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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사] 현대 (전쟁과 패전,그리고 부흥)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5. 23. 20:29

현   대  전쟁과 패전,그리고 부흥

 

1.개  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현대로 본다. 1917년 소련 성립 이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은 미군의 지배를 받았으나 7년 후인 1952년에 독립, 이 무렵에 일어난 한국전쟁(6.25전쟁)을 계기로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주요사항
-전쟁과 패전 :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중국 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전쟁이 장기화하자 남쪽으로 침략의 기수를 돌렸다. 중국의 후방지원 차단과 식민지 확대, 전쟁물자의 획득을 노린 것. 1940년 9월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북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 같은 해에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3국 군사동맹을 맺자 대미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1941년 소련과 중립조약을 맺어 후방의 위험을 줄인 일본은 인도차이나 남부까지 침략.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을 내걸고 적극적인 식민지 확대를 계속하였다. 미국과의 교섭에 실패한 일본은 계속해서 대미 전쟁을 준비. 1941년 12월 8일 드디어 하와이의 미군기지였던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 발발. 초기에는 일본이 연전연승하여 반년 만에 동남아 일대를 점령하고 태평양 전역으로 전선을 넓혀갔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일본,독일,이탈리아의 3국동맹과 미국,영국,소련 중심의 연합국이 격돌. 전선은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대패함에 따라 전세는 역전. 유럽에서는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했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연합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이곳의 전세 또한 결정적. 1945년 5월 독일은 무조건 항복하였다.
 1945년 7월에는 미,영,중,소 4개국이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요구. 일본은 이를 거부하며 전쟁을 계속했으나 8월6일 히로시마에,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8월15일 무조건 항복하였다.
-원자폭탄 : 1945년 7월 미국의 뉴-멕시코에서 최초로 실험에 성공.  일본의 항복을 빨리 이끌어내고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섭씨 백만도 이상의 불꽃을 내며 강한 열과 폭풍으로 4Km 이내의 인명을 살상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히로시마 지역의 인명피해는 사망 118,661명, 부상 79,130명, 행방불명 3,677명. 당시의 히로시마 인구가 32만여명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실로 엄청난 피해라 할 수 있다. 건물은 55,000채가 전소되고 6,820채가 전파되었으며 3,750채가 반파. 8월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인구 21만명이던 나가사키의 인명피해는 사망 73,884명, 부상 74,909명. 건물은 11,574채가 전소되고 1,326채가 전파되었으며 5,509채가 반파되었다. 두 번의 원자폭탄 투하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일본은 결국 8월15일에 항복.
-부흥 : 패전 후 일본은 혼란과 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미군 점령기에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고 한국전쟁기에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패전후 겨우 반세기가 조금 더 지난 지금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이 되었다.
출처 : 니홍고닷컴
글쓴이 : 양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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