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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라미드를 만드는 사람들 3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3. 09:51

피라미드를 만드는 사람들 3

 피라미드, 축복의 땅위에 서다.

 앞선 글에서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주로 평민이었으며, 나일강의 서쪽 강변에서만 조성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노동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단적으로 말하면 60m~140m 에 이르는 초 대형 피라미드 군을 만들기에는, 기원전 2500년 대 이집트는 충분한 노예를 확보하지도 못하였다.
 
 또 모든 피라미드들은 파라오의 영원 불멸과 천상으로의 승천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건설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가 지는 나일강변 서쪽 연안에 위치해야만 하였으며, 나일강의 범람이 고려되어 언덕지형에 건설되어야만 하였다. 여기에 수십만톤에 이르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튼튼한 지반이 선정되어야 하였고, 그러면서도 배를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강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대 피라미드 군이 밀집해 있는 기자지구이다.




그러나 피라미드를 바라봄에 있어서, 저렇게 엄청나고 거대한 구조물을 어떻게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 만들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축조 방법 자체야 돌을 한층 한층 쌓아가는 단순한 방법이지만, 수레는 물론 말과 소같은 가축노동도 이용할 줄 몰랐던 시대에 100m가 넘는 구조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사면체  형태로 만들었게느냐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네 모서리는 정확하게 동서 남북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별의 움직임이나 태양의 그림자등을 관측하여  4개의 모서리가 정확하게 동서남북으로 향하도록 기초를 설계하였다.


 

 우선 피라미드는 그냥 땅위에 서 있는 것 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모든 대형 건물이 그렇듯  터파기 공사부터 시작된다. 지하의 깊이는 정확하지 않지만 피라미드 높이를 기준으로 20% 정도에 해당한다. 가령 쿠푸왕의 피라미드 경우 150m에 육박하므로 지하의 깊이는 30m나 된다.

 터파기 공사가 끝나면, 물의 수평 원리를 이용하여 수평을 잡아가면서 돌을 쌓아올렸다. 이렇게 전문적인 측량이나 수평잡기를 마치고 나면 나머지 공사는 지극히 힘들면서도 단순한 반복 작업의 연속이다.

수평잡기나 동서남북의 방향잡기는 신관계층이 담당하였으므로, 일반인들은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 그 돌을 단지 밧줄과 지렛대 그리고 굴림판 정도만을 이용하여 쌓는 일만을 하면 된다. 돌을 한층 한층 쌓는 것도 매우 간단하였다. 일단 비스듬한 경사로를 만들어 한 계단을 쌓고, 또 한 계단이 올라갈 때 마다 경사로는 점점 높아지며, 경사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 길이는 길어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돌을 정확한 크기로 자르는 일은  숙련된 석공들의 몫이며 이들 중에는 기자 인근 지역에서 상주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다듬은 돌을 인부들이 채석장에서 나일강 동안의 선착장으로 운반하고 다시 선착장에서 배나 혹은 뗏목으로 나일강 서안으로 운반하였다. 운반의 방법은 통나무를 석재 아래에 굴림대로 대고 앞에서 밧줄로 끌고 뒤에서 지렛대로 밀어서 운반하였을 것이다. 아직 수레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직접 일한 노동자들은 약 6000명 내외로 추측되고 있다. 물론 이 단순 노역자 외에 현장 감독관, 서기, 외에 담당의사나 가사일을 담당할 여성 근로자까지 합친하면 총인원은 2~3배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노동자와 지원 · 관리 인력을 모두 포함해서 대략 20,000명 정도가 대피라미드 건설에 직 · 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포함한 100m 이상급의 초대형 피라미드에 해당하는 경우이고, 작은 피라미드의 경우는 500여명 정도로도 축조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것은 피라미드가 위에서 아래로 완성되었다고 저술한 헤로도토스의 기술이다. 그런데 어떤 건축물이던 위부터 완성하여 아래로 내려갈 수 없고, 또 여러가지 고증을 통해 보아도 피라미드는 아래서 부터 한층씩 쌓아 올라갔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그런데 피라미드는 쌓은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 쌓아진 다음에는 채석장으로부터 옮겨진 대리석들을 하나씩 다듬으면서, 또 엄청난 무게의 대리석을 옮기기 위해 쌓아놓은 비탈길을 치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마무리 공사는 위에서 아래로 향할 수 밖에 없으며, 헤로도토스의 표현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다.


 20,000명 정도면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는 적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제4왕조 시대(B.C.2613~2498)의 이집트 전체 인구가 100~150만명으로 추정되고, 당시에는 대부분 대가족이어서 , 전국에 20만 정도의 가구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열가구당 장정 1명꼴로 피라미드 건설에 지원하거나 종사하였던 것으로 예측 할 수 있다. 이에 걸맞게 피라미드 공사가 일단 시작되면 공사 현장에는 신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나일강을 타고 전국에서 수많은 인력과 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또 이러한 나일강의 천연 수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건기보다 범람하는 시기가 적당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워진 피라미드 중 최대의 피라미드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경우, 그가 죽은 서거한 기원전 2566년부터 에펠탑이 세워진 서기 1889년까지, 무려 4455년 동안이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로 등록되었다

 또 30,000명 정도면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는 적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제4왕조 시대(B.C.2613~2498)의 이집트 전체 인구가 100~150만명으로 추정되고, 당시에는 대부분 대가족이어서 1가구가 10명 내외였기 때문에, 전국에 10~15만 가구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3~5가구당 장정 1명꼴로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피라미드 중 최대 최고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경우, 위의 계산법으로 하면 23년 동안, 매년 평균 108일, 1일 평균 10시간의 노동을 통해 건설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추측에 의한 것이며, 피라미드 연구가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다. 평균적으로 볼 때 높이 100m 이상의 피라미드 경우 매년 평균 100일 정도 공사에 동원되었다는 가정을 하면, 10년에서 15년 정도를 보기도 하지만 극단적인 견해에 따르면 5~6년이면 만들어 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현대인의 추측이나 가설에 불과하다.
왜?
 이집트는 그들의 모든 역사와 기록을 남겼지만, 이상하리 만치 피라미드 축조에 관련된 기록은 단 한줄의 역사나 그림도 남기질 않았다. 따라서 언제나 추측과 상상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당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의 건축술이 신관에 의해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순노동에만 동원되었을 지언정, 그 구조물을 바라보는 이집트인들은 대단한 자긍심과 강렬한 신앙적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왕조 시기 이집트를 운영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출처 : 내 인생의 벗은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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