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마음의 병이 문제야.
지역임상시험 연구센터 관련 구연발표가 있어 서울행을 하게 되었다. 서울역에 내려 목적지를 가기위해 차를 갈아타야 한다. 일행이 4명이고 손에 든 가방과 짐도 많아 택시를 타기로 했다. 예전 서부역 방향으로 나가서 간선 도로에 이르니 일반 택시는 안보이고 모범택시가 턱하니 버티고 있다. 요금이 비싼 걸 알지만 바로 가기위해 모범택시를 올랐다.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가주세요. 암 연구소입니다. 혹시 위치를 아세요?”
운전석에 앉은 기사분의 머리가 백발이다.
“예 서울대 병원 내에 있는 암연구소로 모셔드리지요.”
세월의 퇴적층이 머리에 쌓인 것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운전을 했다고 한다.
뒤에 탄 손님들이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일행인지 금 새 눈치를 챈다. 서울 지역의 의료기관에 대하여 안내방송을 한다. 진료는 S병원이 잘하고 수술은 A병원이 잘한다고 한다. 화상환자는 H병원으로 가야한단다. 병원 특성과 장점 이야기부터 전문가처럼 내뱉는 구변에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우리일행이 한수 배우는 꼴이다.
대학병원에 가면 진료비가 비싼데 그 이유가 바가지 의료 관행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병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다보니 환자는 없고 경영을 위한 최소 비용은 빼야하니 알면서 당하는 게 환자란다. 의사가 많아지는 만큼 환자는 늘지 않는데 비용은 상승하니 비싼 진료비를 물어야한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요즘 병원은 환자를 많이 진료하고 최고 의술을 펼쳐서 돈을 벌게 아니라 새로운 환자 유치 시스템 구축을 통해서 환자를 연결해주는 마케팅을 하는 의사가 최고라는 충고를 곁들인다.
내 뱉는 말이 설사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하더라도 말하던 순간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의 인생 내공이 풍긴다. 운전을 하며 오래 살다 보니 ‘모르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는 것도 없다.’고 한다. 웃으며 들어야 하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들어야 하는지 애매한 상황이 되자 일행 중 한사람은 짐짓 피곤한 듯 눈을 감아버린다.
뒤에 있던 일행 중 또 다른 한 명은 고개를 끄떡이며 응수를 하자 자신의 치료 경험담으로 이어진다.
나이가 칠순은 넘게 보이는데 기골은 청년이다. 목소리도 시원하고 막힘이 없다. 그런데 이 기사 분한테 밤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밤새 자면서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는데 오줌이 나오질 않는 병이 생겼다. 자다 깨면 일어나기도 싫은데 기껏 화장실에 기대어 시원한 오줌줄기 한번 갈겨볼라치면 힘만 들어가고 오줌발이 서질 않는단다. 냅다 힘도 주어보지만 탈이 난 거시기에 제 기능이 될 리 만무하다.
며칠을 견디다 큰 병원이라는 강북에 소재한 S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하였단다.
“진짜 요즘 약 좋더구만요.
마취제를 맞고 수술을 하는데 아픈 걸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마취제 덕분에 편히 수술을 하였으며 의약의 발달이 좋아서 고통 없이 수술하였다고 자랑이다.
“그런데 마취가 깰 때 죽는지 알았지요. 그래도 오줌발이 쌩쌩하게 내려가니 살맛이 납디다.”
약기운이 세서 그런지 수술할 때는 전혀 아프지 않은데, 정작 마취 깨고 나서 저승 가는지 알았단다. 뭐든지 새롭게 고치는 데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법이다.
듣고 있던 일행이 되 물었다.
“수술 후 요즘에도 소변은 잘 보십니까?”
“아 그럼요. 이제 소변은 잘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 고친 병이 있어요. 수술하기 전에 소변이 자주 마렵다 보니 시간만 나면 화장실을 들렸지요.
손님모시고 운전 중에 소변이 마려우면 처리가 곤란해서 질질 흘렸던 기억이 있었지요.”
“그래서 손님 모시고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화장실만 보이면 들어가서 바지 지퍼내리고 한참을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게 습관이 들었는지 지금도 화장실만 보면 자동으로 지퍼를 내립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인다.
“소변보는 육신의 병은 고쳤는데 마음의 병은 아직도 못고쳤지요.”
육신의 병은 나아져 온전한데도 정신이 나약하면 병을 고치고도 병자처럼 사는 세상이다.
“ 세상사도 마음에 병이 문제야”
오랜 인생의 선배인 늙은 기사의 말이 다시 뇌리를 때린다.
2008. 3. 알풍당 최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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