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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입문 - 불교와 인생 -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2. 22. 07:23

불교입문 - 불교와 인생 -1

불교와 인생



<1>{인연으로 받는 새로운 생}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집니다.

한 알의 곡식이 여물기 위해서도 뜨거운 태양과 때맞춰 내리는 비, 그리고 결실기에는 마른 바람이 골고루 불어 주어야 하듯이 여러 가지 인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곡식은 여물지 않을 것입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이토록 천지자연의 조화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있어야 할 많은 소중한 인연이야 말로 다할 나위가 없습니다.


인간은 끝없는 세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서 지금의 이 생을 받았다고 합니다. 육도 윤회의 여섯 갈래 가운데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받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은 인연들은 참으로 선근공덕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자신의 과거세에 지은 과보를 이 생에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고, 또 남에게 빚진 것을 갚고, 남에게 해 되는 일을 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은 공덕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서 잘 살고, 좋은 공덕을 닦지 않아 전생에 잘못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 태어났어도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에 따르면 이 생은 견뎌내야 할 과보일 뿐, 향상도 극복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이와 같이 소극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그 중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 어려운 단계를 다 지난 우리 불자들에게 설사 지은 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차님의 정법 속에서 사는 지금, 업의 소멸에 짓눌려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정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2>{불자의 신행 생활}


안심입명(安心入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와 안락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불자의 삶이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에서 단 한번 뿐인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중하고 가치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려고 발심하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집안에서 어릴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바른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삶이며 불자가 되는데 특별한 절차나 과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은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됩니다. 오래 믿은 사람과 지금 시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신행생활을 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 시기는 이전의 삶을 종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후의 삶을 규정합니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가 그렇고,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 과정을 불자로서 맞이하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인의 삶을 다름 삶과 구별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인이 되면 불교의 고유한 의례와 의식을 만나게 됩니다. 의례와 의식은 신앙의 외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교의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와 풍습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다소 형식적인 것일 수 있지만, 의식에 깃들인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의식에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 법회가 있고, 입문의례로서 수계의식이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절실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기도와 발원의식이 있고, 종교적 성취와 발전을 위한 수련의례가 있습니다. 그 밖에 불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시기에 치르는 명절의례가 있으며, 일반 삶 속에서 흔히 만나는 혼례, 상․장례 등의 평생의례가 있습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이 행하는 의례가 있는 반면 출가 수행자들만 행하는 전문적인 의례도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불교의식에 의하여 참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도 더욱 맑고 밝아질 것입니다.



거룩한 생명


한 개인의 생명은 타인의 생명과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습니다. 후손을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거나 정한수를 떠 놓고 빌기도 하였습니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목욕 재계하고 깨끗한 흰 옷을 갈아 입었으며, 오직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찬물에 목욕을 열 두번 하였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옷을 열 두번 갈아입어 몸에 서린 부정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귀하게 생명이 얻어지면 태 속에 있을 적부터 거룩한 생명으로 대접하여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태교에 정성을 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성개방 풍조로 말미암아 미혼모가 급증하고, 또한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감별 등을 통하여 인공중절을 쉽게 행하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두 배 이상이 인공중절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거룩한 인연으로 만난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일입니다. 이런 세태에 물들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가정과 사찰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축원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 법회에 나갈 수 있을 때에는 부처님 전에 기원한 부모의 발원을 알려주며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도 불교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사찰에 자주 가서 절 분위기에 친숙해 지도록 해주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린이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면 커서도 바른 인간, 바른 신행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른 사람, 바른 불교인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나와 똑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 각자가 지극히 거룩한 가치와 덕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이 거룩한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불교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적.법률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여부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불교에 있어서는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이 성인의 가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판단력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는 삼귀의례를 주는 것이 좋으며, 자라서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계를 받아 지닐 수 있을 때에 오계를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불교의 혼례


불교의 혼례 절차는 과거 구원겁 전에 선혜선인과 구리선녀가 혼인을 약속하고 각각 꽃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연등 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전생담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과 혼인을 고하는 고불식을 반드시 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두 사람이 혼인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고 스님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서로 약속하는 풍속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인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장차 성불하겠노라는 서원이 있을 때 비로서 완벽한 혼례라고 할 것입니다.


혼례장소는 답답한 예식장보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법당이나 절 마당 그리고 야외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 좋으며, 혼례복도 실용성이 없고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 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 한복 또는 개량 한복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법회


불자들의 신행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법회 참석입니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태음력 위주의 생활양식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일주일 단위로 노동과 휴식이 반복되는 태양력 위주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법회도 현대의 생활주기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찰에서는 음력 위주의 법회와 양력 위주의 법회가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불자는 법회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법회란 불교에서 가장 거룩한 만남의 장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배우고 전파하는 자리입니다. 즉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재를 마련하여 널리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지금 절에는 매달 같은 날이나 같은 요일에 정기법회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포살일을 정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정기법회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달 10재일이 있는데 1일은 정광(定光), 8일은 약사(藥師), 14일은 현겁(賢劫), 15일은 미타(彌陀), 18일은 지장(地藏), 23일은 대세지(大勢至), 24일은 관음(觀音), 28일은 노사나(盧舍那), 29일은 약왕(藥王), 30일은 석가(釋迦) 재일입니다.


