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1911년에, 이탈리아의 평론가인 ‘리치오도까뉴도라’는 영화를 두고 ‘제7의 예술’이라 하였다. 이는 리듬예술인 시와 음악, 무용, 조형예술인 건축, 회화, 조각을 이어 영화를 하나의 예술매체로 인정한다는 뜻과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로 인정하는 획기적인 단어였다. 영화는 앞에 나열된 여섯 분야의 예술을 모두 담고 있었으며, 몽타주기법을 이용해 인간의 의식조차 시각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놀라운 매체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영화와 다른 예술은 관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모방하는 대상과 모방되어지는 대상으로서 말이다. 첫 번째 시를 우선 살펴보자면 '시라는 원초적인 스토리는 기사도 문학을 거쳐 소설로 완성 되었다. 또한, 그러한 소설은 시나리오로 각색되었으며 그 각색된 시나리오를 영화라는 시각적도구로 표현한다. 결국, 시에서 파생되어진 문학을 영화에까지 도달시키는 것이다. 또한, 음악 역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음악인 자체를 이야기는 하는 영화작품도 있다. 무용은 뮤지컬 장르로, 건축은 미장센으로, 회화나 조각은 영화를 활동사진으로 불릴 만큼의 미적 존재로 부활되어있다. 다시 말해, 앞에 언급한 대로 영화는 모든 예술을 담고 있는 새로운 물결의 예술이며 타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영화’라는 매체를 시나 음악, 무용, 건축, 회화, 조각이 모방 혹은 표현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제외한 타 예술들은 다른 예술을 모방하는 것은 창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며 작가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영화라는 매체는 과감히 연출을 넘어 오마주화시키거나 패러디에 이르른다. 그래서 원작이나 모티브가 존재했던 것을 영화화 한 작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장미의 이름’역시 그런 예로,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물론 900페이지가 넘는 대작 소설을 두 시간이란 분량에 각색하였기 때문에 대단한 완성도는 보이지 못했으나, 난해하고 현학적인 스토리를 생략, 함축의 플롯과 내러티브로 시각화한 동명 영화는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실제 소설인 ‘장미의 이름’역시 배경으로 되는 중세유럽의 묘사나 기호학으로 가득한 텍스트는 탄탄한 기본지식이 있는 독자가 읽어야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영화에서는 기본 지식보다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해 많은 이들에게 중요도만을 알리겠다는 의미에서 오락적 요소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장미의 이름’은 당시 시공간적 묘사를 충분히 해냄과 수도원의 퇴폐를 집약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작품성과 오락성 둘 사이를 문제없이 거쳐간다. 그렇다면 영화 ‘장미의 이름’은 어떠한 방향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냐? 영화 ‘장미의 이름’은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우선은 원작과의 상호관계가 어느 정도있느냐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원작을 저자 ‘움베르토 에코’를 알아야 하며 중세시대의 배경,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기호학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한다. 그래서‘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적 매체는 현실에 어떠한 작용을 하며 과거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알아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영화에 나타난 역사적인 이해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모든 요소와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락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으로 변화시켜져 왔기 때문이다.
2.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위해 각주에 해당되는 내용 전체를 옮겨왔음을 알려드립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볼로냐대학교의 교수이다.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54년 토리노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1956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미학적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현재는 볼로냐대학교에서 건축학·기호학·미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세계 명문대학의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파리 제4대학인 소르본에서의 강의활동과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 폴 드 만(Paul de Mann)과 함께 하는 예일학파로서의 학술활동은 유명하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신성모독적 모티브를 이용해 철학적, 역사적, 추리적으로 빈틈없는 꼼꼼함이 돋보이는 24년이 지나서도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의 음지를 이용하여 살인 사건을 다루었으며 시대상 반영과 동시에 비판의 시각이 독창적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 각광받는 추리소설인 ‘다빈치 코드’와 같은 현실과 픽션을 오고 가는 추리물의 첫발을 띄었다는 평을 받는다. 14세기의 철학, 풍습, 문화, 건축 등을 온전히 꿰뚫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움베르토 에코’가 아니었으면 이러한 서적이 나오지 아니했을 만큼 그의 노고가 대단한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은 그의 첫 번째 소설이지만 믿기지 못할 정도의 정교한 내러티브와 플롯이 주를 이루며 완벽한 완성도를 이룬 작품이다. ‘움베르트 에코 평전’에 따르면 ‘움베르트 에코’가 어떤 수도사의 일지를 모티브로 삼아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배경과 스토리를 따라가보았을 때 설득력 있는 부분이 이 일지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본문만큼이나 많은 주석을 달고 있을 만큼의 헤아릴 수 없는 지식의 방대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시대 배경이 압권이다. 