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은혜와 소망의 설교집

[스크랩] 새롭게 변화를 받으라.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2. 5. 20:00

서로 받으라

 

설교: 에베소서 4:1-7절  
    

정 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글입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았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세상의 이기적인 만남들을 시인의 눈으로 보고 지적하는 글입니다. 신앙이 깊어져 간다는 것은 우리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는 말은 결국 능력이나 성과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하나의 각기 다른 만남들로 이루어진 교회라는 만남의 공동체는 무엇을 목적을 해야 하는가? 새해 첫날 우리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세우고 점검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교회입니다.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자연,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의 통일이란 곧 하나님과의 화목이며,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통일이라는 말의 뜻은 “감시하는 것, 지켜 보호하는 것”입니다. 곧 3절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면 성령과 하나가 된 상태를 지키는 것입니다. 성령과 하나된 상태를 교란하거나 혼돈시키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 후반부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표준 새 번역이 이렇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교회다운 교회는 우선적으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만남의 공동체입니다.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가 되려 하니까 자꾸 다툼과 분란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기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가 된 것을 지켜가는 훈련장입니다. 이 훈련에 필요한 과목들이 바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납, 그리고 평강입니다. 하나되는 근거가 영적이고 내적이고 성품적이지 외형적이고 능력적이 아니라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가 됩시다 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싸움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 이상하게 보이는 것, 도저히 같이 있기 힘든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됩시다를 주장하면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모든 면에서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이상하면 입을 삐쭉 거리고 싸움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하나가 되기를 힘쓰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죄 때문에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기를 힘쓰는 것이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얼마나 겸손한가, 내 주장이 하나님의 뜻을 앞서지 않은가? 온유함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진 일들이 있습니다. 그 직분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하는 봉사의 일들이 어떠한 성과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 된 됨됨이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직분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가 일이 되면 능력이나 기술이 평가의 기준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봉사가 기준은 바로 여러분들의 성품과 신앙인격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짓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닮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가기 위하여 불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려고 봉사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봉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훈련이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독일이나 미국사람들보다 잠도 덜자고 더 많이 일을 하는 부지런한 민족이라는 평가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일에도 매우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종교생활에 비하여 봉사활동에는 매우 소극적이라고 그 조사는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있는데 너를 품는 우리가 없는 것입니다.
봉사는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봉사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아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봉사를 하면 여러분 자신이 아플 것입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이 요구되고 있습니까? 2절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인간성이 먼저 요구되고 있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새사람의 인간성을 훈련해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42절 이후에 보면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무상통! 서로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쓰고 늘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공동체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 공동체가 인간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선 곳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누가 유능하고 똑똑한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단 한가지 인간의 본질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 한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서로 받으라로 선포합니다. 서로 용납하라는 말이지 서로 치고 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한 글에서 찾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
"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 볼래 "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
그렇지 않아도 주눅든 아이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주었다.
"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줄께. "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아저씨는 조금 전 자기가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주인의 자리가 익숙합니다. 나와 다르고 차이가 나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익숙합니다. 이 이야기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로마서15장5-8절 말씀입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이 아이가 자신의 것을 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사랑의 마음이지 그 아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근거는 여러분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마음을 갖고 있는 여러분이 교회의 근거입니다. 일사분란하고 능력과 효과적인 모습은 교회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느려터지고 불합리한 것 같고, 늘 손해 보는 것 같은 것이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서로 받으며 같이 가려면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손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같이 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18:19절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도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도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맨다는 말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푼다는 말은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받지 못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말씀을 바꾸시고 약속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하여 모인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열심과 의로 나와 똑 같은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려 하니까 분란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통일적인 공동체이지 획일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통일이란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화로움입니다. 곧 통일이란 다양하지만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서로서로 힘과 노력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의 각 지체들은 서로 다르지만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통일이 깨어지는 상태는 병이 들 때입니다. 각 지체를 보십시오. 어느 한 지체도 자기를 위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할 때 밥을 뜨는 것은 손이지만, 입이 먹습니다. 먹는 것은 입이지만 정작 저장하는 것은 위입니다. 저장과 분리를 하는 것은 위지만 영양은 필요한 몸의 각 부분으로 나누어줍니다. 그래서 결국 몸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획일적이 된다는 것은 손이 발을 보고 밥을 뜨라는 것과 같습니다. 입이 귀를 보고 너는 왜 먹지고 못하느냐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통일된 공동체입니다. 곧 성령으로 하나된 것을 지키고 보호하는 공동체이지 똑 같은 존재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는 아닌 것입니다. 끼리끼리에서 우리에게로 변화되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능력과 재능이 발휘되고 인정받는 만남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충성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인 것입니다.

올해가 개의 해입니다. 그래서 한 개의 이야기로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일본의 어느 유명소설작가 있었는데, 그는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한적한 곳에 살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로부터 강아지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제법 귀엽고 똑똑해서 한적한 곳에 살다 보니,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그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 작가는 그 강아지가 제법 훈련을 시켜서 작은 바구니에 고기 값을 넣어서 동네 정육점에 심부름을 가끔 보내곤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그가 살던 곳이 알려지고, 신문기자들이나 사람들이 자꾸 그의 집을 찾아오자 그는 다시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전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한 후 평소대로 강아지랑 놀다가,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져서 아무 생각 없이 그 강아지한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참 뒤 강아지가 돌아오지 않자 그때 그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 살던 곳에서 지금 있는 곳은 상당히 떨어진데다 그 강아지는 근처 정육점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첨에는 조금 있으면 돌아오겠지 했지만, 몇 주일이 지나도 강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소문도 하고 광고도 뛰어 보았죠 하지만 강아지를 끝내 찾지는 못했죠.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3개월 후 한밤중에 개 짖는 소리와 문 긁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어둠 속에 아주 작은 물체 힘겹게 지친 듯 살며시 쓰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첨 보는 볼품없고 지저분한 강아지인 것 같았습니다. 근대 그 강아지는 목에 작은 바구니가 있었어요.
바로 삼 개월전 그가 심부름 시킨 그 강아지였습니다. 그 강아지의 목에 걸려있는 바구니에는 썩은 고기 조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강아지는 그 고기에 한입도 대지 않고 그대로 온 것입니다. 그가 힘겹게 쓰려진 그 강아지에게 애정 어린 손실로 쓰다듬어주자
이젠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행복하게 스르르 눈을 감고 주인의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2010년도 우리 모두가 이런 충성과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용납하는 마음들이 묶여져서 성령으로 하나로 만들어주신 이 만남들을 지켜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수건과 같은 아름다운 만남으로 힘이 들 때는 서로의 땀을 닦아주며 슬프고 어려울 때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하루하루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교회와 여러분이 되기를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