눈은, 감겨질 줄을 모르고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기만 했다. 의사를 치료를 부탁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그리하여 아나율은 눈동자만 멀뚱멀뚱 뜬 상태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는 결국은, 육체의 눈은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법(진리)의 눈인 <천안(天眼).심안(心眼)>을 얻었던 것이다.
5. 해공(解空)제일 수보리(須菩提) - 수부티
수보리의 숙부인 수닷타가 업무차 마가다국에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 간청해서 코오사라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큰 일이었다. 부처님의 일행을 묵게할 장소가 문제였다. 수행을 계속하기에 가장 알맞은 한적한 장소가 있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가에서 너무 떨어진 곳이어서는 곤란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부처님 자신도 그러하지만 불제자들은 탁발에 의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수닷타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곳이 기타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임원이었다.
"이 땅을 제게 물려 주십시오!"
수닷타는 태자에게 제의를 했지만, 그곳은 태자도 마음에 드는 땅이어서, 황금을 깔아 채워 준대도 떼어 줄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리하여 한 장관에게 중재를 부탁했는데, 그 장관은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는데
"태자의 땅에 황금을 깔아 채워 주고서라도 사는 게 어떻겠소?"
장관은 설마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주고 살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해 본 것이었다. 그런데 수닷타는 그 장관의 말대로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날 날이 새기가 바쁘게 기타태자의 임원으로 황금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황금을 절반쯤 깔았을 때, 기타태자가 승낙을 하였다.
"당신의 열의에 감동했소. 나머지 절반의 땅은 내가 그분에게 기증하기로 마음을 굳혔소."
이리하여 기타태자의 임원에 정사가 세워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기원정사>라고 불렀다.
부처님을 맞는 날이었다. 기타태자도 일찍부터 정사에 나와 부처님께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수닷타는 어린애들처럼 부산을 떨며 서둘러 댔다. 마침내 기원정사에 도착하신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보리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불제자가 되어 그는 수행에 힘썼어며, 훗날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한 사람이 되기에 이른다. <해공제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 때에 실제로 맨 앞에서 부처님을 맞았던 것이 연화색 비구니였던 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최초로 맞아 준 것은, 그대가 아니라 수보리인 것이다. 그는 하늘을 보고 내 법신을 최초로 본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은 부처님의 육체적인 모습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부처님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어, 그런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집착을 초월한 자유의 경지가 바로 <공>이며, 그것을 수보리만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공>의 입장에 서서 참 부처님을 배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수보리가 <해공제일>이라 불리우는 연유라고 한다.
6. 설법(說法)제일 부루나(富樓那) - 푸르나
부루나는 수나아파란타국의 수퍼라카라는 곳의 출신이다. 그곳은 인도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로 옛날에는 무역항으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루나의 아버지는 수퍼라카의 부호였다. 그러나 부루나는 아버지와 여종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재산을 나누어 받지를 못했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부루나는 하나의 행운을 만났다. 때마침 입수한 우두전단 (향나무의 일종)을 밑천으로 하여 큰 돈을 모은다. 이리하여 그는 부자가 되었으며 해양 무역을 하기에 이른다. 부루나의 일곱 번째 항해 때의 일이었다. 이번의 항해에는 사위성의 상인들이 동승해 있었다. 부루나는 이 상인들의 기이한 행동에 시선이 멎었다. 그들은 배에서 모두 목소리를 같이 하여 무언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노래입니까?"
"이건 노래가 아닙니다."
"그럼 주문입니까?"
"아뇨, 주문도 아닙니다. 이것은 불타의 가르침입니다."
"불타요? 불타라니, 어떤 분입니까?"
이런 대화가 오고간 끝에, 부루나는 부처님의 불교 교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항해가 끝난 후, 그는 단숨에 사위성을 찾아갔다. 사위성에는 전부터 아는 수닷타가 있었다. 부루나는 이 수닷타의 소개로 부처님을 뵈었다. 그리고 곧 출가하고 말았다. 후년에 그는 <설법제일>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다음은 부처님과 부루나 존자와의 문답의 일부이다.
"세존이여,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불도 수행에 힘 썼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대, 나에게 일상에 명심해야 할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루나여, 그 지방의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듣고 있는데, 만일 사람들이 그대를 대중의 면전에서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는가?"
"그 때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맹이, 혹은 손질 발길질로 나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렵니다."
"그럼 그들이 나무나 돌을 가지고 그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때는 칼을 가지고 나를 상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만일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히는 날에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칼로 가지고 상처를 입힌다 할지라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칼로써 그대를 죽일 때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 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불자들 가운데는 인생의 온갖 고뇌가 따르는 것을 싫어하여. 칼이나 독물로서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고 했던 자도 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끊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번거로움을 덜어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에 이르자 부처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이렇게 말 했던 것이다.
"부루나여, 나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그대에게 그만한 각오가 서 있다면 분명히 괜찮을 거다. 너의 고향으로 가서 법을 펼치고 오도록 하라."