약 7세기 전쯤의 암울한 과거 재조명뿐만 아니라 종교적 탄압과 그 당시 성행한 마녀사냥에 관한 지식,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의 한 단면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적 지식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현학적인 면모 역시 이 책을 난해하게 만든다. 기호학이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 등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그 뿐만 아니라 독특한 문제나 긴 문장은 다량의 지식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중세수도원의 살인 사건’이라는 음밀한 부분과 미스터리, 수도사의 저항 등 마치 금기시 하던 요소를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도 대중들이 이 ‘장미의 이름’을 두고 놀라운 서적임에 방점을 찍는 다는 것이다. 아마 이전에도 앞으로도 다시 없을 ‘방대하다’는 서술어가 자연히 붙는 서적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
4. ‘장미의 이름’에 해당하는 역사적 배경
1) 중세유럽의 크리스트교
‘장미의 이름’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때는 14세기 중세유럽이며 종교 이외의 학문이 거의 금기시 되어 학문적 사회적 발전이 없어 암흑기라 불리웠다. 당시 사회는 크리스트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위나 과학과 관련된 학문, 성적자유는 금서로 폐쇄시켰다. 그래서 금서의 양보다 금서 목록을 적은 종이의 양이 더 많을 정도의 종교의 독선이 심하였다. 이런 사회적 경향은 11세기때부터 교황과 황제의 투쟁서부터 시작되는데, 1077년 그레고리 7세가 교황권과 교회의 세속화를 막기 위해 주교서임권을 놓고 황제와 투쟁을 벌였으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파문을 당하는 ‘카노사의 굴욕’이 발생되었다. 이는 교황권이 황제권보다 우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적인 사건이며 이 이후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면서부터 교황권은 절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1세기 말부터 13세기 까지 8차례 이상 걸쳐서 계속되는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자 이노 센트 3세에 의해 전성기를 이루던 교황권은 곧 약화가 되었고 이에 따라 봉건제 역시 붕괴가 되었다. 봉건제의 붕괴로 크리스트교에 대항하는 이단학파가 형성되었으며 약해진 교황 보나파키우스 8세는 필립 4세와의 대립에서 결국 패하였다. 이 사건을 ‘아비뇽 유수’라고 하며 이후 교황청에 대한 여러 나라의 자세가 크게 바뀌었으며 민중의 의식과 함께 일어난 민족주의 사상으로 인해 교황권은 적대시 되었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교황권이라는 권력자인 세력이 반대층에 의해 흔들리는 사건을 다루고있다. 그래서 영화 속 크리스트교에 반(反)하는 물건인 과학적 도구는 숨겨지는 행위가 계속되고 종교적 위치를 타락시키지 않기위해 ‘웃음’을 참아야 하는 등의 금서가 등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크리스트교의 권위에 대항하는 자나 금서에 쓰여진 행동을 하는 자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는 과정을 영화는 그려낸다. 그리하여, 그 당시 종교의 부폐와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시대흐름에 따른 주도권 우위를 살펴보는 것이다.
2) 베네딕트파와 프란체스코파, 사상의 대립
영화 ‘장미의 이름’에는 정형화 있는 원리와 교리를 내세우며 교회적 권위를 옹호하는 베네딕트 파와 교회의 개혁과 신학적 철학적 접근을 하려는 프란체스코파라는 대립적 위치에 있는 두 파를 보여준다. 원래 수도원은 중세교회가 타락하였을 때 정화하는 원동력으로서 존재하는 바나, 중세시대 뿌리와 같은 수도원이 재산의 소유등의 세속화를 하려하자 교회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사회적으로 자선을 베풀고 문화적 학문적 역할을 수행할 수도원이었던 베네딕트파 역시 수도원 재산을 사유화 하고 자신들의 규율을 배반하는 행위가 일어남에 따라 진정한 수도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베니딕트파는 이치나 과학에는 무조건 대항하며 교리만을 찾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학파에 대항하는 자는 무조건 마녀사냥을 하는 등의 이단으로 지적하여 사형을 내렸다. 이러한 수도원의 부패와 타락은 극을 치닫고 그들의 자기 방어를 지적하며 권력을 흔든 세력이 바로 프란체스코파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종교의 부패가 극에 다다른 베네딕트 파와 교회의 청념과 철학적 사유를 논하는 프란체스코파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영화에서 이 두 파를 대립시킨 것은 중세 유럽의 교회가 주장했던 낡은 지식과 시대적 퇴행적 이론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단적으로는 종교와 과학의 마찰을 나타냄과 같다. 