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로마는 3세기경에 큰 위기를 맞게 된다. 235년~284년까지 25명의 황제가 난립할 정도로 내부 분
열에 휩싸였던 로마는 훈제국의 공격을 피해 남하하던 게르만족의 이동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로마의 황제는 게르
만족을 피해 로마 동부에 있던 강력한 요새도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를 단행하고, 로마는 동서로 분열되고 만다.
천도에 반대하던 귀족들과 기사계급들이 395년 서로마에 황제를 추대하여 서로마제국을 건설했지만 훈제국에게 쫓긴 서고트
족의 침입과 훈족의 거듭된 침입으로 혼란을 겪다 결국 게르만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이렇게 로마의 분열과 서로마의 멸망을 가져온 훈제국은 흉노의 후손이다. 기원전부터 아시아의 패자였던 흉노는 기원후 48년 군주의 자리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 남, 북으로 분열된다. 북흉노가 초원을 차지하지만 중국의 한제국과 남흉노의 공격을 받고, 초원 동부지역의 신흥세력인 선비족의 공격까지 받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선비족이 세력을 넓히면서 2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더 서쪽으로 옮겨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4세기 중반 '훈'의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370년대 훈족은 로마의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동고트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서고트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고트족은 서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이 때 그 지역
에 살던 게르만족이 고트족에게 다시 밀려 서로마지역로 피난하게 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로마제국의 변경으로 밀려든 피난민 수가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400년경 훈족의 울딘은 다시 한번 서고트족을 공격하고 훈족에 쫓긴 서고트족은 알라릭이라는
수령의 지도하에 410년 서로마제국의 수도에 난입하여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게 된다. 426년 울딘의 후계자였던 훈족의 루아는 동로마를 공격하여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내기도 한다.
루아가 죽고 등장한 것이 유럽의 지배자 아틸라였다. 아틸라는 443년 동로마 영내로 들어가 70개가 넘는 도시를 약탈한다. 이
에 동로마 황제였던 테오도시우스는 제국 영토의 반을 할양해주고 막대한 보상금과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한다. 450년경 서로
마로 진격한 아틸라는 서로마 황제의 여동생인 호노리아를 신부로 줄 것과 영토의 반을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카탈
라우눔 평원에서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에서 서로마 군인의 대부분이 사망하지만 훈제국도 큰 피해를 입어 철수한다. 그러나 이듬해인 452년 다시 한 번 서로
마를 공격하지만 로마 교황의 방문으로 서로마에서 철수한다. 그리고 동서로마 통치를 선언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아틸라는 마지막 정복 대상인 사산조 페르시아제국 공격을 위해 본국에 돌아왔지만 급작스런 출혈로 60세의 나이에 사망한
다. 아틸라 사후 훈제국은 내부 분열로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469년 동로마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대부분 다시 동쪽으
로 돌아가 현재 유럽에는 훈제국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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