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자기 지체를 죽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역시 돌아보면 지체를 죽이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죄가 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 가를 자기가 싸운 싸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그 지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모양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를 얻기 위해 탐심을 부리고 있으며 그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오히려 그것을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밤을 새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말 율법으로 말미암는 자기 지체의 정욕과 탐심을 죽이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죽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해야 할 싸움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모양을 내는 것을 죽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복음을 깨달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7:18절을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내가 아노니 말씀 합니다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우리 육신 속 자체가 다 더럽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속 자체가 다 더럽다는 것을 말씀 합니다 복음이 깨달아 지려면 먼저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구나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면 선한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것이 거해야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육신적으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선한 것은 거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결국 악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육신에 속해서 행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겉에서 들어가는 것 보다 속에 있는 것이 더럽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 합니다
주전자에 더러운 물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물이 깨끗한 물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러운 물을 쏟으면 당연히 더러운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이 담겨 있는데 쏟아서 깨끗한 물이 나올까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속에는 그렇게 더러운 것이 담겨 있어서 나오면 더러운 것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 말씀 합니다
율법의 탐심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꾸 죄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탐심만 나타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내 속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원하지만 그렇게 원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지만 그것이 선을 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 가운데 보혜사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선한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은 오직 보혜사 성령입니다 그 성령이 임재 하였기 때문에 선한 것이 들어 와서 선한 것을 낼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은 그 자체로는 선한 것을 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자기 육신으로는 율법의 탐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고 싶지만 그런 자신 역시도 또 보면 역시 율법의 모양을 나타내려고 죄를 짓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복음에 대해서 헌신을 했습니까? 정말 선한 일을 위해서 자기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조차도 율법으로 말미암는 탐심으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지체를 죽이려고 애쓰고 골로새서를 통해서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7: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 하는도다”
율법의 남편에서 예수 남편으로 왔습니다 율법의 남편에게 있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의 남편에게 왔으면 영으로 새로운 것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전 남편 율법의 남편에게 속한 것을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장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적인 남편이 죽어야만 다른 남편에게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다른 남편에게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옛날 남편은 죽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시집가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남편에게 와 있는 사도 바울 자신도 율법의 전 남편을 떨쳐 버리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자기 모습 속에 나타나는 전 남편에 대한 것은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 남편에게 속한 것을 행하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전 남편이 죽어서 새로운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면 그 남편에게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 남편을 그리워하고 그 남편에게서 행하던 일을 계속한다면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왜 악하냐면 새로운 남편에게 와서 전 남편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 남편이 죽어서 새로운 남편에게 시집을 왔는데 전 남편하고 살 때 그 일을 계속한다면 어느 누가 그 여자를 받아 주겠습니까?
새로운 남편은 밥을 좋아하는데 전 남편이 빵을 좋아 했다고 빵을 해서 먹자고 하면 새로운 남편이 그 여자를 좋다고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그렇게 새 남편에게 왔는데도 자기 육신을 보면 전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 얼마나 율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한탄 하듯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그 악을 못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을 하겠습니까?
전 남편에게서 벗어나세요 물론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나를 살펴서 내가 전 남편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 남편께서 질투를 하시고 나를 쫓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남편을 위해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앙테크 > 로마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로마서 강해 91 (0) | 2008.10.07 |
---|---|
[스크랩] 로마서 강해 90 (0) | 2008.10.07 |
[스크랩] 로마서 강해 88 (0) | 2008.10.07 |
[스크랩] 로마서 강해 87 (0) | 2008.10.07 |
[스크랩] 로마서 강해 86 (0) | 2008.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