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테크/파랑새의원( 제주도)과 섬이야기

[스크랩] 제주도에서 수육을 먹는 네가지 방법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7. 23:01

 

 

<카리스마와 흑돼지가 만나는 곳, 천짓골 식당>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중문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 렌트카에 올랐다. 아,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누가 찢어놓고 간 건 아닐 테고 타이어가 오래 된 건가. 이런 저런 짜증이 밀려왔지만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서는 단순한 인간 이여영. 택시를 불러 서귀포로 향했다. 중문에서 서귀포까지는 택시로 요금 1만원. ‘만원이나 들여 찾아갈 만한 곳인가’하는 의심을 가는 내내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입구부터 초라했다. 인터넷을 믿는 게 아닌데. 잡지 기자들이 써 논 데가 다 그렇지 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순간엔 남 탓을 하는 게 아무래도 속이 편하니까.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택시비 만원을 아까워하지 않게 됐다. 뚜벅뚜벅 그러나 예리한 눈빛을 던지며 다가오는 주인 아주머니의 카리스마를 느꼈다. “제주 사람 아니지? 그러면 살붙어있는 걸로 먹어. 입에 안맞어.(물론 제주 사투리로)” 살이 붙어있는 고기는 조금 더 비싸고, 비계와 껍질로 된 고기는 약간 저렴하다. 제주도 선배 말로는, 제주도 사람들은 비계와 껍질 부분을 좋아한다고. 속으로 한 생각 ‘나도 비계 좋아하는데...’

 

 

 

아주머니의 카리스마에 눌려 살 붙어있는 부분으로 주문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밥알이 콕콕 박힌 순대를 도마에 내려놓으며 또 한번 “입에 안 맞을 거야. 이건 우리 동네 사람들 먹는 거거든.” 말은 안했지만, 얼마나 내 입에 맞았는지. 진짜 순대란 이런 것. 당면과 비닐로 맛을 흐리지 않은 진정한 순대가 내 눈 앞에 놓였다.

 

 

 

고기를 덩어리 째 내왔다. 한 조각 잘라 “소금에 찍어.” 그건 권유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명령에 따라 소금에 찍어 입 안으로 가져간다. 아, 이게 돼지고기구나. 부드럽고 달달한 맛. 보쌈과는 차원이 다르다. 감상에 젖으려던 찰나에 떨어진 두 번째 명령 “상추 펼치고 양파 된장에 찍는다. 마늘 얹는다.” 혼날 것 같은 분위기. 재빨리 상추를 펼치는데 아주머니가 고기를 얹어준다.


 

 

세 번째 명령 “양파 된장에 찍어 묵은지로 싼다.” 아주머니의 묵은지 자랑을 한 3분간 들으며 고기를 씹고 또 씹었다. 이틀 지나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입안에 침이 괴는 것은 묵은지의 탓도 크다. 2년 7개월 묵힌다는 천짓골 김치. 비교해 보라며 숙성 개월 수가 다른 김치를 내왔다. 이른바 묵은지 버티컬 테이스팅. 와인뿐 아니라 김치도 빈티지가 이렇게나 중요하다니.  

 

 


네 번째는 멜젓(멸치젓)이 더해졌다. “흰무에 멜 젓 올리고 양파 된장 넣는다. 참, 멜은 아가씨 입에 안맞어.” 아주머니는 단정적으로 얘기했지만 엔초비를 좋아하는 내 입에 멜 젓이 안 맞을 리가 없었다. 짭쪼름 비릿비릿 멸치 살점은 혀를 자극했다. “제주도 돔베고기는 새우젓이랑 안 맞어. 멜이랑 먹어야지.”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확신에 찬 말투로 얘기했다.

 

 


 

고기는 먹을 만치만 썰어주고 다 먹어갈 때쯤 되면 아주머니가 다가와 또 조금 썰어준다. 썰 어놓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식으면 가져다가 데워준다. 이 모든 건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아주머니가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다. 세심한 서비스에서 카리스마는 더 빛난다.

출처 : Lifestyle & Trend Report
글쓴이 : 여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