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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멸 Le Mépris, 1963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1:13

 

 

 

1. 들어가는 말

 

 언뜻 생각하기론, 점프 커트와 트래킹 쇼트 자체에 미학적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소위 최신영화라 불리 우는 작품들엔 점프 커트와 트래킹 쇼트가 매끄러운 전개에 쓰이거나 하나의 스타일적 장치로 쓰일 뿐 미학이라 불리 울 까닭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는 그것들 – 점프 커트와 트래킹 쇼트의 미학적 효과를 물어오셨다. 답이 없을 듯한 이 질문 속엔 ‘고다르의 영화’라는 설정 자체가 답이기도 했다. 일찍이 ‘장콜레’는 고다르 영화는 이미지를 단어로 번역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글자들과 사운드 사이에 있는 것들, 보여지는 것, 쓰여지는 것, 말해지는 것 사이에 있는 것을 탐구하라 덧붙였다. 이는 누벨바그의 작가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영화라는 시각매체는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타 영화들은 ‘어떻게 하면 관객이 영화를 보는 순간 영화임을 잊게 할 수 있을까’에 힘써왔다면 ‘고다르’는 정반대의 노선을 달렸던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는 현실이 아니고 그 반영인 것이며 부르주아 영화인들이 현실의 반영에 역정을 두는 반면 ‘고다르’ 자신은 반영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론적 표현이다. 이는 영화 ‘경멸’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앙드레 바쟁’의 ‘영화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프리츠 랑’을 통해 브레히트 시를 인용하고 ‘폴’의 입을 열어 ‘고다르’자신의 매춘정의를 직접 들려줬으니 말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부터 프레임에 담긴 사운드, 미장센 하나하나가 모두 ‘고다르’의 것들이다. 그러므로 ‘고다르의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의미심장하다. 무엇이든 간에 ‘고다르’영화 프레임 속에 등장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재창조되고 재구성된 ‘고다르’의 언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점프 커트와 트래킹 쇼트는 ‘고다르’의 도식기피에서 발현된 새로운 언어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하느냐’보다 ‘어떻게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지’에 방점을 찍은 ‘경멸’은 창조자적 ‘고다르’의 면모를 절실히 보여준 작품임과 동시에 그의 에세이, 그 자체였던 것이다.

 

 

2. ‘경멸’의 주제와 점프 커트의 미학적 효과의 관계

 