이 중 일반 대중이 동참하여 기도하는 법회는 초하루,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며, 사찰에 따라 약사, 미타 등 한 두번의 법회를 더 진행하기도 합니다. 지장, 관음재일이 특히 많이 지켜지는 이유는 지옥의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지장재일에는 지장예문과 돌아가신 분을 위한 발원과 정근 즉,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관음재일에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예불과 발원을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3장 6재일이라고 하여 1월,5월,9월의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를 개최하였으나, 요즘에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일요법회, 수용법회 등의 요일법회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한 수련법회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신도법회는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주로 봉행되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법회 등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용일을 정기법회 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특별한 법회들이 있습니다. 우선 불상을 새로 모시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상을 모시는 법회로써 부처님 상을 모시는 것은 거룩한 부처님의 재워 익히며 실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는 것입니다. 탑이나 법당을 건립할 때는 기공식과 낙성식의 법회를 하고, 불상이나 탱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점안식을 봉행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불상이라 하더라도 점안식을 하지 않으면 작품으로는 인정 받을 지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을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의식은 일반 신도가 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법사님을 모시고 법식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수계법회(受戒法會)가 있습니다. 재가신도나 출가수행자는 불교교단에 입문하기 위해 오계, 십계, 보살계, 구족계를 받아야 합니다. 계를 받는 의식을 수계식이라고 하고, 수계 후에 주어지는 이름을 법명이라고 합니다.


 


성지순례 법회가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불자된 사람으로서 순례하며 참배하는 의식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과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인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순례하는 것도 선지순례 법회입니다. 따라서 이 법회는 성지를 순례하며 신심을 묵돋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방생의 공덕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생명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 방생(放生)이 주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보다 넓은 마음에서 생명계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만생명과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요, 방생의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 3월 3일, 8월 보름에 방생법회를 열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특별한 시기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방생은 죽게 된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의식입니다. 작게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 고기나 새 등을 사서 자기 살던 곳으로 다시 놓아 주는 것이지만, 본래의 의미는 불살생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만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는 것은 전생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것이고, 미래의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생의 반대인 방생의 공덕을 짓는 일은 결국 내 부모형제를 살리는 일이며 나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더욱 살리는 일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생의 공덕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째 자식을 원하는 사람은 방생하라. 남을 살게 해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 자식의 경사가 있게 된다.

둘째 임신을 하면 방생하라. 방생은 만물을 보호하는 것이니 산모도 반드시 보호받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방생하라. 기도함에 방생의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재를 지낼 때에도 방생부터 행하라. 방생으로 불보살님의 감동을 받으면 큰 복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재계를 할 때,

여섯째 출세를 구하려 할 때,

일곱째 염불할 때도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방생은 선근공덕을 짓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행할 때도 있고, 재난을 만났거나 병 때문에 원을 세워 방생을 할 때도 있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전후로도 방생을 합니다.


요즘은 방생이 단순히 물고기나 새를 놓아 주는 일 말고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회 봉사적인 행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불공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일상적인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합니다.


불공의 핵심은 베품입니다. 공양은 음식이나 의복, 혹은 그 밖의 물을 삼보님과 부모님, 스승과 망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특히 삼보님께 공양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로 크게 장려하고 있습니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간의 재물이나 향,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습니다.


몸(身)으로 하는 예배 공양과 입(口)으로 하는 찬탄과 뜻(意)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삼업(三業)공양, 음식, 의복, 탕약, 방사(房舍) 등을 올리는 것을 사사(四事)공양이라고 합니다. 또한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法)공양을 베푸십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3>{불교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땅에 전래된 지 160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불교는 우리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습니다.



5대 명절-부처님 오신날/출가절/성도절/열반절/우란분절


 


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합니다. 법요식 가운데는 욕불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며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 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용시켰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그 순서는 탄생불을 불단에 모시고 룸비니 동산의 화원을 상징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향탕수 즉, 감로다를 준비해서 비밀스럽게 목욕시키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큰스님을 증면법사로 모시고 비밀스럽게 행했던 것인데 요즘은 대중화 되어 스님과 신도가 함께 관욕의식에 참석해서 정수리에 향탕수를 부으며 공덕을 쌓는 풍속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또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 1만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가난한 여인이 한 등을 켜서 1만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의 발로인 것입니다.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 행사로 치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을 따라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고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고 자신의 소원을 빌며 등을 밝히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습니다. 이 의식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국태민안과 개인의 평안을 바라는 뜻에서 일반 민속화 되었던 것입니다.


 



출가절-출가하신 날


음력 2월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입니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상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지는 날입니다.


 



성도절-깨달음을 이루신 날


음력 12월 8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기념해 선방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법회를 갖습니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지게 됩니다.


 



열반절-깨달음을 이루신 날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이라고도 합니다.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아직도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그 꺼풀조차 벗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집니다.


 



우란분절-백중


음력 7월 15일은 여름 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입니다. 백중(白衆)은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百種)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선방에서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 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며,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선도하는 우란분절법회를 가집니다.


우란분절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 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 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 때에 부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의복, 등촉, 평상 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대덕들에게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행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음력 4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이 날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입니다. 세벌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 및 머슴들의 대동굿으로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습니다.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과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산천도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60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습니다.


정월은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쉬면서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정월에 사찰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행사를 했습니다. 즉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온 장승이나, 서낭당, 당산 거목, 국사당의 제사에 참여하거나,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원앙재(연말), 성황재(연초)를 지내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했습니다.

또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년의 평안의 발원하기도 합니다. 이 법회를 통알(通謁) 혹은 세알(歲謁)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록하여 삼보와 호법신중, 그리고 인연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 드리는 의식입니다.


2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4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습니다.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종등, 북등, 칠성등, 오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입춘에는 홍수, 태풍,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三災)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 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삼월 삼짇날 불공, 단오, 칠석 등 각종 민속절기 마다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올리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기원하기도 합니다.


민족의 세시풍속을 불교가 받아들여 불교명절화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민간 신앙을 수용, 전승하며 발전시켰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민족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환상의 C조
글쓴이 : 얼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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