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테크/영화세상

[스크랩] 샤이닝 The Shining, 1980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1:09

 

 

 

 

 

 

 

‘캐릭터’로 3장 구조 분석

 

 

* 잭 토랜스

 

 그는 인터뷰와 같은 만남에서 전직이 교사였으며 현재는 글을 쓴다 말한다. 또한 ‘고립과 고독’을 이겨낼 수 있다 호언장담하며 글을 쓰는데 더 없이 좋을 꺼라 말한다. 그 뒤 이어지는 질문, 울만이 부인과 아들의 반응을 묻는다. 그는 잠깐 멈칫하다 술술 내뱉는다. 좋아할 것이며, 아내가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로워 할것이라고. 여기서, 그가 가장으로서 무심함이 드러난다. 이 인터뷰 장면과 교차되어 나오는 씬은 ‘대니’와 ‘웬디’의 대화장면인데 관객은 ‘대니’가 친구가 없는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가장인 ‘잭’은 그런 ‘대니’를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호텔의 고립을 좋아할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잭’의 무심한 모습은 다시 등장한다. 두번째, 아들이 차 안에서 배가 고프다는 소리에 ‘아침을 먹었어야지’라고 책임을 가한다. 그에 비해 ‘웬디’는 ‘빨리 가서 먹자’며 아이를 걱정한다. 식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도 ‘TV를 봤다잖아’라며 실실 웃는 그의 모습은 아들에 대한 무심함 혹은 무관심해보이는 태도다. 또한 그가 ‘대니’에게 가한 폭력성은 중요한 ‘대니’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술을 먹은 후 어깨를 탈골시켰다는 부분에서 우리는 쉽게 가정폭력을 떠오르게한다. 이는 ‘잭’의 숨겨진 이면에 ‘폭력성’이 고조해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언제건 ‘술’이라는 매체로 폭발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다시, 호텔에서 술을 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그의 모습은 이를 분명하게 해준다. 술은 그의 사라질듯한 도덕성의 상징이며‘폭력성’에 가하는 불꽃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은 호텔 속 생활에서 주로 등장한다. 화가 난 듯하면서도 웃는 듯한 그의 표정, 아무런 이유 없이 공을 ‘인디언’문양의 벽을 향해 던지는 모습, 무표정하게 타자 치는 모습, 아내에게 고함을 지르는 모습. 흥미로운 것은 이런 행동의 불안 요소는 관객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그가 어떤 이유로 미쳐가는 가. 그것은 보여주기의 스펙터클이 아닌 가려진 미스터리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의 광기가 이 ‘호텔’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다시 말해 꾹꾹 눌러져있던 ‘오이디푸스’컴플랙스인 아들에 대한 시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달후’챕터가 끝난 후 비추어진 거울의 ‘잭’은 ‘오버룩 호텔’이란 공간에서 분열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인터뷰하러 왔을 때부터 호텔에 와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석구석이 친근한 느낌이었으며 이 곳에서 쭉 머무르고 싶다 말한다. 마지막에서야 드러나지만 그는 호텔의 유령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이 대사에서 나타난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다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는 곳,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곳, 좀 더 깊이 말해 ‘백인’의 역사가 파헤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기억할 그의 대사, 골드룸에서 말하길 이 곳은 ‘백인들의 집이야’.
 영화 중반에 237호실에 들어가는 ‘잭’은 처음으로 이성을 탐한다. 이는 자연스런 욕망이 아닌 듯 보이는데 그 이유는 그 여성의 존재가‘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의 애정씬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가 미스터리로 흐르지 않았다면 그는 ‘잭’은 자율신경의 조절중추 문제가 있는 자 처럼 보였을 것이다. 평소 아무 욕망이 없어보이다가 갑작스런 폭력성이 드러나거나 (거실의 타이핑씬과 주방씬) 실체를 모르는 존재를 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욕망과 이어져서 그는 아들의 능력에 대한 공포감도 갖고있다. 그는 ‘그래디’와의 대화에서 아들의 비상한 능력을 듣고 살인을 감행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하는 조바심인 듯하다. 어느 순간 현실적 존재에서 환상의 존재가 되어버린 ‘잭’은 호텔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 ‘웬디’와 ‘대니’는 호텔을 벗어나려는 준비를 한다. 이에, ‘잭’은 자신의 붙잡힌 영혼처럼 그들을 호텔에 가둬두려는 행위인 살인을 하게된다. 비록 영화속 ‘잭’의 육체는 죽었고 ‘웬디’와 ‘대니’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것이 해피엔딩이 아닐꺼라는 느낌은 돌도 도는 ‘잭’의 존재뿐만 아닌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 그 자체에 있다. 무의식의 잠재된 폭력이 얼마나 쉽게 표출될 수 있는가, 그리고 화려한 사치의 공간인 ‘오버룩 호텔’이 결국은 폭력의 역사에 기초해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대니 토랜스

