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2
그러나 이 체험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죄악에 빠진 생활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 한대로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감격을 맛보기 위해서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갈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인간을 그릇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릇이 깨끗하여야 귀히 쓰임 받는다(딤후 2:20,21) 하였습니다. 그릇이 더럽다는 것은 죄의 때가 묻어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릇을 깨끗이 씻지 않고 그냥 계속 사용하면 음식 찌꺼기와 기름때가 엉켜 붙어 말할 수 없이 더러워집니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찌꺼기와 기름때가 엉겨붙고 쩔게 됩니다.
오랜만에 그릇을 씻어 깨끗케 하더라도 잘 씻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도 회심하여 하나님께 온 자는 그릇이 깨끗케 될 때까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가 어렵습니다. 때에 쩔고 더러워진 그릇은 잘 씻어지지 않아 씻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죄가 많고 오랜 세월 죄에 찌든 자는 자신의 남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런 곳에서 소모시키는 허무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寶血)로 덮어서 가려져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데는 많은 장애가 있고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릇이란 그 만든 재질에 따라 깨지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깨끗케 씻어도 온전한 그릇의 모습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그릇의 기능을 감당할 수도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나아갔더라도 오랜 시간 죄악 중에 헤매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분 깃을 다 탕진하기 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회복하기 힘들도록 인생의 그릇이 다 망쳐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분 깃이나마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분 깃을 다 탕진한 탕자의 경우는 더 이상 물려받을 분 깃은 없는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에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贖良) 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 말씀대로 자기의 모든 죄악과 허물로 발생한 저주(멸망, 형벌, 질병, 가난 등)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소멸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실패와, 가난과, 질병과, 재앙과 ,우상 숭배의 침투, 전쟁의 위험과 환난 등이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 중에서 행하는 자에게 오는 저주라 하였습니다(신 28:1-68).
그러므로 죄악 중에서 저주를 불러온 인생은 오직 저주를 속량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 밑으로 가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찍부터 하나님과 연합하여 죄를 멀리하고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靈) 육(肉)간에 복된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맏아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분 깃을 물려받고 하나님의 보장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태 신앙이나 일찍이 어릴 때부터 신앙을 생활화한 사람들의 신앙이야말로 참으로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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