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성경해석학의 어원
성경해석학이라는 학문이 학문으로서 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석이라는 용어는 신구약 성경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파탈’(pathar)은 ‘해석하다’를 의미하며, ‘피트론’(pithron)은 해석을 의미한다. 헬라어에서는 더 다양한 용법으로 나타난다. 성경의 해석 활동은 초대교부시대 이후 계속되었다.
1. 해석학의 어원적 의미
‘해석학’(Hermeneutics)은 ‘해석하다’(to interpret), ‘설명하다’(to explain)의 의미를 지닌 헬라어 ‘헬메뉴오’(έρμηνεύω)에서 기인되었다. 헬메뉴오는 성경에서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첫째, 가장 보편적 의미는 ‘해석하다’(interpret), ‘설명하다'(explain) 혹은 ‘분명하게 말하다’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여기에 ‘선포하다’(proclaim)와 ‘번역하다’(translate)의 의미를 추가하기도 한다(Walter Bauer).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예수께서는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을 자신의 본질과 인격과 사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해석해 주셨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시니라’(διερμηνεύω)는 ‘성경을 풀어 주실 때’(openning the Scriptures, 눅24:32)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둘째, 헬메뉴오의 의미는 언어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상태’(non-linguistic states of affairs)를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5)
여기서는 ‘방언’(speak in tongues)을 해석하여 ‘통역한다’(he interprets)는 의미로서 ‘디엘메뉴오’가 사용되었다. 사도바울은 방언이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며 언어 이전의 상태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방언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통역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고전12:10,30;14:13,26-28),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한다고 하였다.
셋째, 헬메뉴오의 의미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함에 있어서 ‘번역하면’(μετερμηνεύω)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마태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을 깨우치고자 늘 고대하던 메시야의 실체를 밝혀주면서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골고다’는 ‘번역하면’(Golgotha which means) '해골의 곳'(The place of the skull),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 The Messiah (that is, Christ)"(요1:41), 멜기세덱의 이름을 ‘번역한즉' '의의 왕'(his name means King of righteousness)의 예가 있다.
2. 용어의 정의
1)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성경해석학’은 성경의 해석과 적용을 위하여 해석의 원리, 법칙, 방법을 연구하여 확립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경해석학은 일정한 법칙을 체계화 할 수 있으며 법칙 적용의 융통성(融通性)이 있으므로 예술성을 공유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해석의 법칙은 물론 적용법칙을 운용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도 익혀야 한다. ‘석의’(성경 본문의 원어적 의미를 밝히는 것)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경해석학은 성경 본문의 낱말이나 문장을 풀이하는 ‘주석’(exegesis)이 아니다. 주석은 성경해석학의 인도가 없으면 과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석학이 학문과 이론이라면 석의는 기술과 실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과 석의가 바로선 후에야 주석은 가능한 것이다.
2) 석의(exegesis)
‘석의’는 해석학의 인도를 받아 성경 본문의 원어적 의미를 밝히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석의(釋義)는 해석원리를 본문에 적용시키는데 관심을 가지지만 해석학은 원리적인 의미를 찾는 측면에 더 관심을 든다. 석의는 구체적인 문장이나 구절 혹은 문맥의 뜻을 찾아내나 해석학은 이와 같은 구체적인 뜻을 찾아내는데 원리적인 면에서 전망을 제공한다. 따라서 성경해석학과 석의는 한쪽이 다른 쪽을 임의로 규제하거나 관장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3) 주석(exegesis)
‘주석’(exegesis)은 성경 본문의 낱말이나 문장을 연구하여 오늘날의 독자가 알기 쉽도록 풀이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어의 ‘Exegesis’(엑서지시스)는 헬라어 ‘엑세게시스’(έξήγησις)의 영문표기이다. 동사형(ἐξηγέομαι)는 ‘설명하다’, '인도하다', '인도해내다'의 의미로서 ‘자세한 정보를 조직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알리는 것, 충분히 설명하여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주석(註釋)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준다. 곧 주석은 성경 본문을 연구하여 저자가 본래 수신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4) 주해(exegesion)
‘주해’는 주석처럼 성경의 특정 단어나 구절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단 전체의 내용에 대해서 성경기록자가 본래 수신자에게 전달하고 자하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해(註解)는 주석 또는 강해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문단 전체를 설명하는 데 더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주석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해는 내용면에서는 주석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고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강해의 특성을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5) 강해(exposition)
‘강해’(講解)는 성경의 특정 구절이나 문단을 연구하여 성경이 오늘날 성도에게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는지 찾아내어 밝혀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강해는 성경 본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성경 본문의 의미를 현시대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해설교를 ‘해설하여 적용하는 설교’(expository preaching)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엇을 말했는지(said)를 찾는 것이 주석이라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says)를 찾는 것은 강해라고 할 수 있다.
성경해석학과 석의의 관계는 해석자에 의해 연관되므로 해석의 결과는 유동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해석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해석자는 본문에 익숙해야 한다. 성경 본문을 익숙하게 이해하는 단계가 되어야만 능률적인 성경해석을 할 수 있다. 지나친 문자주의나 풍유적(諷諭的) 해석에 치중하는 등 극단적(極端的)인 태도는 금물이다. 지나친 경건주의적 해석이나 자신의 통찰력(通察力)과 직관(直觀) 그리고 공상(空想)에만 의존하는 해석도 유익보다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성경해석 원리는 본문의 의도와 상관없게 되어 곡해(曲解)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성경해석을 위한 바람직한 접근 태도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계시한 미지의 중요의 길을 걷는 것처럼 하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본문(text)에 우월권(優越權)을 부여하면서 본문과 해석자 상호간 교통의 유동성(流動性)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경해석자의 신조나 과거의 경험적 지식이 성경해석에 참조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성경해석을 관장(管掌)하는 전체적 표준이 될 수는 없다. 해석자의 태도는 모든 외적인 제한과 방해로부터 구애받지 아니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내의 고유한 법칙으로부터 자유를 가장한 방종(放縱)과 혼동(混同)이 허용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해석자는 본문을 대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을 성경기록자의 뜻인 양 첨가해서는 안 된다.
또 그 모든 편지에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해석자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에서 이탈하지 않은 한 국소적인 오류 해석으로 인하여 스스로 멸망하거나 저주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말은 성경본문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지 해석자의 태도를 경계(警戒)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성경해석자의 자유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규제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항상 본문에 우월권을 부여해야 한다. 해석의 의미는 해석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본문에 있기 때문이다. 본문이 최종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따르지 아니하면, 학문적 경지에 이른 어떠한 해석자라 하여도 해석자 자신의 자의에 의한 주관적 해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경해석의 법칙은 본문에 경건한 접근 태도와 해석의 유동성과 본문의 우월권을 인정하는 취급 방법과 해석자 인격의 완숙도(完熟度)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 제 2 장 연구과제
1. 해석학의 어원적 의미와 신약 성경에서의 용례를 기술하라.
2. 성경해석학, 석의, 주석, 주해, 강해에 대한 용어의 정의를 기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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