 우선 ‘경멸’의 드러나는 주제는 할리우드 자본에 의해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제작과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 구조다. 그리고 그 갈등 사이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와 이별이 벌어진다. 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가지 주제는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영화 속 현실(삼각관계)과 영화 속 영화(제작자와 감독간의 갈등)로 ‘프리츠 랑’의 입을 빌린 ‘브레히트’ 시의 인용과 ‘폴’의 입을 빌린 ‘고다르’의 언어에 의해 하나로 맞물린다. 영화 ‘경멸’은 상업영화 체계하에서의 감독과 제작자간의 갈등과 연관된 문제에 접근하여 미국에서 망명시기를 보내면서 겪은 참담한 ‘브레히트’의 심정을 표현한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고다르’는 ‘프리츠 랑’을 통해 ‘매일 아침, 나의 빵을 벌기위해 나는 거짓말을 사고파는 시장에 간다. 희망에 들떠, 나는 상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라는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하게 한다. 그리고 또다시 ‘폴’의 입을 벌려 ‘현대 세계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여 강요하는 어떤 방식을 수용하고 따라야만 한다. 왜 돈은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 자신에, 우리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항상 위치하는가?’를 지적한다. ‘고다르’의 에세이가 쓰여진 셈이다. 이렇게 ‘폴’과 ‘프리츠 랑’이 직접 표현한 주제는 제작자와 감독간의 갈등이자, 사회역할에서의 ‘매춘’이다. 이는 ‘프리츠 랑’과 ‘프로코쉬’, ‘프로코쉬’와 ‘폴’, ‘폴’와 ‘까뮈’, ‘프로코쉬’와 ‘프란체스카’로 이어져 개인적 역할의 상황까지 ‘매춘’이라 일컫는다. ‘프리츠 랑’은 감독으로서 ‘프로코쉬’와 ‘오디세이’에 관한 사상자체가 틀리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강제적 제작을 하게 되고 ‘프로코쉬’와 ‘폴’ 역시 시나리오를 파는 입장에서 제작자의 입장을 고수해야한다.‘경멸’에서 모든 이들의 소통자 역할인 ‘프란체스카’는 ‘프로코쉬’의 발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혹은 성적존재가 사라진 통역자일 뿐이며 자신의 몸을 이용해 메모를 하게 하거나 ‘프로코쉬’의 지시대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개인적 매춘을 쉽게 연상 할 수 있다. ‘폴’와 ‘까뮈’는 가장 개인적 역할 상황으로 매춘을 빚댈 수 있다. 이 둘의 암묵적 매춘관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으며 무의미한 대사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좋다’와 ‘싫다’의 구분이 없이 그들은 환경이 지배하는 데로 몸을 끌려 다닐 뿐이다. 마치 그들의 집처럼 정작 있어야 할 ‘문’이 없고 다른 잡품들이 굴러다니는 꼴과 같다. 영화는 자연스레 폴와 까뮈의 갈등에서 파경을 야기 시킨다.
이렇게 ’경멸’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제시한다. 그 세계는 교차하여 나 있는 길들의 세계, 인간 중심의 문명이 종점에 이르는 세계, 불확실하고 어쩌면 야만적일지도 모르는 미래의 세계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매춘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어 점차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 이도된다. 이러한 사상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용어인 ‘현금연관’이 있다. “누구라도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고다르’는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함으로서 돈을 번다고 주장하며 매춘은 고로, 어쩔 수 없이 하는 모든 일을 지시한다라고 말한다. 영화 ‘경멸’에서는 다양한 ‘매춘’이 성립되는 것을 보여준다. ‘폴’과 ‘프리츠 랑’은 자신의 사상과는 정 반대의 노선에서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극작가로서의 재능을 돈과 바꾼다. 그리고 ‘까뮈’는 자신의 남편인 ‘폴’이 ‘프로코쉬’에서 재능을 팜과 동시에 자신의 육체까지 엮어 팔 수 있는 여자로 그려진다. 이 때 ‘까뮈’의 육체가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폴’의 암묵적 매춘행위의 결과였다. 이들과는 약간 변형되어 분리와 고립의 상징이던 ‘프란체스카’는 재능과 육체, 그리고 영혼까지 매춘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캐릭터다. 