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온종일, 몰아치기로 한 감독만의 영화를 보라.’
만약 이런 미션이 나에게 떨어진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감독 중 한 명이‘브라이언 드 팔마’이다. 첫 번째 이유는‘드 팔마’의 영화는 메시지가 간결하고 보는 이가 즐길 수 있도록 영화적 유희가 가득하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그의 B급 취향을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저급문화를 고급 테크니션으로 휘황찬란하게 바꾸어 놓는 연출력에 심취해서인지 모르겠다. 혹은 그 둘 모두 해당되는 걸지도. (역시 개인적 애정이 묻어나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필사의 추적(Blow out)’을 최고의 영화라 칭송했다지만 나는 ‘드레스트 투 킬(Dressed to kill)’을 더 흥미롭게 보았다. 제목처럼 잘 차려입은 듯한 연출력, 엘리베이터씬과 샤워씬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론 이러한 호오선별작업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시스터스(Sisters)’- ‘옵세션 (Obsession)’- ‘드레스트 투 킬(Dressed to kill)’ – ‘필사의 추적(Blow out)’ –‘ 침실의 표적 (Body double)’ – ‘스네이크 아이(Snake eyes)’ – ‘팜므파탈(Femme fatale)’로 이어지는 길다란 필모그라피 속 각 영화들이 얼추 비슷한 시스템을 대변하기도 때문이겠다. ‘드 팔마’의 영화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 하나 만으로도 ‘온종일’ 볼 수 있겠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의 행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계기 이자 의미가 될 것이다. 그의 영화로부터 관객의 ‘영화보기’희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도입부, 그것도 숨막힐 듯 전개되는 오프닝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사포처럼 떨어지는 오프닝은 대게 부유하는 스테디캠을 이용해 공간과 인물을 부각시키는데 이용된다. 이러한 연출은 지금부터 일어날 사건들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드 팔마’만의 수법이라면 수법이자 특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오프닝의 시각적 연출이 얼마나 뛰어난지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에서는 메인요리인 본 내용보다 에피타이저인 오프닝만이 기억에 남을 정도다. 이렇게 오프닝에서 감독의 꾀에 넘어간 관객은 점점 캐릭터에 동요하게 되고 결국 수사학을 진행하는 수사요원이 되기도한다. 마치,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또 비교 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 없는 ‘히치콕’과의 대결구도가 양산되는데 나는 그 둘을 같은 위치에 두고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이 말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히치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감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브라이언 드 팔마’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길을 개척해왔고 비록 그것이 ‘히치콕스타일’에서 변형되었다 해도 동 시대 여느 감독들과는 달리 천대받는 (서스펜스든 스플래터든) 공포 영화의 문법에 주력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미국의 기성세대 - 신화를 폭력과 에로티시즘으로 해체하는 작품에‘히치콕’이 선호했던 서스펜스, 서프라이즈 기법과 ‘히치콕’의 대표적인 플롯을 이용하여 ‘히치콕’보다 좀더 선정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드 팔마’의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담론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을 진행하는 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떤 모양새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런 기법적인 면에서 그는 관객을 유동시켰던‘히치콕’의 방식을 모방했고 그 장점을 토대로 자신만의 형식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이를테면 오프닝이 이런 형식 중 발현된 ‘드 팔마’만의 언어이며, 360도를 회전하는 카메라워크라든지 한 화면 내 두 시점을 진행시킨 분할화면이 그러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1981년작‘필사의 추격(Blow out)’은 이러한 ‘드 팔마’특유의 테크니션한 감각이 십분 활용된 영화이다.