 

 “겨울에 그곳에 있을 건가요? 네, 어차피 여기선 같이 놀 친구도 없어요”라고 묵묵히 말하는 꼬마는 입안에 살고있는 친구인‘토니’가 있다. 즉, 현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만의 상상친구를 만든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니’와 ‘대니’의 역할이 어떻게 나뉘어져있는 가인데, 거울로 ‘토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대니’가 샤이닝을 받은 순간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샤이닝은 대니에게 특별한 능력이지만 괴로움을 주는 존재이기도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말을 안코도 대화를 하거나 미리 생길일을 예상하거나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일이다. 그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그 두려움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또한 그는 샤이닝을 받는 순간 놀라며 급기야 기절하기 이른다. 같은 능력이 있는 ‘딕’은 그에게 현자와 같은 존재이긴하지만 ‘대니’는 여러모로 상처가 깊기에 샤이닝이란 능력까지도 불안의 이유가 된다. 그럴 때 마다 ‘대니’는 ‘토니’를 불러 안정감을 찾곤 한다. 그는 ‘잭’의 폭력에 의해 ‘토니’란 상상친구를 만들어냈다. 이는 어릴적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의 수단이다. 하지만 ‘토니’가 그에게 악영향을 주는 존재는 아닌 듯하다. ‘대니’가 두려움에 떨 때 ‘토니’는 그의 몸을 지배하며 전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주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 후반 ‘대니’가 ‘REDRUM’의 환상에 시달릴 때부터 자신의 존재는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잭’과 설원미로를 추격하던 중반부터 다시 등장한다. 이런 시퀀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 위에 있다믿는 강한 존재, ‘토니’는 방어적 수단이지 최대의 방법론이 아니라는 것을 ‘대니’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대니’의 행동과 대사에서 그는 이중적 성향이 분명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웬디’에게 ‘대니는 없어요, 토랜스부인’이라 말하던 순간 자신을 숨겨버린 ‘대니’는 어린아이의 연약함을 나타내지만 호텔의 비밀을 알면서도 경거망동하지 않는 태도나 설원미로 위에서의 지혜는 침착함과 영리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부분 ‘잭’의 행동을 통해 극으로 치닫지만 ‘대니’만을 본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충분히 이긴 소지가 보이며, 샤이닝에 대해 더 이상은 두려워 하지 않을 듯싶다. 물론, ‘잭’의 죽음 이후로 ‘웬디’와 ‘대니’의 삶이 비춰지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에필로그가 더욱 궁금하다.

 

 

* 웬디 토랜스

 