이는 두 파가 각 각 내세운 사상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도 상충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베네딕트파가 내세운 교부철학, 즉 플라톤의 이론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종합을 꾀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교회의 존재성과 맞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진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이데아에 존재한다고 하였으므로 민중을 천국이라는 종교적 측면에서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철학은 신앙적 존재의 믿음을 위해서 존재 하는 것이라 일컫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진리를 현실에서 찾았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했던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 텔레스의 사상역시 신학이었으나 그들에게는 더 용이한 플라톤을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베네딕트파와는 달리 철학적 논리를 지상에서 받아들이고 과학적으로 해결한 프란체스코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 속 베네딕트파와는 달리 프란체스코파는 과학적 물건을 이용해서 사건 진술에 앞장을 서는 것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종교개혁 전 교황권이 흔들리는 시점에서도 서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상들의 대립에 의해 교부철학에서 스콜라 철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3) 채식과 탁발 수도회, 마녀사냥
영화 속 베네딕트 파는 ‘채식’이라는 성경 구의 글귀를 그림으로 옮기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는, 당시 교회적 이론을 민중에게 더욱 쉽게 각인 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옮기는 작업이다. 실제로 이런 채식은 현재도 하고있는데 송아지 가죽에 잉크펜과 귀금속 가루를 입혀 성경을 시각적으로 부활시키는 노력으로 행해지고있다. 이는 성경의 말씀을 고귀하게 남기고 신앙적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이라 일컫어진다.
이와달리 프란체스코파는 세속 권력을 휘두르며 스스로 권력화된 교회의 자기모순에서 탈피하고자 청빈운동을 일으키는데, 이를 ‘탁발 수도회’라고 한다. 탁발 수되회는 수도자 개인뿐 아니라 수도원 자체 역시 엄격한 청빈의 의무를 내세웠으며 설교등을 위해 순회를 하는 등의 세속 사유화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교회에 대한 철저한 순명정신만을 위해 투쟁했다.
마녀 사냥은 14세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나 12세기 부터는 실질적 의미보다 종교와 이단의 관계에서 보아야한다. 이는 하나의 신학과 기독교 위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논리와 사상, 이론에 부합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유지부지하여 종교적 목적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즉 마녀사냥에 의해 희생된 자들은 억압된 사상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뜻을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여론편승에 의한 대중심리의 결과인 것이다.
5. 기호학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기호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의사전달의 상징으로서의 기호를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 언어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Morris(1938, 1946)에 의하면, 어떤 것이 기호로서 작용하는 과정을 기호상태(semiosis)라고 부르는데, 이 기호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을 기호학이라고 한다. 기호상태의 성립에는 다음의 세요소가 필요하다. (1) 기호 역할을 담당하는 것 (2) 기호가 가리키는 것 (3) 어떤 것을 기호라고 인정하는 유기체(이를테면 인간), 즉 해석자(interpreter) 그리고 해석자의 기호에 반응하려고 하는 성향을 특히 해석지향 (interpretant) 이라고 한다. 철학자 Charles Peirce, Charles Morris 그리고 Rudolf Carnap 등은 기호전달체, 피표시물, 해석자라고 하는 요소의 조합을 기본으로 하여 기호학을 다음과 같이 세 분야로 나눈다. 첫째는 의미론(Semantics)으로서, 기호전달체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물 즉 내적 피표시물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것은 기호가 내적 피표시물과 그리고 가능하면 외적 피표시물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 분야에서는 순수이론적인 면보다 실제적인 기술면이 먼저 발달하였다. 둘째는 화용론으로서, 여기서는 기호전달체와 그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물이 해석자와 갖는 의존관계를 연구한다.
즉, 기호의 해석자는 생물, 구체적으로 말아면, 인간이므로 화용론에서는 기호상태의 심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인 면이 직접 연구대상이 된다. 셋째는 기호통합론인데, 이것은 기호 상호간의 관계, 즉 형태면을 연구하는 분야로서, 철학적 내지 논리학적으로는 기호논리학, 또는 논리통합론 등의 중심과제가 된다. 그리고 연구대상이 기호 상호간의 관계라는 동질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다른 두 분야보다 비교적 발달한 상태이다. 기호학 입장에서 언어기호를 분류하면 다음 세가지가 있다. (1) 지표기호(indexical sign): 하나의 기호로써 하나의 대상만을 표시하는 경우 (2) 특성기호(characterizing sign): 하나의 기호가 복수 대상을 표시하는 경우로서 이때는 그것의 적용 범위를 한정해 주는 다른 기호와 결합할 수 있다. (3) 보편기호(universal sign): 하나의 기호가 많은 것을 표시하는 경우로서, 그 기호는 어떤 다른 기호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최근의 기호학 연구는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한 의사전달의 양식을 분석하는데 응용되고 있다. 이 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인류학자, 언어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인데, 구두청각적 연구, 시각적 몸짓의 의사전달 연구, 접촉행위에 대한 연구, 맛과 냄새에 대한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기호론은 언어뿐 아니라 음악, 식사, 의복, 무용과 같은 신호체계를 분석사는데 이용되고 있어 '기호체계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기호학은 동물의 의사소통분석에 응용되는데, 이것을 동물기호학이라고 한다.
