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믿음-3
육(肉)에 속한 사람과 영(靈)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롬 8:4-11).
로마서 8장에는 영을 좇는 사람과 육을 좇는 사람을 구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은 자연인 한 사람 내부에서 병행 존재하는 내부 속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인 한 개인을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이 육신의 일을 좇는 자이면 육에 속한 사람이고 영을 좇으면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구분한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했습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고 굴복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다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자에게 대한 말씀인 것 같지만 실상은 신앙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라고 호칭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한 말씀이고 이로 보아서 예수 믿는 자도 육신에 속한 자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좇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며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며 하나님보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를 우상화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지 세상 사람과 똑 같이 사는 사람으로 신앙을 장식품처럼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사람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를 진정 영접치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만일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롬 8:9)"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못하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여 성령이 거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성경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영이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여 육신대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여 육신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인 가운데 너무나 많은데 그리스도를 믿고 그 속의 영은 구원받고 살았으나 그 속의 혼이 변화 받지 못하여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혼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한 사람입니다.
영이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혼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영이 회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대로 이끌어가려는 혼과 육신의 정욕을 죽이려는 영과의 내부 갈등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렇게 육에 속한 사람은 불신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지만 육신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에 치우쳐 살며 갈등하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의 주인이 된 사람입니다. 육신의 정욕적인 행실을 죽인 사람입니다. 혼이 추구하는 육신적인 생각을 버린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혼을 십자가에서 못박아 버린 사람입니다.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입니다. 이 글에서 추구하는 부활의 영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상태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너의 생각이나 의식인 혼은 아직 모르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성경의 질문입니다. 너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한 상태인데 이 사실을 왜 모르고 있느냐 하고 로마서 6장 전반부에서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분석해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사람도 자신에게 일어난 이 변화를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영이 새 것이 되었는데도 우리의 육은 이 사실을 모르고 육에 치우쳐 옛 사람처럼 살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질문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연합하여 새롭게 거듭난 사람은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예수의 영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점점 의식의 단계인 혼의 분야에까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우리의 육적인 옛 사람이 점점 변화되어 우리의 혼도 예수를 닮아 가는 새것이 됩니다. 문제는 이 변화의 정도나 변화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어떤 사람은 단기간에 이루지 못하고 일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이 이미 거듭났어도 육신의 생각은 여전히 변화를 받지 못하여 육신에 치우쳐 삽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죽을 때 혼의 의식이 변화되어 자신이 주님과 연합되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고백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부활한 사람은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의식의 세계에까지 인식하고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러나 영(靈)의 변화나 육(肉)의 변화는 시간적으로 간격이 있습니다. 때문에 육적(肉的)인 분야에 속하는 혼의 작용인 의식(意識)은 아직 예수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사는 부활 신앙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롬 6::2-11). 그리고 이 사실을 믿음의 법칙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여기라"고 합니다.. "자신이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처럼 여기라" 고 말합니다. 나에게 특별한 체험이나 계시가 없더라도 "그렇게 여기라"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함께 죽고 무덤 속에서 사흘만에 함께 부활하는 체험이 없을 지라도 "그렇게 된 것처럼 여기라"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체험(體驗)의 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체험은 우리가 막연하게 느낄 수도 있는 예수를 실제적인 인격체(人格體)로 접(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확신을 강력하게 의식하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강력한 체험이야말로 믿는 자들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고 이러한 체험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신앙 인으로 하여금 주의 영광과, 주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 인에게 체험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떤 경우에나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지적 한대로 체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구원받지 못했다고 오판(誤判) 한 구원파(救援派)같은 이단의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경우에나 체험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와 연합한 부활 신앙을 깨닫지 못하는 신앙인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찌하여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고 성경이 질문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내적(內的)상태는 아무리 변화가 있을 지라도 외적(外的)인 의식(意識)의 세계에서는 명확하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질문이 우리에게 암시(暗示)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고백하였을 때 그 사건으로 우리의 영이 변화 받아 혼의 작용인 의식의 세계에 이 사실을 밀어 올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와 함께 연합을 느끼고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이 부활 신앙의 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적인 영의 변화인 부활의 경험이 외적인 혼의 분야인 의식에 세계에 도달해야 우리가 부활신앙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이 부활의 경험이 외적인 혼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은 체험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부활의 체험만이 진정한 체험이고 다른 체험은 체험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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