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오늘

 

[40년 전 오늘]

1. 서울에 가서 단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들 머리를 짧게 빡빡 깎고 교복 차림으로 서울 본점에 출근을 하였습니다. 당시 인사부장의 훈시가 있은 후 직위 [촉탁] 이라는 사령장을 받고 은행원이 되면서 20일간의 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단체로 12개월 할부로 미조사라는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추고, 또 어디서 구두를 맞춰 신고, 와이셔츠도 사고, 넥타이도 사고, 하여 바로 신사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7명의 신입행원들이 단체로 명동 자현여관에 투숙을 하고 아침이면 여관주인 아줌마 앞에 일렬로 서서 넥타이를 메어달라고 하여, 목을 쾍쾍하면서 출근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머리를 짧게 깎은 사람이 멋있어 보이겠지만, 그때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짧게 깎고 단체로 출근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실제로 연수를 마치고 일행이 이 복장으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기차 복도에서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고 민망해 하였습니다. 그때 고교 선생님의 판단 착오는 머리가 다 길 동안까지 초보증명서를 부착한 것처럼 힘들게 하였습니다.

2. 발령받은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고되고 실전인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돈이라곤 용돈 정도 만져본 저는 그날 처음 그때까지 살면서 사용한 돈 보다 더 많은 현금을 바로 헤아려야 했고, 돈에서 나는 냄새와 먼지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그날 알았고, 직장의 상사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출근 첫날부터 어디로 잡혀가 술을 먹어야 했고, 9시 30분에 시작하고 4시30분에 마치는 줄 알았던 은행이 오전 8시에 출근해야 하고, 밤 9시까지 문을 닫고 일한다는 사실도 실감나게 몸으로 느꼈습니다.

3. 제가 처음 발령 받은 부산지점은 인원이 120명이었고, 처음 일을 배당받은 일이 돈을 헤아리는 일이고, 이 업무를 하는 정사대도 8명이나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돈만 헤아렸고 어떤 고객은 리어카에 돈을 싣고 오는 경우도 있고 버스회사는 동전을 20-30자루씩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동전을 헤아리는 짤짤이라는 나무판도 재미있고 주판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비치된 계산기가 지금의 큰 복사기처럼 크고 소리도 요란하였습니다. 수표를 발행하기 위해 체크라이트라는 기계로 금액을 일일이 찍었고 고객이 오면 고유 구좌번호를 외워 카드를 뽑아 통장과 함께 NCR42라는 기계로 인자를 해 주었습니다. 송금을 보내기 위해 시외전화로 환 복기부호를 부르는 책임자의 목소리가 높았고, 텔레타이프 실에서 연방 드르륵 드르륵하는 기계소리가 들렸고 구리로 만든 번호표를 받고 돈을 지불하는 창구 직원의 목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졌고 당좌계에서는 미처 입금이 못된 고객의 교환 결제를 연장하느라 시장처럼 시끌벅적하였습니다.

4. 그때가 40년 전입니다. 그리고 40년을 은행원으로 살아 왔습니다. 정직하고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그러나 공부도 하고 사진이나 등산 등 취미생활도 하면서 이렇게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