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은혜와 소망의 설교집

[스크랩] 지혜로운 마음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8. 23:56
 
지혜로운 마음

 


   전도서 7장 4절

  “지혜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 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우리는 가끔 나의 죽음을 생각하여 보는 것이 신앙의 보탬이 됩니다.

언젠가, Sooner or Later, 우리가 한번은 예외 없이 당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당할 것이고, 이 죽음이란 과정을 거친 후에는 어떠한 세계가 펼쳐지는 가도 생각하여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한 번 죽는 것은 이미 정하여진 사실입니다.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언제 사형이 집행이 되는지를 모르고 살뿐입니다.

  동의보감에 천년을 사는 처방이 있는데, 이 천년을 사는 처방을 만든 허준 선생도 100년도 못 살고 죽었습니다. 


  죽음을 크게 둘로 나누면 예수를 믿다가 죽는 사람과 예수를 안 믿다가 죽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A. 불신앙의 입장에서 본 死亡觀

1. 극심한 공포를 느낍니다.

  인간 세계의 공포는 사망이란 것 때문에 공포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아이라 하여도 너 죽인다 하면 무서워합니다. 

강도도 역시 이 원리를 이용하여 돈을 안 내놓으면 죽인다 하여 공포를 주어 피땀 흘려 벌은 돈을 뺏어 갑니다.

기근이나 질병이나 형벌이나 천재지변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내가 죽을까 보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기근이 오면 굶어 죽을까 보아서, 질병이 오면 앓다가 죽을까 보아서, 형벌은 그 형에 처하여 죽을까 보아서. 전쟁은 총알에 맞아 죽을까 보아서, 천재지변은 나도 희생이 될까 보아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덜 두려워한 사람들입니다.

사망 앞에서 담대한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래도 믿지 않은 자들의 사망 뒤에는 지옥 형벌이란 것이 죄 값으로 딸아 오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2. 죽음은 누구나 다 싫어합니다.

  한참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죽음의 이야기를 하면 모두 싫어합니다.

입으로는 무의식적으로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말을 하는 노인들도 역시 실제로 닥친 죽음 앞에서는 죽기를 싫어합니다.


3. 죽음은 슬픔을 가져다가 줍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온 집안의 경사이고 기뻐하지만, 한 생명이 떠나는 것은 슬픔을 당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기쁨이 되고, 죽음은 마귀로 인하여 인류에게 죄 값으로 온 것이니 기쁨이 될 수가 없습니다.


4. 죽음은 마지막 길이니 누구나 막을 수가 없습니다.

  두렵고 싫고 슬픈 일이어서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이 죽음을 누가 막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 벼슬을 살면 농부 될 사람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을 다 고치면 북망산이 왜 생기랴?

의사도 죽음을 막을 수 없고, 부자도 돈으로 막을 수 없고, 성도도 죽음을 기도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역사의 최후의 순간입니다.

불신앙에서 살펴본 사망관은 공포와 슬픔뿐입니다.


B. 신앙적 입장에서 본 사망관

1. 죽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는 것은 영원한 세계로 가는 첫 관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사망의 문을 통과하지 않는 한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원할진대 이 사망을 통하면 영원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서 지금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2. 죽는 것은 안식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괴로운 길이요, 수고로운 길이요, 무거운 짐을 너무 많이 지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육신의 사망은 이러한 모든 고통의 짐을 벗어버리는 날이요, 안식 세계로 들어가는 날 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망을 보고 죽었다고 아니하시고 잔다고 하셨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에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쉬는 것 같이, 우리도 죽어서 쉬는 안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3절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 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우리가 성도의 죽음이 참 안식 세계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고 있을진대,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싫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날을 소망하고 기다리다가 환영하면서 안식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얻어지는 귀한 축복입니다.


3. 인생을 완전히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사망은 인생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내려진 대가로 하나님의 벌입니다.

범죄 함으로 더러워진 정신, 심령, 서품, 육체, 행위, 언어까지도 다 사망으로 죽어 버린 후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새 출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죽음 이후에 다시 사는 일로 변하여 완전히 정결하여지고 성화 되어 새 사람이 됩니다.

  부활하여 깨끗함을 받은 소망이 있는 자만이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요, 슬퍼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지 앓고 오히려 환영하면서 찬미합니다.


  정리 :

인간의 사망은 누구나 다 당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사망을 대하여야 할까요? 

불신앙의 사망관으로,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슬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의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환영하여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내 신자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안식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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