 아들인 ‘대니’에 대한 관심이 ‘잭’에 대한 관심보다 많아 보이는 ‘웬디’는 ‘잭’에게 오이디푸스컴플렉스를 유발할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영화 초반 쓰러진 ‘대니’와 의사의 대화에서 과보호적인 말을 듣게 되는 반면, 중후반 계단에서 ‘잭’으로부터 아들에 대한 관심만큼 나에게도 관심을 갖긴했냐는 대사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웬디’는 순종적인 여성상으로 주로 그려지고있다. ‘잭’의 욕지거리에도 꿋꿋히 듣는 모습, 그의 말대로 규칙을 행하는 모습에서 ‘웬디’는 주체적인 여성은 되지 못한다. ‘잭’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잭’을 이기려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저 공격을 피하고 벗어나려는 것 뿐이다. ‘잭’을 저장고에 가둬두고 흐느끼는 그녀는 ‘대니’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 가야한다며 떠난다 말하지만 갇힌 ‘잭’보다 더 약해보인다. 다시말해 강한 모성이 발동하여 ‘대니’를 지키려는 예민함이 그녀의 성향이겠지만 남편의 성냄에 있어서는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소극적 여성일 뿐이다.
 ‘웬디’는 영화 속 캐릭터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는 그녀가 환상을 가장 늦게 본다는 것에 의존한 말이다. ‘대니’가 집안의 화장실 거울에서부터 ‘호텔의 환상’을 보았고 호텔에 와서는 환상과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환상의 존재로부터 당하는 입장의 ‘대니’와 달리 ‘잭’은 스스로가 환상을 불러낸다. ‘잭’은 골드룸에서부터 그 환상들과의 조우를 하고 스스로를 환상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쌍방향적인 대화는 물론이고 환상이란 존재 아래 살인을 한다. 이런 ‘대니’와 ‘잭’은 영화의 초중반부터 ‘환상’이라는 존재와 닿아있지만 ‘웬디’는 다르다. ‘웬디’는 거의 마지막 무렵, ‘잭’과 ‘대니’가 설원미로에서의 추격전을 할 때 교차편집으로 보여지는 것과 같이 갑작스러운 체험을 한다. ‘곰인형과 성교하는 남자의 환영’,’피 흘리는 지배인의 환영’,’난잡하게 들리는 환청’,’골드룸에서의 수많은 시체들’과 ‘피가 넘치는 엘리베이터’.이 모든 환상은 ‘딕’의 시체를 본 후부터 일어나게 된다. 유색민족의 피가 그녀에게 까지 환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가장 현실적인 존재였으면서 수동적인 여성인 ‘웬디’는 그 모든 환상과 닿음과 동시에 아들과 함께 그 곳을 탈출한다. 갑작스런 존재들의 등장이 갸우뚱하게 보이긴 하지만 결국 그녀도 ‘피의 무덤’의 목격자가 된 셈이다. 영화는 ‘웬디’를 ‘외부’의 적으로만 몰아놓았기 때문에 더욱 가련해보인다. 사실 그녀가 한 행동은 남편내조와 아들을 지키는 것뿐만을 했지않는가. 어떤 욕망없이 그저 ‘피해자’의 역할만을 한 그녀가 한 없이 작아보이는 것은 이끌려다니는 약자에 놓였기 때문일 것이다.

 

 

1) 설정


전 교사이자 현재 소설가인 ‘잭’, 아들을 과보호하는 듯한 엄마 ‘웬디’, 어딘지 모르게불안해보이는 ‘대니’- ‘토랜스’ 가족은 겨울동안 ‘난방관리’를 해준다는 조건으로 ‘오버룩호텔’에 가게된다. ‘토랜스’ 가족은 ‘오버룩호텔’에 관한 인디언과 백인의 침략에 관한 이야기와 70년도에 있었던 살인사건 이야기를 듣지만 중요치않다 여기는 듯하다. ‘잭’과 ‘웬디’의 아들인 ‘대니’는 과거 ‘잭’이 만취상태에서 어깨탈골을 시킨 후 ‘토니’라는 상상의 친구와 말을 한다. 또한, 호텔에서 만난 ‘딕’에 의해 ‘샤이닝’이란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안다. ‘대니’는 계속되는 호텔의 환상에 시달리며 두려워한다.

