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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혈의 누 Blood Rain, 2005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1:30

 

 

 

 

 

영화를 보고 나서 부리나케 하고싶은 말들을 토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혈의누'는 그런 영화다. 엔딩크레딧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내 머리속을 파고드는 수많은 언어들. 생각들. 영화를 보자마자 당장 페이퍼에다가 내 생각들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가 나오기전에, 내 생각은 이렇소. 라고 적어놓은후, 그들의 생각과 비교하는 것이다.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떤 측면에서 보았는가에 궁금증은 더해갔다. 이런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우선 말이 많아지기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가지각색이니 더 흥미롭다. 아래 글는 '혈의 누'를 본 후 느낀 나의 생각들 나열정도되겠다.
 
1. 인간의 도덕적 의식은 뛰어나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아닐 경우, 모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간다. 잘못된 일이 있더라도 그걸 덮을 수 있는 것은 자기 합리화가 양심보다 크기 �문이다. 그런, 인간의 도덕적 의식은 군중에 속할때 극도로 약해진다. 자신이 군중에 속하게 되면, 혼자 일때보다 자기이상의 파워가 생긴다. 그것이 군중 심리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중이나 집단 속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기 이상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억제할 수 없는 집단난동·폭동·파괴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가령, 한사람을 자신이 �리거나 죽인다고 할때, 그 상대방의 피해에 대한 전적 책임은 홀로 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어느 무리속에 속할때, 마치 그 책임도 머리 수 대로 분배된다는 듯한 합리화식 도덕적 의식이 보이며, 도덕적 양심보다는 무리와 함께 하는 쾌락이 더 높아진다는 거다. 

 

이 군중심리를 김대승 감독은 '염치없는 자들'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 군중심리는 '혈의 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 우선 동화도를 살펴보자. 초반 부분을 살펴보면 동화도 주민들은 열심히 공물을 바치고 사는 조선시대 한 마을의 민간인들뿐이라 한다. 그들은 신께 제사도 지내며, 원시신앙 혹은 미신을 믿으며 굿도 하고 제사도 지내며 자신의 일이 평탄키를 바란다. 아주 평범한 주민들과 같다. 그러나 한 살인이 일어나면서 그들또한 흔들린다. 범인을 지목하게 되면 그 사람은 범인이든 범인이 아니든 지탄을 받으며 머리를 숙이며 살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그가 죄를 지었기 �문이며 주민들은 도덕적의식으로 그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살인이 마을전체 주민과 관련이 있은 후부터는 극으로 치닫는다. 마을 사람 누구도 입밖으로 끄내지 못하는 자신들의 죄는 물론, 마지막 혈우가 내리는 그 순간 군중심리 역시 클라이막스를 달린다. 두호를 칼을 이용해 서로 서로 연사하며 찌르는 장면은 인간들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다. 한사람쯤을 다수가 죽이는 일은 별것아니라는 것처럼. 그때 흐르는 혈우는 진실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관점으로 진실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무당이 준 나팔꽃차 (환각성분이 있다고 대사에 나온다.) 가 준 환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인간들의 탐욕을 보면서 강객주가 말한 혈우가 차승원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물론, 혈우의 존재는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고!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한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기때문이다. 너무 over했다는 말도 많지만, 적절했다. 아마, 영화 엔딩이 되었는데 혈우가 안나왔으면 심심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부터 점점 우물에서부터 피비릿내는 시작되었으니까. 그리고 혈우장면과 같은 의도로 인권을 죽인후 원규가 본 제지소에서의 환상또한 그들은 그랬었다. 아주 성실한 주민들이었다. 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그 장면처럼 성실하고 평범한 주민이라고 해도 다시 이럴것이라는 불안감도 있다. 감독의 말로는 원규 자신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영화 자체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착하디 착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착하디 착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것이라 말한다. 아주 염치없는 짐승.