텍스트를 진전시킬 수 있는 관객을 위한 수사학
‘필사의 추격(Blow out)’의 강렬한 오프닝은 놀랍게도 히치콕이 아닌 타 영화의 오마주다. 1인칭 시점이라는 독단적 행위, 청각을 적셔오는 거친 숨소리와 심장 박동소리, 빼어드는 칼날에 이어 훔쳐보는 기세가 영락없는 ‘존 카펜더’의 ‘할로윈’이다. 게다가 ‘할로윈’의 오마주 속에는 ‘싸이코’의 샤워신을 넣어 히치콕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드러내기까지 한다. 여자의 어설픈 비명이 들려온 후, 맞대응 하는 쇼트는 연장선에 있어야 할 관객과의 동일 반응이 아닌 영화 속 캐릭터의 조소 띈 웃음이다. 관객은 그제서야 오프닝 자체가 연출된 비디오였음을 인식하고 영화 속 캐릭터와 잠시나마 동일시되었다는 것을 인지못한채 경험한다. 여기서 다시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드 팔마’가 하필이면 오프닝을 ‘할로윈’의 오마주로 진행 시켰냐는 이유다. 영화 속 영화, 다시말해 삼류 영화라는 자체가 호러와 섹슈얼리티의 혼합물이라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타당한 근거는 관객과 동일시 되는 시점으로 수사학을 진행시킬 것이라는 암시로 보인다. 영화의 효과 음악을 담당하는 ‘잭’은 소리채집을 하기 위해 나선 날 저녁, 무언가 석연치 않은 사고를 목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격자라는 의미보다 사건이 일어났을때의 증거인 소리를 갖고있기 때문에 증인에 가까울 지 모른다. ‘잭’역시 언론이 떠들어대는 대로 처음엔 단순 사고로 치부했었으나 사고 당시 녹음된 소리를 반복해서 들어 본 후 ‘타살’임을 확신하여 사실 입증을 하려 온갖 노력을 한다. 영화는 사건 진실의 거리에 대해 ‘잭’과 관객을 같은 위치에 놓고 장애물의 위협과 실마리를 교차시키며 혼란을 준다. 다시 말해 사건의 해명을 원하는 캐릭터는 ‘잭’과 ‘관객’이 되며, 증거들을 통해 ‘잭’이 알아가는 정보만큼만 관객이 얻어가는 셈이기에 둘은 같은 위치에 놓인다. 이와 같은 동일 시 된 위치는 이성적 캐릭터에 의해 미궁의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데, 후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고싶어 하는 관객의 초조함과 호기심을 자극시키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느새 주인공과 동일시 되어 사건을 목격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에 카타르 시스를 느낀다. 한편, 주인공을 격려하는 동반자의 역할이 되기도한다. 이때 관객에게는 캐릭터보다 하나이상의 정보가 더 쥐어지는데 주로 그 정보란 ‘장애물’의 존재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장애물의 등장과 동시에 주인공이 달성 해야할 목표까지의 시간적 딜레이를 간헐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때 관객에게 발생되는 심리는 캐릭터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와 같다. 영화 초반과 달리 캐릭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된 관객은 위험을 미리 인지할 수 있기에 캐릭터의 안부를 걱정하며 사건의 해결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진행 속에서 무언가 일어날 듯한 기대들은 캐릭터와 관객을 함께 놀래키는 ‘서프라이즈’기법이나 조력자적 관객의 위치를 환기시키는 ‘서스펜스’기법으로 다가와 스릴러 문법을 충실하게 해낸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물호스를 뿌리는 남자가 갑자기 등장하여 범인과 ‘샐리’를 깜짝 놀라게 한 지하철 씬이 전자이며 ‘샐리’의 목숨을 두고 범인과 �고 �기는 관계가 이어지는 ‘잭’의 후반부가 후자에 속한다. 이러한 도구들은 ‘히치콕’의 바톤을 잇는 ‘드 팔마’의 보이지 않는 대표적 테크니션이다. 주인공이 행하는 일련의 쇼트 뒤엔 주인공의 시점 쇼트가 반드시 존재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관객의 자연스러운 공모를 유도하여 사건에 동참하도록 만든다. 모든 영화에서 사용되는 시점쇼트는 유동적 종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화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데 쓰이나 ‘필사의 추격(Blow out)’에서는 대부분을 ‘잭’의 시점으로 취함으로서 사건의 몰입을 요구한다. 마치 영화의 본문과는 상관없어 보이던 오프닝의 1인칭 시점처럼 말이다. ‘필사의 추격(Blow out)’에서는 주로 관객이 영화 속 인물이 되어 체험하도록 화면을 천천히 잡으면서 구체적인 단서까지 보여주는 등의 사실적 묘사를 한다. 증거를 만드는 과정과 증거를 놓치는 순간, 증거가 타 용도로 쓰이는 파멸의 순간까지를 보여주어 관객이 겪을 수 있는 낯선 사건의 진실, 개입되어 캐내고싶은 욕망을 채워준다. ‘드 팔마’의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수사학이라는 전제는 관객의 내면에 들어있는 원초적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관객을 수동적 타자가 아닌 텍스트의 진전을 함께 이루어내는 주체로서 존재시킨다. 그리하여 ‘드팔마’는 스크린과 관객의 사이를 좁히고 개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임무를 완성시킨다.