 

 

2) 구성점Ⅰ


 ‘한달 후’라는 챕터가 끝나자 마자 ‘웬디’는 식사를 위해 ‘잭’의 침실에 가게된다. 이때 카메라는 ‘잭’을 비추는데 점점 줌 아웃이 되고보니 ‘거울 속의 잭’이다. 이 ‘거울 속의 잭’은 호텔안에서 첫 번째 시발점이 되는데 ‘거울’이 자아분열을 뜻하는 매개체로 나오게 된다. (초반 ‘대니’와 거울도 등장함으로 부자의 연관성이 암시된다.) ‘웬디’와 ‘잭’의 대화속에는 ‘잭’에게 이 호텔이 익숙한 느낌이 든다 말하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장면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3) 대립


 ‘샤이닝’의 전체적인 대립은 ‘외부’와 ‘내부’로 나뉘어져있다. 그 중 ‘외부의 적’은 환상이라는 존재로 주인공들을 두려움을 느끼게 하거나 광기를 일으키게 하는 요소이며 ‘내부의 적’은 서브 플롯으로 깔리게 된다. 폭설이라는 날씨적 측면과 광활해보이는 호텔의 공간 또한 ‘외부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이 가족들이 미쳐가는 요소는 폭설, 호텔,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가정’이라는 설정은 내부의 대립이면서도 외부의 대립으로 존재한다. 안정적인 가족에서 시작되어 영화는 아버지란 존재가 살인마로, 아내와 아들이 쫓기는 자로 치닫는다. 이는 ‘빙의’라는 미스터리한 영역으로서 가능해지는데 그래서인지 영화의 런닝 타임이 흐를수록 비논리성을 많이 띈다. ‘내부의 적’은 그야말로 자아의 충돌이다. 초반 ‘대니’가 보았던 ‘쌍둥이’와 ‘엘리베이터의 피바다’환상은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대니’만 볼 뿐 아무도 보지 못한다. 또한 이 환상이 계속됨과 동시에 환상이 ‘대니’에게 말을 걸기까지 한다. 이 두려움에‘대니’는 자신의 다른 자아인 ‘토니’에 휩싸이게된다. 이렇게 ‘대니’는 자신과 호텔의 마찰을 일으키는 반면 두 캐릭터인‘잭’과 ‘웬디’는 폭설 속의 호텔, 호텔 안에서의 언쟁을 하게된다. ‘잭’은 딱 설명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혀 ‘웬디’에게 폭언을 하게되며 ‘웬디’는 어쩔 줄 몰라하며 순응할 뿐이다.

 

 

4) 중간점


 영화 ‘샤이닝’의 중요공간이자 맥거핀이라 할 수 있는 237호실은 ‘딕’의 시퀀스 이후 비밀이 열린다. ‘딕’이 등장하는 시퀀스는 ‘딕’을 중심으로 180도 선을 과감히 넘는 공간연출을 무의미하게 보여주다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영화상 등장하지 않지만 그는 ‘샤이닝’을 받음이 틀림업다. 그리고 그의 스펙터클한 표정을 보아 ‘강력하고 섬�한’ 샤이닝임을 암시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이 시퀀스가 끝난 후 등장하는 건 ‘잭’이 237호실에 들어가는 시퀀스다. 이 중간점 이후 ‘환상’은 ‘현실’의 벽을 완전히 넘게되고 호텔은‘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5) 구성점Ⅱ


 폭력적 성향이 점점 격해지는 ‘잭’이 화장실에서 ‘그래디’의 환영과 조우한 이후 그는 ‘살인가장’이 되어버린다. 마치 아들의 ‘샤이닝’능력에 분노하는 듯한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가 드러나버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그래디’로부터 마치 살인교사를 받는 것같다. 또한 어찌보면 ‘대니’에게 ‘토니’가 있듯 ‘잭’에게 ‘그래디’란 타 자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흰색과 빨간색뿐인 지옥과 같은 그 곳에서 ‘살인마’적 성향을 띄고 현실로 귀환한다.

 

 