6. 영화 ‘장미의 이름’
원제 ‘Der Name der Rose’는 움베르트 에코의 원작과 동명작으로 1986년에 장-자끄 아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Cristaldifilm가 제작사로 이십일세기폭스가 배급사로 1989년6월 3일 한국에는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으로 개봉 되었다. 18세 이상 등급으로 런닝 타임은 130분이며 숀 코네리, F. 머레이 에이브라함, 엘리아 바스킨, 페오더 칼리아핀 주니어, 윌리암 힉키, 마셀 론데일, 론 펄먼이 출연하였다. 영화는 루드비히와 프리드리히가 제휴한 후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11월 말경 때를 배경으로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당시 황제와 교황측의 협상자리를 주선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으로 회�을 갖기전 황제와 교황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있는 베니딕트 수도회로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러던 중의 수도원에서 7일간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윌리엄 수도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걍의 요약본이다. 윌리엄 수도사가 머물기 전 채식사 아델모가 타살을 당하게 되고 원장은 이 사건의 해결사로 윌리엄을 택하게 된다. 아델모의 살인의 의문이 채가시지 않기도 전에 그 다음날 그리스 번역가인 베나티오가 죽음을 맞이한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심야 서관에서 잠복근무를 통해 서적과 관련된 자를 찾으려나 실패하고 어느 한 가난한 처녀가 몸을 팔며 식량을 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보조사서 였던 베렝가리오의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지만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때 윌리엄 신부는 아드소에게 이단의 흐름과 보편적인 법칙에 대한 자신의 의혹을 말하게 되고 아드소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 이후 범인을 잡기 위해 몸부림 치다가 전에 만난 그 가난한 처녀를 만나게 되고 둘은 정사를 나누게 된다. 한편 윌리엄은 사서와 보조사서의 암호가 적힌 양피지를 발견하고 죽은 수사들마다의 공통점인 혀와 손가락의 검은 잉크를 알아챈다. 이렇게 진실에 가까워 질쯤 이단심문에서 유죄로 선고된 두 수도승은 앞에 나온 가난한 처녀와 함께 마녀로 묶여 화형을 당할 조짐을 보인다. 윌리엄은 이후 수상한 서책에 관해 듣게 되고 아드소의 힌트를 얻어 비밀서고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과 그 허황된 종교의식에 관련된 진실, 그리고 호르헤의 맞서는 믿음을 말이다. 호르헤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신학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이룩하고 정립시켜진 베네딕트 수도회를 무너뜨리지 않기위해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신학과 광신도의 기로에 있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아드소의 생각처럼 신학과 이성은 결합되지 못한 것은 아닐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장미’라는 이름을 붙여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 뿐..."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를 끝낸다. 이를 두고 일부 문학 평론가들은 소설의 화자인 아드소 수사는 자신의 청년기에 격었던 이 사건을 인생의 종착지에 거의 다 온 노인네로서 회상하면서 지난 시대의 그 거센 풍파를, 그 풍파의 핵심이던 진리들을 '장미'에 비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화자가 해석하고 들어가는 글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라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처럼 자신들이 해석하는 영화적 언어로 남겨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소설을 각색한 부분이 많기에 디테일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원작을 벗어나지는 않았기에 작품성을 인정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7. ‘장미의 이름’에 대한 평
영화 ‘장미의 이름’은 우선 소설이 영화화되었다는 점에서 관객의 상상력을 이미지화한 시각적 매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소설이 주는 무한대로 뻗어나는 기발함을 고정시켜놨다는 데서 여러 독자의 언성을 듣기도하다. 이를테면 ‘움베르트 에코의 세계를 한정시켜 죽여놨다, 중세시대의 암흑기를 눈 앞에 펼친 듯 묘사했다.‘와 같은 두 갈래의 반응들은 소설을 영화화 할 때 주로 발생한다. 하지만 나 역시 영화 ‘장미의 이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서적인 ‘장미의 이름’이 아닌 영화 ‘장미의 이름’은 다국가의 작품이지만 어딘지 모를 헐리우드 냄새가 풍기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 시켜버린다. 내가 여기서 비유한 ‘헐리우드 냄새’라는 것은 장르성의 표현이 제한적이며 기승전결 분명하며 캐릭터 분명하고 내러티브 플롯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영화 ‘장미의 이름’은 원작의 뛰어남을 물려받은 손자 뻘이며 그저 조상덕을 보는 정도 일 뿐이다. 