‘드 팔마’의 기교적 혼란에서 유희를 맛보는 관객
기술과 예술의 합작이라는 영화의 탄생에 걸맞게 ‘드 팔마’는 테크니션을 선두로 영화 구성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드 팔마’의 기법은 분할화면과 롱테이크라 할 수 있는데, 타 감독과의 차별화 되는 부분은‘기교적’낌새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분할화면만을 보더라도 한 프레임을 둘로 나누어 완벽한 분할을 하는 경우와 인물과 피사체의 거리를 왜곡시켜 합성된 프레임을 이음새 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음새 없이 두 프레임을 마치 한 프레임인냥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물체의 가장자리가 직각으로 떨어져 스크린의 세로와 평행을 이룰 때 가능하다. 혹은 한 프레임 내에서 직각으로 분할할 피사체를 크게 잡음으로서 분할 화면인냥 보여지는 경우도 있다. 영화 도입부분 ‘잭’이 TV를 보다말고 일어서 음향기기쪽으로 다가가는 장면은 이런 다양한 분할 기법 중 두 가지가 자연스레 연결되어 보여진다. TV 프로그램이 우측에 자리를 잡을 때 좌측에는 ‘잭’이 풀쇼트로 들어가 마치 화면을 분할하듯 보이는데 다음으로 이어지는 직접적 분할 쇼트의 연결기능을 하게된다. 직접적 분할 쇼트는 두 시점으로 진행함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며 우측 영상의 일정한 테이크와 상반되게 좌측 영상은 쪼개진 쇼트들로 구성된다. ‘드 팔마’는 영화의 수사학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관객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정보를 주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시간, 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임에도 불구하고 클로즈업시켜 자세한 내막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분할 쇼트의 콘텐츠 역시, 영화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혼없는 테크니션의 일부가 아니라 마지막 완성된 퍼즐을 위한 조각들인 것이다. ‘드 팔마’의 분할 화면은 좀 더 많은 정보 전달 기능을 기점으로 미학까지 선사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학이란 언급했던 이음새없는 거리의 왜곡으로 가능해진다. 이런 미학이 뛰어나게 보였던 장면중 하나는 범인이 무고한 희생자를 죽이기 위해 미행을 할 때, 좌측과 우측을 리프레이밍하여 얼음속의 송곳을 클로즈업 시킴으로서 희생자의 발생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송곳에서 희생자로 혹은 그 반대로 포커스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에 그쳤겠지만 ‘드 팔마’는 거리상의 왜곡을 이용해 두 피사체의 관계를 좀더 부각시키기 위해 이음새없어보이는 리프레이밍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방법의 리프레이밍은 ‘필사의 추격(Blow out)’곳곳에서 쓰이는데 관객에게 다가오는 정보전달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이를테면 초반 부엉이와 사건현장을 잡던 리프레이밍은 목격자로서의 ‘잭’을 부각시키고 후반 ‘잭’이 ‘샐리’를 찾기위해 범인의 뒤를 밟는 부분에서의 리프레이밍은 지하철의 공간을 보여주어 논리적 사고의 가시화를 통해 흥미를 부가시켜준다. ‘필사의 추격(Blow out)’에서 쓰인 롱테이크 기법 역시 화려한 테크니션 감각을 백분 드러내준다.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는 동선에 맞춰 프레임화 되는 주인공을 포착하는데 관객은 혼란을 느끼면서 한편 몰입되는 기분을 맞볼 수 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360도 회전 롱테이크는 ‘드 팔마’가 선보인 경악과 충격의 미학이라 생각되는데 이러한 기법들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재고할 기회였기도 했다. ‘드 팔마’의 화려한 테크니션은 결국 ‘혼란’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된다. 관객을 어떻게 혼란에 빠뜨릴 것인가, 혼란이란 감각을 어떻게 깨우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영화의 유희를 즐기는 것은 최종적으로 ‘드 팔마’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희열이겠지만 이러한 영화의 ‘혼란’과 현실 속‘안정’의 교차 지점에서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 관객은 큰 의미를 둬야하는 것이다. 마치 ‘드 팔마’의 영화에서 �는 자임과 동시에 �기는 자인 주인공의 이중 모티브처럼 관객 역시 ‘혼란에 빠진자’임과 동시에 ‘혼란을 즐기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남는 것이 밝혀진 진실과‘잭’의 허망한 엔딩이 아닌 현실에서 오는 안도감이란 사실이다. ‘드 팔마’의 영화의 매력 중 명시해야할 부분은 잠시나마 역할에 빠져들었던 관객이 스크린을 뒤로 한 채 현실로 돌아온 후에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즐기기를 맛보게 된다는 아이러니컬 함에 있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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