6) 서브플롯


 첫번째. 오이디푸스컴플렉스
영화 초반부터 ‘웬디’는 ‘대니’에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니, 과보호라는 말이 더 가깝겠다. 물론, ‘대니’가 상상속 친구인 ‘토니’를 만든 후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겠지만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중반 계단에서 ‘잭’과 ‘웬디’가 다툼을 할 때 ‘잭’은 ‘아들’에게만 신경쓰는 당신이 나를 걱정해주냐는 식의 발언을 한다. 또한 이 부부는 결함이 없어보임에도 영화속 스킨쉽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의문이다. 차라리 ‘잭’은 ‘웬디’보다 237호의 나체의 여인에게 욕망을 품고 있으니 그는 심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동기 유발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이는 ‘잭’의 입에서 나오듯 자신의 가정이라는 안정적 공간이 관심과 애정의 부족으로 광기를 일으키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가 도끼로 화장실 문을 부시며 판자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여보, 나왔어’를 외치는 장면이나 설원미로 속 아들에게 ‘아빠가 간다’라 말하는 장면을 보면 쉬이 이해 간다. 아들이 엄마를 빼앗아갔다는 불안적 심리가 영화 곳곳에 그의 욕망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림자 원형
심리학자 ‘융’은 의식과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인간의 정신을 나누었다. 의식이란 ‘프로이드’의 견해에 빗대어 말하게 되면 ‘ego’로 일상 생활을 살아 갈 수 있는 자아를 말한다. 계속해서 ‘id’는 개인 무의식으로서 인간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흥분 에너지 또는 긴장을 곧장 외부로 방출하는 쾌락저장고라 한다. 이런 ‘id’를 ‘프로이드’는 개인 무의식에 집중시키는 반면 ‘융’은 개인 무의식 속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 하였다. 이 집단 무의식 속에는 여러 원형이 존재하는데 이를 테면 그림자(the shadow), 아니마/아니머스(anima/animus), 현자(the wise old man), 대모(the Great Mother), 자기 원형(the Self) 등이다. 이를 영화에 결부시키자면‘대니’의 상상 속 친구 ‘토니’는 그림자 원형이다. 이 ‘토니’란 그림자 원형은 ‘대니’로부터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성향을 지니고있다. 그래서 ‘대니’가 환상을 보며 두려움에 떨 때 무의식 속 ‘토니’가 ‘대니’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대니’와 ‘토니’의 관계와 유사한 ‘잭’과 ‘그래디’가있다. 둘의 차이는 ‘그래디’로 인해 ‘잭’이 광기어린 존재로 탈바꿈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빙의 현상에 빗대어 말할 수 있겠지만 ‘거울’이란 매개체로 나뉜 ‘대니’와 ‘토니’처럼 ‘거울’로 인해 분열이 시작된 ‘잭’에게는 환상이자 다른 자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게될 때‘잭’과 ‘그래디’를 그저 유령적 존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 사이에는 광기를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잭’의 그림자 원형이자 어두운 내면인 ‘살인’이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7) 해결


 사실 ‘샤이닝’의 마지막 부분의 모든 시간은 해결이 아닌 클라이막스라 생각된다. 해결되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타임에 근접한 부분일 뿐 거의 대부분에 달하는 내용이 ‘잭’의 공격성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도끼를 든 ‘잭’과 도망다니는 ‘웬디’와 ‘대니’. 그리고 결국 죽게된 ‘딕’ 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맨 마지막 시퀀스는 ‘잭’의 얼어버린 시체 뒤에 나오는데 이는 영화의 ‘도돌이표’와 같은 존재다. 유영하는 카메라가 호텔의 어느 벽을 비출 때 우리는 사진을 보게 되고 그 사진속에는 ‘잭’이 웃고있는 것을 알게된다. 날짜는 1921년 미국독립기념일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그 동안 ‘웬디’와 ‘대니’와 함께 힘겹게 싸운 외부의 적 ‘잭’은 마지막 관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첫번째 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인 ‘호텔’은 모든 것을 다시 흐트러뜨린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말이다. 영화의 미스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간다. 하지만 확실 한 것은 영화의 대부분이 미국의 침략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초반 부분 ‘호텔’을 설명하던 관리자의 잎에서는 끊임없이 ‘인디언’과 ‘백인’의 갈등이 흘러나오고 토랜스가족이 머물던 곳은 인디언들의 무덤이자 피의 땅이었으며 ‘잭’의 광기가 발산된 곳이 호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마지막 ‘딕’의 죽음으로 다시 부활된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인디언’과 같은 유색민족의 피를 다시 보게끔함으로 호텔의 끝나지 않는 저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05)

 

출처 :  
글쓴이 : 유디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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