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46. 조선시대 21
18세기 말의 우리 차 중흥의 주역들이 속속 등장하는 시기다. 천주교의 박해운동은 어쩌면 우리 차의 발전에 원인제공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이 유배되어 강진으로 가지 않았다면 찬란했던 19세기 초의 우리 차문화는 양상을 달리했을 수도 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아암혜장을 만나고 그로 인해 초의를 가르치게 되고, 이어서 유산ㆍ추사ㆍ해거도인들과 초의가 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로 본다면 역사의 진전이란 실로 예상키 어려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15세기 말에 그렸던 ‘십노도상계도권’이 이때 단원에 의해 이모본(移模本)으로 남아 있어 고려 말과 조선의 선비차 생활과 다모들의 행다 예법이나 동작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차가 무역의 중요 품목으로 전대(前代) 같은 깊은 정신적 면을 소홀해지는 듯한 감을 준다. 일본도 차가 상품의 의미가 강해져서 행사 위주로 기울어진다.
① 김정희(1786~1856): 시서화의 명인으로 호를 완당, 추사, 노과 등 많이 가졌다. 중국을 다니며 문인들의 다풍을 섭렵했고 초의와 만나면서 우리 차도 즐겼다.
② 초의의순(1786~1866): 대둔사 13대 대종사. 다산을 인연으로 중앙무대와 교류하면서 우리 차를 중흥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다신전> <동다송>을 썼고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③ 이규경(1788~?): 이덕무의 손자로 <도다변증설(도茶辯證說)>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었다.
④ 김명희(1788~?): 추사의 동생으로 서예가다. 차를 즐겼다.
⑤ 1499년 그려진 ‘십노도상첩(十老圖像帖)’을 단원이 이모본(移模本)으로 만든 그림이다. 그 속에 문인들의 차생활과 다모(茶母)가 등장한다.
⑥ 홍원주(1791~?): 호를 유한당이라고 한 여류 차인이다. 어머니 영수합 서씨의 영향으로 일가가 모두 차인이었다.
⑦ 철선혜집(1791~1858): 초의와 같은 시기 스님으로 교와 선에 밝고 문집에 <우증초의화상> 등 다시가 전한다.
⑧ 홍현주(1793~1865): 정조의 사위로 해거도인(海居道人)이라 호를 했다. 초의에게 청해 <동다송>을 짓게 하고 자신도 다시 여러 편을 남겼다.
⑨ 숙선옹주(1793~1836):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해거에게 하가한 차인으로 그때 다모를 데리고 왔다. 다시를 남겼다.
⑩ 조소관은 사신을 맞는 영접도감으로 인삼차를 잘 안마시니 다른 좋은 차를 쓰겠다고 계(啓)를 올렸다.
⑪ 오건(吳騫)이 쓴 책으로 형남차(荊南茶)와 나개차(羅개茶) 등 다사를 기록했다.
⑫ 성승조가 쓴 것으로 더운 남쪽지방 사람들의 차 마시는 일에 관해 썼다.
⑬ 오건의 책으로 화차(花茶)에 관해 기록했다.
⑭ 상전추성(1734~1809): 일본의 국학자이며 문인으로 <청풍쇄언(淸風쇄言)>을 펴내 차를 문인들에게 더 가깝게 했다.
<한국>
1785 천주교 박해
1786 김정희(金正喜) 출생 ①
초의의순(艸衣意恂) 출생 ②
1788 이규경(李圭景) 출생 ③
김명희(金命喜) 출생 ④
1790 십노도상계축 이모본 ⑤
1791 홍원주(洪原周) 출생 ⑥
다시(茶時)
송사행다례(送使行茶禮)
<경도잡지(京都雜誌)>
철선혜집(鐵船惠楫) 출생 ⑦
1793 홍현주 출생 ⑧
숙선옹주(淑善翁主) 출생 ⑨
1799 조소관(趙銷寬)의 계(啓) ⑩
<중국>
1785 ‘중국황후’호가 차 운반(뉴욕)
1787 <도계객어(桃溪客語)> ⑪
1788 <위세식략(衛歲識略)> ⑫
@ <첨양총필(尖陽叢筆)> ⑬
<일본>
@ 상전추성(上田秋成)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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