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청국장

 심한 감기에 걸렸다. 딸아이 감기를 내게 달라고 열이 펄펄 나는 아이 이마에 이마를 대고 비벼댔더니 아이 감기가 내게 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너무 힘들다. 미련한 줄 알지만 엄마 마음 다 그렇듯 딸아이 감기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 대신 내가 앓고 싶은 마음에서.

 

아프면 입맛이 떨어진다는데 나는 감기에 걸리면 배가 더 고파오는 특이체질(?)이다. 아플 때는 누가 해주는 밥 얻어먹는 게 제일인데 싶지만…. 이러고 있다고 누가 떠먹여 주는 것도 아니니 일단 일어나 무엇이라도 먹어보자 거실로 나왔는데 이런 이런.

 

머리가 아파 가만있어도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은데 아이가 어질러 놓은 거실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제일 싫어하는 것이 청소인데 감기로 끙끙 앓으면서 거실 청소를 해댔다. 집안이라도 깔끔해야 머리가 덜 아플 거 아냐, 툴툴거리면서. 아프면 얼른 밥이나 한술 뜨고 가만 누워있으면 되는데 왜 이리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거야, 싶으면서도 설거지통의 그릇들도 용서가 안 되고, 빨래 통의 빨래들도 갑자기 팍팍 삶아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렸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평소하고 달리 왜 이러지?

 

추석 즈음에 끝날 것 같던 아파트 난방 공사가 아직 마무리가 되지 못해  찬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찜통에 물을 데워 머리를 감고 양말을 신고 잠을 잔다. 다행스럽게도 꼭 필요하다면 내 집 앞에 하라는,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해주는 이웃이 있었기에 비록 늦어지기는 했지만 공사는 다시 시작될 수 있었고 손꼽아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자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준 그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문득 청국장이 먹고 싶어졌다. 콜콜한 냄새 때문에 청국장 끓이기가 조심스럽다며, 고약한 냄새가 아파트 복도까지 코를 지르니 안 먹었음 한다던 옆집 아줌마의 굳어진 얼굴을 흉내 내며 서글퍼하던 친구. 한 번 보지도 못한 친구의 옆집 아줌마가 나랑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국장 먹고 싶다던 남편에게 온 집에 냄새를 피우면서 꼭 먹어야 겠냐던 내 얼굴이.

 

모든 일의 중심에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집값보다도 사람이 먼저고, 복도나 집안에 풍기는 고약한 냄새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면.

 

펄펄 끓는 아이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고 감기야 아기에게 있지 말고 내게로 오라고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그 마음의 조금이라도 내 이웃을 향해 열 수 있다면.

 

◇재료=청국장 4큰술, 육수 3컵, 신 김치 100g, 두부 ½모, 대파 1뿌리, 붉은 고추 1개, 풋고추 1개, 고춧가루 1작은술

 

◇만들기=①신 김치는 적당한 크기로 송송 썰고, 고추도 송송,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②두부는 너무 얇지 않게 네모나게 썬다.

③청국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어둔다.

④육수에 김치를 넣어 한소끔 끓인다.

⑤김치가 어느 정도 익으면 준비해둔 대파, 고추, 두부를 넣고 살짝 끓인다.

⑥재료들이 잘 익으면 청국장을 맨 마지막에 넣고 끓인다.

 

              

 

              

 

 

                                                          2004년 11월 2일 매일신문 요리칼럼

출처 : 모성애결핍증환자의 아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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