7. 논의(論議)제일 가전연 - 카트야나
가전연은 중인도의 서쪽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웃제니의 출신이다. 불서의 기록에 따르면, 웃제니는 부처님이 전연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던 도성의 하나로 들어지고 있다. 웃제니의 왕은 부처님과 불교 교단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능하면 부처님을 자기 나라로 초청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그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그 개략만이라도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왕은 일곱 명의 사신들을 사위성의 기원정사로 파견했다. 그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이 가전연이였다. 그는 아버지가 왕을 보필하는 스승으로 있었기 때문에 일곱 명 속에 끼어 들어 갈 수 있었다. 가전연은 부처님을 만나자마자 그대로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가전연은 수행한 후 귀국하여 왕으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케 했다. 왕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출가 시켰다.
<일야 현자의 게>
가전연 존자가 부처님의 문하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왕사성의 타포우다(온천) 정사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사밋디라는 비구가 온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밋디가 온천에서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천인(天人)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일야 현자의 게를 알고 있습니까?"
"아뇨, 모릅니다."
하고 사밋디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천인은
"그렇다면 그것을 스승인 부처님께 가르쳐 달라면 될 거 아니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사밋디는 부처님께 찾아가 <일야 현자의 게>를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을 했다. 부처님은 즉석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현재의 것을
그것이 있는 곳에서 관찰하고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일 없이,
잘 간파하여 실천하라.
다만 오늘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누가 내일, 죽음이 있는 줄을 알랴.
참으로 그 사신의 대군과
만나지 않아도 될 리가 없다.
이와 같이 간파하여, 열심히
밤낮을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는 자,
이러한 사람을 일야 현자라고 하고,
적정자(寂靜者), 적묵자(寂默者)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일야 현자의 게>를 사밋디에게 가르쳐 준 채로 일어서서 가 버렸다. 사밋디는 게의 문구 만으로써는, 그것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가전연 존자를 찾아 갔다. 그 게에 대해서 설명을 해 달래기 위해서 였다.
"친구여, 사밋디여, 세존이 계시지 않습니까? 세존 그 어른을 젖혀 두고 나한테 해설을 요구하는 것은 큰 나무가 우뚝 솟아 있는데도, 작은 나무에 의지하려는 것과 같은 짓이요."
가전연은 이와 같이 사양하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사밋디는 다시 이렇게 말하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다.
"석존에게 게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이상 더 해설까지 해 달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전연 존자는 이것을 상세히 해설할만한 학식의 소유자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터이니 염치불구하고 제발 세존을 대신해서 나에게 게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시요."
그래서 가전연 존자는 그 게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사밋디는 그것을 감격적으로 경청했던 것이다. 후에 부처님께서는 가전연의 해설을 전해 들었을 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거 옳은 말이다. 내가 해설을 했더라도 분명 가전연과 마찬가지로 말했을 것이다."
* 일야 현자 : 오늘 하루라는 <현재>를 결코 게으르지 말고 바르게 노력하는 현자라는 의미
그의 교화 활동을 나타내주는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소오나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인 웃제니로 돌아온 가전연의 시자(=비서)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직 비구는 아니었고 재속의 신자였다. 그러나 소오나는 가전연 존자를 시중 들고 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도 출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스승에게 그와 같이 요청을 한다. 스승은 최초에는 그에게 단념하라고 권했지만, 그의 열의를 간파하고서 결국에는 승락을 했다.
그런데 출가에는 수계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계의식을 할 때 열 사람의 비구가 거기에 입회를 하도록 정해져 있다. 웃제니는 변방 땅이기 때문에 그 열 명의 비구를 쉽사리 모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오나의 출가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소오나는 부처님 그 분을 배알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식작했다. 스승인 가전연 존자와 상담을 했는데, 스승도 그 일을 추진해 주었다. 이리하여 소오나는 머나먼 사위성 기원정사까지, 부처님을 찾아 여행길을 떠난다.
그가 기원정사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은 이 먼 길을 찾아온 비구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셨다. 웃제니의 사정을 묻는 데로 이야기하는 중에, 변지라서 비구를 모으기가 무척 힘들어 그의 출가가 늦어졌다는 까닭을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무척 딱하게 여기시고 동정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출가의 작법에 다음과 같은 특례 조항을 설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변지에서는 다섯 명의 비구로써 구족계를 주어도 좋다는 조항이었다. 구족계란 출가자를 위한 계율이다.
8. 지계(持戒)제일 우바리(優婆離) - 우팔리
우바리 존자는 부처님의 입멸 후 이루어진 제1회 결집에서 율(律)을 송출(誦出)한 분이며, 세존과 같은 석가족 출신이다. 출가 전 그의 직업은 이발사였다고 한다. 우바리 존자는 붙임성이 좋은 성격의 비구였는데, 아란야(= 인가에서 동떨어진 삼림이나 들판)에서 수행을 하고 말한 때의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세존은,
"우바리여, 그대에게는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반드시 어울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만 두는 게 좋겠다"
고 충고 했던 것이다. 많은 불제자들이 아란야에서 들어가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에게는 금지시키시는지 의아해 하는 우바리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연못이 하나 있었다. 코끼리가 찾아와서 목욕을 했다. 귀를 씻고, 등을 닦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앗다. 이 모습을 토끼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코끼리가 목욕을 다 끝 마치고 돌아간 다음 토끼는 자신도 목욕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코끼리 흉내를 내어 못으로 들어 간 토끼는 곧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몸집이 작으므로, 못이 깊고 꼿꼿이 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토끼는 허둥지둥 도망쳐 나와 버렸다.”
