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의 전성시대
불멸의 미스테리를 만든 이집트 인들.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집트에서는 왕이나 귀족이 사망하면 흙과 벽돌을 단순하게 쌓아서 만든 마스타바(Mastaba)에 매장을 하였다.
그런데 제 3왕조 조세르왕(제세르-Zeser, 기원전 2650년경) 때에 최초로 보이는 피라미드 형식의 건축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때 마스타바를 6단 겹쳐서 계단식 피라미드(140m×118m 높이 60m)를 건축하였다.
이후 스네프루왕(Snefru, 기원전2590년경)은 계단식 피라미드를 응용하여 굴절 피라미드(184m×184m 높이105m)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굴절 피라미드는 균형이 맞지 않아 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스네프루왕은 다시 건축을 시도하였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완전한 정사면체로 된 피라미드(220m×220m높이104m)가 완성되었다.
아무튼 조세르왕때부터 시작된 피라미드는 B. C. 2700년경부터 B. C. 2200년경까지 대략 500년의 기간 동안에 80여기의 피라미드가 집중적으로 만들어 졌다. 고대 이집트 왕국의 3000년 역사중 이 500년간이 피라미드의 전성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각종 다큐멘타리와 사진 심지어 영화와 에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불가사의라고 불리우는 피라미드가 건축되는 시기는 기원전 2590년 스네프루왕부터 시작되는 300년에 불과하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의 동원이 불가피하였을 것이며, 일시에 많은 백성을 동원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동원할만한 힘을 지닌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피라미드의 탄생의 근거.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건축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집트 사회에서 강력한 왕권이 형성될 수 있었겠는가? 이집트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관개농업 사회였다는 사실로부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나일강은 지형적인 영향 때문에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특수한 성격을 띤 강이다.
그러므로 나일강의 자연력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치수(治水)가 불가피하였으며, 치수의 필요에 따라서 강력한 권한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일강 주변의 각지에 소규모의 독립된 공동체 사회인 노메스(Nomes)가 발달하였다.
이 노메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소수의 강력한 호족들에 의하여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3200년경에 강력한 권한이 등장하여 상하 이집트로 통합되어 각각 다른 왕조가 출현하였다. 3100년경에는 마침내 상하 양 이집트가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만큼 강력한 전제왕권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일강 주변에서 농사를 짓던 이집트 인들은 해마다 거의 일정한 시기에 물이 넘친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지역의 정기적인 홍수가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낸 이집트 인들은 일찍부터 1년을 365일로 하는 태양력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물이 빠진 후의 농경지 정리와 토목 공사를 위해 측량술과 같은 실용적인 학문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또한 사물의 생김새를 본뜬 그림 문자를 만들어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에 기록하였다. 이집트 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종교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태양신을 비롯한 많은 신들을 믿었고, 왕은 신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사람은 죽어도 그 영혼은 살아 있다고 믿어 사람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고,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파라오의 신격화(신의 아들)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였던 이 강력한 왕들을 우리는 파라오(Pharaoh)라고 부른다. 흔히 홍수와 같은 거대한 자연력에 좌우되는 농경사회의 통치자는 자연을 지배하는 신을 섬기고 그 신을 대변하는 자로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존재는 곧 신이었다. 또한 그들은 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과 결혼할 수 없었으며, 철저하게 왕족들과만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오빠나 여동생등과 결혼하는 일도 전혀 이상스러울 것이 없었다.
신격화된 파라오는 신권정치를 행하였으며, 파라오의 권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졌다. 신권을 지닌 파라오의 지배하에서 이집트의 백성들은 예속저인 존재에 불과하였다.
물론 백성들이 농사를 지었지만 형식상 국왕의 토지를 빌어서 농사를 짓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수확량의 대부분을 국가에 세금으로 바쳤다. 하지만 그것은 강요행위라고만은 볼 수 없다. 오늘날 교회에 십일조를 내면서 그것을 강요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신이 다스리는 땅이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이 하들인 파라오에게 곡물과 각종 세금을 내었을 것이다.
수로의 굴착, 제방의 구축, 왕궁과 신전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참여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인 치수사업의 참여가 풍요와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엇을 것이다.
따라서 치수의 필요에 따라서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었고, 신격화를 통해서 파라오의 권한이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었다. 신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파라오가 지배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는 약 1000년 동안 140기 정도가 건설되었는데 현재 위치가 확인된 피라미드는 80여 개다.80여 개의 피라미드 중에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다음과 같다.
1)조세르 피라미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최초의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 왕 제세르의 피라미드이다.
조세르 피라미드는 재상이자 헬리오폴리스의 대사제이며 후일 신으로 숭배되는 임호테프에 의해 계단식으로 건조되었다. 계단식으로 세워진 이유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아마도 파라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을 세운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바닥면의 가로 세로가 121×109미터이며 높이는 60미터로서 당시에 일반적으로 건설되었던 마스타파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성곽과 피라미드 사이에는 여러 가지 용도의 건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2)스네푸르 피라미드
제4왕조의 시조 스네푸르(기원전, 2575~2551년)는 고왕조의 가장 위대한 건축자로서 새로운 장례 건축 기념물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피라미드의 경우 제 3왕조 시기부터 등장하던 계단식을 대신하여, 스네푸르 왕 대에는 완전한 정사면체로 바뀌게 된다. 또 스네푸르는 생전에 3기에서 5기에 달하는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3)쿠프의 대피라미드
스네푸르를 상속한 쿠프(기원전, 2551~2528년) 때부터 피라미드의 석조술은 더욱 발전하여 쿠프, 케프렌, 미케리노스의 3대 피라미드가 세워진다. 소위 기제의 3대 피라미드로 카이로(카이로 이름은 기제에서 따왔다) 교외에 있으며 이 중에서 쿠프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일반적으로 기제의 대피라미드라 불리는 쿠프의 피라미드가 바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이다.
4)케프렌 피라미드
쿠프의 아들(동생이라는 설도 있음)인 케프렌(기원전, 2520~2494년)은 쿠프와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214.5×214.5미터의 바닥 면적에, 높이는 143.5미터.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1000년 전 아랍인들에게 약탈당했는데 그들이 침입했었다는 낙서가 아직도 남아 있다.
5)미케리노스 피라미드
미케리노스(기원전, 2494~2472년)의 피라미드는 쿠프와 케프렌의 피라미드에 비하여 10분의 1 규모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작다. 바닥 면적은 105×105미터, 높이는 65.5미터이며이다.
6)기타의 피라미드
피라미드 건설은 13왕조까지 지속되긴 하였지만, 대형 피라미드들은 사실상 제4, 5왕조(기원전, 2475~2323년)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제4, 5왕조는 이집트 고왕국의 정치적 경제적 절정기로서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했고 중앙 집권 체제하에 사회는 안정되어 있었다.
제4, 5왕조를 포함하여 피라미드를 건설한 황금 시대가 500년쯤 계속되다가 파라오의 절대 권력이 땅에 떨어지고 실질적인 지배자로 지방 제후들이 등장한다.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지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피라미드가 조직적으로 약탈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대에 들어서 도굴은 더욱 심해졌고 심지어는 자신이 건설하는 피라미드의 부장품을 확보하기 위하여 파라오가 직접 선대의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폐단을 잘 알고 있는 후대의 파라오들은 그 이후 쿠프의 대피라미드처럼 웅장하게 축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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