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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사] 근세 (에도시대)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5. 23. 20:28

근   세  에도시대

 

1.개  요
 도쿠가와(德川) 정권의 출발점인 1600년의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서 시작. 도쿠가와 정권이 막을 내린 1867년 까지. 260여년간. 일반적으로 에도(江戶)시대를 가리킨다. 1590년을 근세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전국통일을 거의 완성한 때. 중세에 성립된 봉건사회가 지속되고 쇄국이 유지되었지만, 생산력이 점차 증대되고 서민문화도 발전하였다.
 
2.시  대
1)에도시대
(1)개  요
 도쿠가와 시대라고도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 실권을 장악한 1600년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는 1867년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된 1603년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막번체제를 통해 통치했으며, 밀려오는 서구세력에 쇄국으로 대응.
 
(2)주요사항
-막번체제(幕藩체制) : 에도 막부와 그 지배하의 번(藩)을 통치기관으로 하는 정치체제. 번은 각 지방에 독립된 영지를 부여받은 통치기관으로 수장인 다이묘는 막부가 인정하는 범위내에서 자유롭게 정치를 시행했다. 다이묘는 도쿠가와 씨와의 관계에 따라 격이 구분되었다. 도쿠가와 씨 일족은 '신방(親藩)',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에 신하가 된 다이묘는 '후다이(譜代)'라 하여 요지에 배치하였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신하가 된 다이묘는 '도자마(外樣)'라 하여 원격지에 배치하였다. 다이묘는 영지의 백성들로부터 쌀 중심의 현물연공(現物年貢)을 받아 번을 통치하였으며, 막부 또한 전국의 1/4에 해당하는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쇄국정책 : 에도 막부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쇄국을 선택했다. 1639년부터 1853년 미국의 페리가 와서 개국을 요구할 때까지. 200년이 넘는 기간. 표면적으로는 봉건적 지배윤리와 모순되는 크리스트교 포교를 금지하기 위해서였다. 잇따라 크리스트고 금교령이 내려지고 1616년에는 대외무역이 히라도(平戶)와 나가사키(長崎)의 두곳으로 제한되었다. 이어서 일본인의 해외왕래 금지 등이 선포되고, 1639년 포르투갈 선의 내항이 금지되면서 쇄국정책은 완성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의 대외교류는 네덜란드와 명(明), 조선 등으로 국한되었다.
 쇄국정책의 목적은 크리스트교 금교 뿐만아니라 막부의 무역 독점과 막번체제의 확립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세계사의 발전과정에서 뒤떨어지고 자본주의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무라하치부(村八分) : 에도시대에 이루어졌던 마을 주민들의 자율적 제재활동. 주민들과의 교류에서 단절시키는 절교처분을 의미한다. 중세에 기원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정확하지는 않다. 마을의 자체적인 규정이나 질서를 어겼을 때, 예를 들어 살인이나 방화, 절도, 부녀자 폭행 그리고 마을 공동작업에의 불참이나 태만 등의 경우에 내려진다. 용서를 받으려면 마을 유지의 보증하에 사죄를 하거나 벌금을 내야했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악습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까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출처 : 니홍고닷컴
글쓴이 : 양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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