2. 대립구조들의 향연. 그러나, 하나로 수렴되어 주류를 이룬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을 보더라도 알수 있는 것이 대립적인 요소라는 것. 그 당시 서양근대문물이 들어올때 였기 때문에, 천주교박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로 부터 파생되어 '혈의누'는 시작된다. 우선, 원시 무속신앙 (미신)이라는 것과 근대과학의 대립. 그것은 마치,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했다. 직감을 믿는 형사 송강호와 서류는 거짓말을 안한다던 김상경 사이의 팽팽한 대립전선과 마지막 그들의 조우랄까. 이 역시 '혈의누'에서 보인다. 영화 초반부분 갓들어와보이는 망원경으로 섬을 살피는 원규를 보았을때 그는 탄탄한 근대과학적 지식으로 이 모든것을 해결해 나갈것이라는 예감을 들게 한다. 그리고 물론 그랬다. 시체검안을 할때도 그는 똑똑한 지성인의 면모를 잊지않고 무당에게는 미신따위로 민심을 흐트러 트리지말라고 하며 과학적 이유로 대면한다. 그리고 다른 한면인 원시 무속신앙 역시 초반부터 실체가 나타난다. 무당의 입으로 나온 강객주의 말을 시작으로 마을의 물은 피비릿내가 진동을 하며 관객 여러번 놀라게 했던 닭머리를 치는 부분. 부적을 사용해 강객주의 원혼을 물리치려는 주민들. 모두 원시신앙적 요소이다. 이렇게 영화는 초자연적 힘과 합리적인 이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그러나 관객들은 곧 그 둘이 하나였다는 실체를 알게된다. 합리성으로 시체검안을 하는 과학적인 모습 뒤에는 총으로 죽게된 소연이 있고 초와 추를 이용해 불탄 배가 있고 5명의 시체가 있다. 역시, 민심을 수습한다는 미신 뒤에는 민심을 더 흐트러뜨리며 마을을 혼란상태로 몰고간 초자연적 힘이 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척하며 굴러가지만 역시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둘 역시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피지배자와 지배자 역시 대립적인 요소이나, 둘 다 다를 바 진배없다. 영화 초반부터 천천히 다져진 원규의 아버지의 지위는 후반에 뚝 떨어져버린다. 존경받는 인물이던 그 분도 지배자의 얼굴을 하였으며 그 얼굴로 그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원규의 아버지가 냈다던 그 문제의 답. 가뭄이 들면 지주는 밭에서 나는 곡식을 한 섬도 가져서는 안되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 뒤에 한 말이 그의 부류를 나타낸다. "소가 제 할일을 못했어도 여물을 먹이는 법"이라는 그 말 한마디로 그는 평등사상을 나타내는 인간에서 지배자로 탈바꿈을 해버린다. 그가 보았을때 일꾼들은 그저 비지배자층이며 노동력을 가진 "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비를 베푼다고 해도 그들을 인간으로 보이않고 짐승으로 보는 인권의 아버지는 지배자일뿐이다. 그렇게 인권의 아버지의 아이러니적인 모습은 하나가 되어버린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하던 강객주 역시, 그는 됨됨이가 올바른 인간일지는 몰라도 지배자다. 하층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지위였다고 하나, 자신의 딸앞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한 지배자적 모습이 된다. 인간이란 그런거다. 자신이 뱉은 말과 사상이 자신의 혈육으로써 지배자/피지배자로 나뉘게 되는 것. 그러기에 두호는 피지배자에서 원한을 품고 그를 모함한 것이다. 지배자를 죽이는 피지배자들의 모습. 그것이 동화도의 모습이다.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몰아치고 피지배자는 지배자를 죽이고. 돌고도는 모습에서 그 둘은 하나의 주류를 굵게 갖게 되는 것이다.

 

현실과 허상의 문제는 초현실적인 미신과 과학에서도 나타나지만, 앞에서 말했던 '나팔꽃차'로 직접적이게 된다. 혈우가 진실이나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않는 것이다. 진실일수도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두호를 죽이는 주민들의 모습에는 혈우가 확실히 흐른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 본다. 이렇게 모든 게 하나의 질로 수렴하는 '혈의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캐릭터의 성향이다. 특히나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선과 악을 나누어버린다. 선의 승리 혹은 영웅의 승리. 악은 죽음으로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사상이며 합리적인 결과인가보다. 그러나, '혈의누'는 다르다. 동화도의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잡는 인권은 "선"의 캐릭터로 영화를 흘러가게 한다. '범인 = 악'이라는 생각은 관객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인권은 "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추어 지고, 인권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 가는 것이다. 원규가 범인을 잡고 진실을 파헤치고 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주인공 다운 면모였다. 그러나, 그역시 뒤통수를 친다. 마지막 배에서 몰래 손수건을 버리는 그의 모습. 그 역시 동화도 주민과 다를바 없는 이기적인 인간에 속했다는 것. 아버지의 오심을 자신이 벗겨주겠다던 약속은 어디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 역시 아버지의 오심을 덮고 그 위로 자라나겠다는 것 아닌가. 나에게 이 영화의 반전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물어본다면 그것은 "혈의 누"의 캐릭터중에는 선한 캐릭터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라 하겠다. "선"의 모습으로 보였던 자도 "악"이고 그 역시 인간이다 라는 결론을 내주는 이 영화에 깜짝 놀랬다는 것이다. 
  