부처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니까 우바리여, 아란야로 들어가서 수행을 할 수 없게되는 사람도 있다. 우바리여, 그대에게는 아란야는 걸 맞지가 않다. 그대는 교단 안에서 수행을 계속하도록 하라. 그대는 그러는 편이 좋다."
세존은 간절히 우바리 존자를 설득했다. 물론 우바리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아란야에 들어 가지 않고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계속 수행을 하여 <지계 제일>이라고 불리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9. 밀행(密行)제일 라후라(羅候羅) - 라훌라
라후라의 출생에 대해서 불전 속에서는 약간 이상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라후라가 세존이 성도를 하던 날 밤에 태어났다는 설과, 세존이 출가하기 전에 태어났다는 설이다. 물론 일반적인 설은 세존이 출가하기 전에 태어났다는 설이다.
앞의 설에 의하면 라후라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시던 날 밤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부인인 아쇼다라는 불륜의 자식을 낳았다고 하여 친척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큰 돌 위에 라후라를 얹어 놓고
"이 애가 내 남편의 자식이라면 이 돌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돌을 못에 던졌다. 분명히 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녀의 정절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기뻐한 정반왕은 연못 속으로 들어가서 라후라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라후라가 없어져 가벼워진 돌이, 곧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후라>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난 날 밤에 월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월식]을 [라후라]라고 한다.)
후설에 의하면, 아들의 탄생 소식을 들은 세존은 그 때,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장애가 생겼구나, 계박이 생겼구나"
라고.. 이미 일찍부터 출가의 뜻을 품고 있던 부처님은 후계자를 얻음으로써, 출가의 조건은 갖추어졌지만, 반면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출가의 결심이 무디어질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출가하는데 [장애]와 [계박(얽매임)]이 생겼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장애]라는 말이 원어로 [라후라]라고 한다. (월식은 [빛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라후라]라고 부르는 것이다.)
"라후라(장애)가 생겼다."
는 세존의 중얼거림이, 그대로 <라후라>라는 이름이 되었다. 라후라의 출가 귀향을 하신 부처님은, 가비라성의 거리로 탁발을 다니셨다. 단 한 번도 궁전으로는 찾아가지 않으셨다. 참다 못한 정반왕은 사자를 보내 이렇게 전했었다.
"우리 왕가의 부로 말하면, 수천 명의 출가자에게 공양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아들이여, 제발 비렁뱅이 짓만은 그만 둬 다오!"
그러나 부처님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것은 출가자의 바른 생활 방법입니다"
라고.. 탁발하며 돌아다니는 부처님을 가리키며, 아쇼다라는 아들인 라후라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저분이 너의 아버지란다. 어서 빨리 갔다 오렴, 가서 재산을 받아 오는 거다. 자식은 누구나 자기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나눠 받을 권리가 있는 거니까."
라후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부친인 부처님께로 달려갔다.
"아버지, 내게 재산을 주십시오."
그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반복한다. 부처님은 아무 대답도 없이 교외의 니그로오다원으로 돌아갔다. 부처님은 고제자인 사리불을 불러서 라후라의 문제를 상의했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부탁하여 아들인 라후라를 출가 시켰다. 또 라후라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한 사람의 비구로는 취급할 수 없어므로, 그의 지도를 목련에게 맡겼다.
10. 다문(多聞)제일 아난(阿難) - 아난다
아난 존자는 석가족 출신으로서 세존의 사촌 아우라고 한다. 불교경전에 그 이름이 나온 횟수는 아마 십대 제자들 가운데 이 아난 존자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는 부처님의 시자(= 비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누군가에게 시자 노릇을 맡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장로들이 차례차례 그 역을 맡고 싶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 나이를 먹어 체력도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제안을 물리쳤다. 부처님이 바라던 것은 아난이었다.
하지만 정작 제안을 받은 아난이 주저했다. 너무 무거운 임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지만 아난은 세 가지 의 조건을 제시하고 세존의 제안을 수락했다.
1) 석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의복은 받지 않는다.
2) 석존을 위한 식사는 받지 않는다.
3) 비시에 석존과 만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교단의 주재자이시다. 따라서 재가 신자가 부처님을 초대해서 부처님을 특별히 식사라도 대접한다거나 특별히 좋은 옷을 공양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 시자에게도 몫을 나누어 줄 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양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가령 시자가 될 지라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모두 똑같은 불제자이기 때문에 특별 취급을 받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비시에 석존과 만나지 않는다.
- 언제든지 석존과 만날 수 있다는 특권을, 자신의 수행상 편의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아난의 자계였다.
아난 존자는 25년 동안의 시자 노릇을 한 자로서의 체험에 의해 결집을 시종 리드하여, 경전을 완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오늘날 우리들이 원시 불교의 성전을 읽어 수가 있는 것은 이 아난 존자의 힘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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