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육신의 일입니다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찬송을 부르는 것, 헌신하는 것, 모두 육신의 일입니다 제가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육신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영의 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이 우리 눈에 보입니까?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것을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보이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 육신을 통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육신을 통해 나타나는 교회 안에서의 일들을 마치 영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쫓는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육신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영의 일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육신의 일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더라도 내가 지금 육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더 많은 일을 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됩니다. 내 육신이 세상에서 교회 안에서 성공하고 칭찬 받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약속의 자녀라고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죽어서 진노를 받기 보다는 지금 내가 육신의 일을 쫓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고 있는가를 깨닫는 성도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자기 몸으로 이루고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럼 약속의 자녀는 누구입니까? 약속의 자녀를 바로 알아야 우리도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17:16절을 보면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 아내 사래를 사래라 하지 말고 이제 부터는 사라라 하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시겠다 말씀 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어떤 약속이냐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육신에 속한 약속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잘해야 아들을 주고 무엇을 못한다고 해서 안 주는 그런 약속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육신에 따라 무엇을 잘 해야 아들을 주고 육신적으로 못했을 때는 아들은 안 준다는 그런 약속이 아닙니다.
창세기17:17-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사라에게 아들을 준다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니까 아브라함이 지금 웃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자기가 백세이고 사라가 구 십 세인데 어찌 생산을 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는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가 구십 세이지만 그녀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는데 아브라함이 웃고 있습니다. 이 아들을 주어야 합니까? 육신의 약속이라면 당연히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만 웃은 것이 아니라 사라도 똑 같이 웃었습니다.
창세기18:12-15절을 보면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만 웃은 것이 아니라 사라도 웃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 하니까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웃던 말든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신 약속대로 사라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바로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차이입니다 육신의 자녀라는 말씀은 육신이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것을 행하고 안 행하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자기가 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육신에 속한 약속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는 육신이 잘하든 못하든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으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는 육신의 자녀가 있고 약속의 자녀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닌 것처럼 육신의 약속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고 은혜의 약속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인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무슨 잘못을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으면 반드시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약속의 자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약속의 자녀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씨라 칭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말씀 합니다
에스라1:1절을 보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약속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림으로 멸망당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갔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 70년 만에 돌아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70년이 이르자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독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잘해서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으로부터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서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셨다고 말씀 하시지 않고 포로로 가기 전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약속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 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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