가장 수동적인 인물이며 ‘매춘’이란 매커니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이용되는 캐릭터다. ’고다르’는 육체의 매춘뿐만이 아닌 마음과 영혼도 매춘의 대상으로 간주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것은 집단적 현상으로 진정 새로운 것은 지금 그것(매춘)이 정상적인 일로 받아 들여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다르’의 세계는 현사회와 현 사회의 법칙들로 이루어져있다. 그 세계는 추상적이고 냉혹한 매커니즘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 매커니즘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매커니즘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매커니즘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것들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 삶을 살 고 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조종되며 소외당하고 속박받으며 때로는 보상받기도 하고(‘폴’과 ‘프리츠 랑’) 때로는 숙청되기도(‘까뮈’와 ‘프란체스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와의 관계를 맺으며 살지만 소외되어있고 수동적이며 억압되어 있다.
이러한 영화의 디제시스적 허구는 현실의 관객과 맞닥뜨려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게 만든다. ‘고다르’는 ‘매춘’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동시에 진행시켜 관객을 영화와 마주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 마주치게 하는 ‘행위’를 영화 연출로 창출했다. 이 때 쓰인 것이 바로 ‘점프 컷’- 소외 효과다. 소외효과란 ‘브레히트’가 마르크스 이론으로부터 고안한 기법으로 친숙한 환경과 대상을 낯설게 보이게끔 하는 일련의 미학전략이다. 소외 효과의 목적은 객관적 세계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영화 – 환영을 깨뜨리고 영화의 존재를 낯선 태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고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쓰인 감정의 이입을 막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여 영화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한다. 영화 ‘경멸’에서는 오로지 ‘까뮈’와 관련하여 점프 컷이 발생한다. 언급했다시피 그녀는 영화에서 가장 개인적인 관계 내의 암묵적 매춘이라는 도덕적 반영과 연관이 되어있다. 영화 내의 점프 컷들은 순수했던 시절 혹은 순수가 벗겨지는 순간을 대과거에서 현실에 이르기까지 시간/공간을 분할하여 나타난다. 크게는 두 가지 점프 컷으로 볼 수 있는 데 초반에 등장하는 점프 컷은 ‘까뮈’가 심적으로 ‘프로코쉬’에게 매춘 당한 장면이다. ‘폴’의 무관심한 태도에서 그녀는 ‘프로코쉬’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다지 즐겁지 않은 시간을 점프 컷으로 보여줌으로써 ‘매춘’의 의미를 부가한다. 나머지 점프 컷의 내용은 ‘폴’과 ‘까뮈’가 말다툼을 하며 파경을 맺기 전에 나타나는데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기록한다. 영화 ‘경멸’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그들의 열정 어린 시간들을 나타냄으로써 이 역시 영화의 주제인 ‘매춘’의 의미를 부가시킨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들을 쪼갬으로써 마치 이후의 시간과는 대조적인 조각들을 언 매치 시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점프 컷이 영화 상 나타났을 때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점프 컷은 분열을 뜻하며 점점 개인적인 관계가 파멸로 치닫을 것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속성의 결여는 모호성의 느낌을 만들어 내고 영화 자체가 관객을 모두 불안정하게 동요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연결성 자체의 파기는 관객의 주의를 한번 더 끌게 함과 해독불가를 나타내기 때문에 행복에서 파멸로 치닫는 영화 ‘경멸’의 내러티브 자체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 이처럼 ‘경멸’은 ‘고다르’의 사상을 담을 수 있는 ‘도구 – 점프 컷’과 ‘에세이 – 매춘’이 일직선을 향한 촉매제로 활용되어 영화 자체가 탈 영화화를 지향한 특수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고다르’ 영화의 매력이자 정점이다.

