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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2.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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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

 




치유의 말씀(14)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빌1장3-6)

우리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기억입니다. 좋은 기억은 사람에게 놀라운 활력을 제공해 줍니다. 고난의 겨울과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장미꽃을 피게 하는 것이 좋은 기억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풍성해지는지 모릅니다.

잠언 10장 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의인에 대한 기억은 사람을 풍성하게 만들고
악인에 대한 기억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려운 사역 중에서도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고통스런 인생 중에서 빌립보 교인에 대한 기분 좋은 기억은
그의 고통을 아물게 하기에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기억은 그를 따뜻하게 하고,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좋은 기억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모릅니다.

반대로 나쁜 기억은 우리들의 삶에 큰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그 상처가 있기에 조금마한 어려움이 있으면 그 상처가 도집니다.
본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다 잊었다고 하지만
그의 무의식층 깊은 곳에서는 그 상처의 흔적이 남아서
현재의 삶을 좀먹고 고통스럽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스런 기억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기억 치유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상처가 치유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상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흔적 없이 지워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상처가 시간에 따라 아물 수는 있어도
그 상처가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경우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워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내려가 잠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팠던 기억을 치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아팠던 기억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선천적으로 잘 잊어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잘 잊어버리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장치를 만드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절한 경우의 예가 그렇습니다.
치명적인 교통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대개 그 순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의 격렬한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고통스런 사건을 오래 기억하고 있으면 얼마나 삶이 어려워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회로가 과중한 충격을 받을 때
그것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퓨우즈 장치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도록 도와주어야지
아픈 기억을 다시 되살려서 치유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일리가 있는 질문입니다.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무의식층 속으로 들어간 아픈 기억은
그냥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간에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건드리면 터지기 때문입니다.
얼핏보면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이 쌓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의 아픔을 주었던 기억을 되살려 문제점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하는 것이 오히려 쉽게 잊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목사나 정신과 의사들은 정서불안의 증상을 보이는 분들과 상담을 할 때
대개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반복하여 떠오르는 어떤 영상 같은 것이 있습니까?"
"꿈속에 반복하여 나타나는 형상이 있습니까?"
"마음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영상이 강렬하여 생활이 방해받는 것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반복적인 영상은 무의식층에 자리잡은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상처의 원인을 발견하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그 상처를 지져야 그 상처가 곪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베데스다 연못가의 물을 요동하게 하실 때
사람들이 그 물에 먼저 들어가게 되면 치유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신적인 질병을 치유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스러운 기억의 물에 첫 걸음을 내 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더 이상 감춰두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아뢰어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의 상처가 대개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오늘날 가장 흔하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관계는 바로 가족관계입니다. 특히 부부관계로부터 비롯된 마음의 상처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가 매력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감정적인 것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지성적인 결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분명히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결혼합니다.

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서로의 결혼관이 이상적으로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결혼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부부관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적인 부부일지라도 그들은 결혼 초부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는 부부가 마음의 상처의 가장 큰 원인이 될까?"
혹은 "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마음의 상처의 가장 큰 원인이 될까?" 그런 의식을 의문을 가지시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너무 고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마음의 상처에는
그 중심부에 배신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배신한 그 사람이 나에게 있어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일수록 그로부터 받는 배신감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이 지내고 가장 의미 있는 대상인
나의 아내나 나의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당할 확률이 큽니다.
이 사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시고 부부간에
혹은 다른 가족관계에서 받는 상처로 인해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관계란 한 몸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상대방도 틀림없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먼저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지나온 나날들을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아팠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기억들을 무의식층에 숨겨두어서
계속 적대감을 가지시면서 정상인처럼 생활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그 적대감을 용해시켜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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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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