3.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느낀 바는 완벽성을 추구한 감독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것이다. 전작 '번지점프를 하다'와 비교하여 본다면 아주 비슷한 스토리로 영화는 전개된다. 플래시백을 이용한 과거의 내용과 진실. 그대로 천천히 밟고있다. 전작을 재미있게 보았던 나에겐, 이번 작품역시 대작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정도였을 줄이야. 정말 탄탄한 시나리오.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아주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로, 배우들의 재발견을 찾을 수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차승원의 키는 너무 컸다. 필름 안에서 굽어진 그의 등을 볼때면 마음이 아프기도했다. 또한 박용우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다. 차승원의 빛이 발하지 못했던 아쉬움 점이랄까.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조연들의 존재가 재 조명 되었다는 점에서는 기쁘다고 하겠다. 그리고 조선시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이 장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레 이어주는 장르는 더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아주 스멀스멀 들어온 두 요소의 혼합은 사극장르가 영화에서 유행을 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 희망적 요소만으로도 이 영화가 큰 흐름을 한 것이 아닐까? 또한, 반전강박증을 벗어나게 해준 이 영화. 누가 '범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범인'인가가 중요한 이 영화가. 정말 고맙다. 여름이면 나타나는 '호러'장르에서 반전강박증을 보인 사람들에달린 감독의 선택이었을까. '범인'에게 연민을 느끼게 해주는 마지막 센스까지. 그러나 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시나리오가 너무 치밀했고 꽉찼기 때문에 설명을 못해주는 스토리 연결이다. 시간에 �기는 듯한 빠른 전개가 사전지식이 없던 관객들에게는 불친절했을 수 있다. ch반부터 빠른 전개로 숨멎게 하는 장면장면까지. 심장이 약한 관객에게는 정말 no였을 지도.. 또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권이 가진 '심허로'라는 병에 대한 것이다. 사실, 그 병하나로 그는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거고 스토리진행이 된 것인데. 이 병에 대해서 관객들은 사유를 잘 모르며, 아주 특이한 병이기때문에 쉽사리 동의못한다는 이유다. 일반적인 인간의 탐욕을 그린 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질병으로 그 것들을 파헤쳤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아쉽다.


어찌됐건, 이 영화가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폭력적인 영화를 많이 봐서일까. 솔직히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도 나는 '특수분장의 파워'에 놀랄 뿐이었다. 아, 닭머리를 치는 장면의 연속은 나도 깜짝깜짝놀랬다. 그러나, 나머지 범인이 5명의 발고자를 죽이는 장면들은 연출력에 입이 벌어졌을 뿐이다. 잔인했다고 욕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스플래터 무비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고, 연출력을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전하겠다. 그렇게 연출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영화가 다시 보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박용우와 지성이 낯익은 배우가 아니라 신인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의 연기가 더 빛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성이  두호라는 역할. 너무 애처로왔다. 제대로 대우 받은 장면이 하나도 없다. 때리고 맞고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나도 모르게 극장에서 지성에게 dus민의 말을 붙일 정도였다. 기대만큼 부흥했던 영화, "혈의 누" 강력 추천한다.
   
덧보태는 말.
 
"혈의 누"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를 이끌었던 대사."네같은 의원들이 먹고사는것은 네놈 재주가 잘난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질기기 때문이야"정말 그랬다. 의원의 솜씨가 잘났기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목숨이 너무 질겼다.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유를 말하는 대목에 소름이 돋았다.아, 그리고 "혈의 누"ost는 "올드보이 ost"를 담당했던 조영욱 음악감독이 맡았다고 하는데, wow!! 정말 놀라웠다. 음악의 서정성.. 영화만큼 멋진 ost였다.물론, 미술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완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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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디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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