물론 20년 전의 영화를 현대의 내가 평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비겁한 짓일 수는 있으나, 명작은 시대를 거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오고 간다. 카메라 연출실력도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했을 지는 몰라도, 얼굴의 스페터클 함에서 오는 긴장감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굴의 스페터클함이라고 쓴 이유는, 너무나도 비슷비슷한 쇼트로 인해 지루해져버릴 수 있음을 뜻한다. 얼굴의 스페터클은 이를 테면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와 같은 캐릭터와 관객의 동화이다.) 사건과 사건에서 이루어지는 연결고리는 추리와 스릴러를 결합시켜주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히치콕과 같이 보이지않는 것(혹은 범인)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 또한 영화 자체를 역사적 배경으로한 소설로 보지않고 영화 자체의 연출력으로 보는 것에 기초해서이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닌 소설로 남았음이 옳았을 영화가 아닌가 생각든다. 서적 자체도 추리적인 장르를 튀게 표현하기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지식을 단지 영화 속 장르를 이용해 표현한 것은 대단한 일임과 동시에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숀코네리라는 대중적 스타 이미지 때문에 오는 손실일 수도 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는 너무나도 진부함에 그지없기 때문이다. 1980년 이탈리어로 초판이 나온 ‘장미의 이름’은 세계문학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불가사의한 성공을 거두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영화 ‘장미의 이름’은 원작의 힘을 등에 업은 흥미로운 장르영화 일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연출력과 숀코네리의 무난한 연기를 제외한다면 앞에서 언급했든 시 공간 역사적 배경이 뛰어나다는 것도 사실이다. 즉, 영화를 텍스트 안에서 읽는다면 ‘장미의 이름’은 원작을 쫓다 지칠만한 작품이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읽는다면 ‘장미의 이름’은 뛰어난 작품이 될 것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만약 리메이크 작으로 좀더 원작에 집중하여 만든다면 흥미로울 지는 모르겠다.
8. 마치는 말.
마치 반전을 보는 듯, 영화 ‘장미의 이름’을 선택하고 원작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실들을 나열해 놓은 후 영화자체는 비판을 해버렸다. 이는 순전히 내가 헐리우드 영화를 싫어하는 취향에 해당하므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식과 원작은 존중했음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 물론, 장-자크 아노라는 감독이 헐리우드 방식으로 영화 촬영을 즐겨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영화 만큼은 유독 나에게 정형화된 장르성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앞에 언급했다 싶이 오락성을 추구할 때 생기는 기승전결적 구조나 실마리를 풀어버리는 플롯의 위치가 우선 그러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페라인 ‘오페라의 유령’대신 대중문화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영화 ‘오페라의 유령’처럼 소설 ‘장미의 이름’의 오락적 형태라 생각해 본다면 거뜬히 즐길 수는 있다. 물론 역사적 배경을 함께 알아가면서 할 수 있는 세계사 공부에 해당되는 추리물이겠지만. 이는 현재 유행하는 고전스릴러나 고전추리물과 흡사해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 수준의 진심적인 픽션이 현대까지 파생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만일 내일 우주의 파국이 온 세상을파괴하고, 따라서 내일 누구도 오늘 내가 쓰는 것을 읽지 못하게 될지라도 나는 오늘 글을 쓸것인가?’는 자문자답에 ‘첫 순간의 대답은 아니오다. 두번째 순간의 대답은 예다. 왜냐하면 은하들의 파국 속에서도 어떤 별이 살아 남아서 미래에 누군가 나의 기호들을 해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희망을 갖고 있기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시대 최고의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한 작품을 알게 되어 그리고 이러한 레포트가 아니었다면 평생 그에 대한 관심을 저버렸을 이번 기회도 그의 작품만큼이나 고맙고 탁월했다.
(2004)
'세상테크 > 영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싸이코 Psycho, 1960 (0) | 2008.09.04 |
---|---|
[스크랩] 샤이닝 The Shining, 1980 (0) | 2008.09.04 |
[스크랩] 차이나타운 Chinatown, 1974 (0) | 2008.09.04 |
[스크랩]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i suoi frateli, 1960 (0) | 2008.09.04 |
[스크랩] 루드비히 Ludwig, 1972 (0) |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