 

 

 

3. ‘경멸’의 트래킹 쇼트 : 미학적 효과와 목적

 

 ‘고다르’의 수평트래킹 쇼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고전 헐리우드 영화와 누벨바그의 격돌’쯤이 될 듯 싶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지배했던 ‘고전 헐리우드 영화’는 동기가 분명한 기호들로 이루어져 내러티브가 완결되는 결말을 갖는 현재의 주류적 성향을 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전경화 시키고 내러티브 외의 것들이 내는 효과로 리얼리즘 적 스타일을 나타낸다. 그 중 눈여겨 보아야 할 것 중 한 가지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컷들의 매치다. 대부분의 고전 헐리우드 영화는 한 신안에 여러 매치컷을 붙였넣는다. 대표적인 것이 ‘데쿠파주’ 기법인데 이를 테면 마스터 – 미디엄 – 클로즈 업 쇼트를 극적 현실제공을 위해 이음매 없이 분할 구성 시킨다. 만화의 칸들이 쪼개져 그 칸 안의 쇼트를 구성했다면 영화에서도 심리적 유도를 위해 조금 더 가까이 혹은 좀 더 멀리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의 동선을 따라 분할 되었다 모아지는 형세는 충돌하고 있는데도 전혀 충돌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연결’이 ‘데쿠파주’의 기본 문체라면 돋보이는 미장센 연출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공간감’이다. 대표적 딥 포커스 영화인 ‘시민케인’은 2차원적 스크린을 3차원적 전심공간의 배치로 뚜렷이 보여주는 마술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 화면구성은 캐릭터와 대상간의 원근법을 이용한 깊이공간 뿐만 아니라 프레임과의 배치, 카메라의 동선까지도 고려한다.
 위에서 ‘격돌’이라 표현 한 것은 ‘고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데쿠파주의 문법이 ‘장 뤽 고다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누벨바그 감독들의 작품에서 반(反)향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결’은 ‘점프컷’이란 형태로, ‘공간감’은 ‘수평 트래킹’이란 형태로 변환되어 기존의 문체를 과감하게 깨트렸다. 이 중 수평 트래킹 쇼트는 과거 초기 영화의 와이드 스크린 포맷과 롱렌즈로 현저해졌던 평면화된 관점, 펼쳐진 연출도식의 타블로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장 뤽 고다르’는 ‘의도’를 내재한 채 수평 트래킹 쇼트를 탈극화된 내러티브에 도입시켰다. 수평 트래킹 쇼트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바탕으로 ‘고다르’가 창안해낸 영화 기법 가운데 가장 독창 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보통은 길고 느리게 한쪽 측면만을 움직이지만 때로는 중복 진행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경멸’에서 이 부분을 찾자면 전자는 영화 초반, ‘폴’과 ‘프란체스카’가 ‘프로코쉬’와 대화를 하면 한 길로 걸었던 롱테이크 장면이고 후자는 ‘폴’의 집에서 하얀 스탠드를 중간에 두고 ‘폴’과 ‘까미유’가 말다툼을 할 때 반복하여 좌우로 측면을 잡았던 것과 일치한다. 이 촬영 기법은 언급했던 고전 헐리우드 영화의 몽타주와 공간 깊이를 배제한 후 2차원적 회화적 느낌으로 환원시킨 것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보고 있는 화면이 ‘영화임’을 계속적으로 인식시킨다. 보통 고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관객은 ‘공간감’의 깊이에 빠져 체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수평 트래킹 쇼트는 프레임의 깊이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현재 보고있는 영상이 앞에 놓인 스크린과 같이 얄팍한 표피임을 알아채게 하여‘보고 있다’라는 행위 자체를 각성시킨다. ’장 뤽 고다르’는 ‘공간의 깊이감’이 부르주아 세계를 무한히 깊고 복잡하고 모호하게 환상화 시킨 것으로 투사했다. 수평 트래킹 쇼트의 사용 역시 평면화로 반부르주아적 성향 혹은 부르주아의 세계 자체를 탈신비화 시켜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반부르주아적 목적은 영화 ‘경멸’의 주제와도 밀접하게 닿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속 영화의 허망함과 환상들이 헐리우드 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내어 이것들이 얼마만큼 폐쇄적인 가를 반어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고다르’는 ‘경멸’이란 영화 뒤에 숨어있지 않다. 가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창조되어진 영화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알리려고 한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은 영화의 실체를 목격한다. ‘장 뤽 고다르’는 마치 아름답던 드레스를 벗겨 흉골이 드러난 것과 같은 트랙 자체를 무심히 내팽겨 둔 채, 나레이션을 읊는다. 일상적으로 오프닝, 엔딩 크레딧 자막을 보던 관객에게 청각적인 경험은 낯설다. ‘장 뤽 고다르’는 잠시 후면 극적 드라마를 형성할 영화가 현실이 아님을 밝히려는 듯 판타지의 세계를 폭로한다. 게다가 ‘영화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야한다’라는 ‘앙드레바쟁’의 인용문을 넣어 오프닝부터 관객의 위치를 환기시키기까지 한다. 이 인용구는 불친절한 내러티브에 곁들여져 영화 엔딩까지 관객의 낙인처럼 따라 붙는다. 이렇게 ‘고다르’의 ‘경멸’은 영화와 현실을 떨어뜨려 놓지만 끊임 없는 상호간의 반영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현실과 영화를 확연히 구분 시켜 놓은 채 관객이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깨닫기를 원하는 것 처럼. ‘고다르’외의 누벨 바그 감독들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 자발성의 내러티브를 갖게 함도 이와 동일시된 미학이라 생각한다. 언급했듯이 누벨바그 감독들은 반 부르주아적이며 반 전통적인 기법들을 수용함으로 의도적으로 사용하길 원했다. 리얼리즘 적 데쿠파주를 무시한채 수평트래킹쇼트를 포함한 로케이션촬영, 즉흥연출, 점프 컷이라는 파격적 시도로 감독 자신들의 세계관을 담아내였다. 뚜렷하고 닫힌 내러티브가 아닌 주관적이지만 열린 사고를 요구하는, 사회와 개인간의 쌍방향 소통을 원한 것이다.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적 존재이지만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이기에 즐긴다는 감정만으로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앞서 들어가는 말에 서술한 ‘고다르’의 리얼리즘 명제와 일맥상통하다. 그런 까닭에서 ‘경멸’은 의도적으로 매치가 되지 않는, 일종의 튀어버리는 쇼트를 사용한다. 한 신 내에서 필터를 두번이나 갈아끼우는 시도를 하는 등의 파격적 행위다. 영화 초반 침대에서 무의미한 대사를 주고받는 ‘까뮈’와 ‘폴’을 담는 부분이 있다. 이때 전체 색감이 빨간색이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커트가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필터를 이용해 영화 전체의 색감이 바뀐다는 것은 낱장의 셀로판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시퀀스를 두고 마냥 즐거워할 관객은 없다. 과거, 영화의 리얼리즘을 통해 현실과의 경계를 섞어버린 영화와는 달리 누벨바그 영화들은 끊임없이 ‘영화’라는 존재를 세상밖으로 드러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평면적 미장센을 불러 일으키는 필터나 수평트래킹 쇼트와 같은 소격 효과 장치들은 관객에게 눈앞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상 세계가 어디까지나 하나의 인위적인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관객이 영화라는 허구 앞에서 비판적 현실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낯설지만 대담한 그들의 모험은 현재 영화 존재의 가치를 확연히 앞당겨놓은 것이 틀림없다.

 

(2005)

 

 

출처 :  
글쓴이 : 유디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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