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중생(重生)의 관계-2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육신은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영은 만드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기(生氣)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시므로 인간이 생령(生靈)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창 2:7). 하나님의 생기가 인간의 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생기의 일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하나님을 닮은 존재는 인간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제에서도 영이 우선이고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부분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구원의 단계도 영으로부터 시작해서 혼의 단계를 거쳐 육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단계에서도 먼저 영이 구원받아 그리스도화(化)됩니다. 다음에 우리의 생각이나 의식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 예수를 닮아 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도 마지막 날에 예수와 연합하여 부활하여 구원받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역사도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받는 중생(重生)의 체험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님의 역사가 단계적으로 인간의 영(靈)의 부분에서 혼(魂)의 부분인 의식 안으로 들어 올 때에 우리가 중생의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함으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소낙비 같은 체험, 즉 죄를 통절히 회개하고 몸부림치는 격렬한 체험을 했을 때만 구원을 받은 것이냐 하는 의문(疑問)이 들게 됩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이고 신중히 연구해 볼 문제입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강한 체험도 있습니다.
반면에 오순절 사건 때 사도 베드로의 일장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장면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마음의 찔림을 당하고 회개하였다 하였습니다. 보통 중생의 체험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죄악에 대한 통절한 회개의 모습인, 울음과 몸부림은 보이지 않습니다(행 2:37-41). 그들에게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애통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회개할 때 나타내는 절박한 모습이 없습니다, 즉 소리를 지르며,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옷을 찢으며, 통절(痛切)하게 회개하는 모습은 없습니다.(단 9:3, 수 7:6, 느 9:1, 겔 27:30,31).
예수를 믿고 받는 은혜인 구원의 의미와 중요성은 매우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회개하는 모습은 그 당시의 신앙 관습으로 보아 재를 무릅쓰고 굵은 베를 입고 통곡하며 옷을 찢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통회(痛悔)하지 못하고 오직 마음에 찔림을 받아 형제여 어찌할꼬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끝내고 사도들의 세례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단지 마음에 찔림을 받고 예수를 배척한 것을 뉘우친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신앙 고백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세례식 때에 입교하는 자의 신앙 고백과 별 다른 차이점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날 세례식 때에 세례 받는 자의 신앙 고백이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했으면 이 당시의 회심(悔心)한 유대인과 별다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좀 더 연구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체험과 단계는 성령 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로 개인차가 많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중도 회심한 사람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죄악에 대한 통절한 회개를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죄악을 대속 하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이 중생의 체험만이 진실하고 유일한 체험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태신앙(母胎信仰)이거나 어릴 때부터 신앙을 생활화하여서 심령이 비교적 깨끗한 사람은 중도 회심한 사람처럼 회개할 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통절한 체험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살다가 중도(中途) 회심한 사람은 죄를 느끼는 회개의 경험도 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사함 받는 감격과 은혜도 비례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자연히 체험의 정도도 강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모태 신앙으로 죄와는 멀리하여 건실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적은 체험, 적은 은혜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여 평가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으므로 받는 은혜입니다. 회개를 강하게 하고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회개의 체험이 없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인간을 만나듯이 만나지 못했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강한 체험으로 믿는지 약한 체험으로 믿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감옥 생활하던 사람이 출소(出所) 한 후에 느끼는 해방감과 기쁨은 정상적인 시민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맛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이 다음부터 새 사람이 되어서 정상적인 시민 생활을 영위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시민으로 편입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수한 체험이 그 사람에게 무슨 특권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 많은 사람이 많은 죄를 회개할 때 느끼는 강한 회개와 체험이 무슨 신앙의 특권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죄를 지어 강한 회개의 체험을 하던지 적은 죄를 지어 적은 회개의 체험을 하던지 죄사함 받는 것은 마찬가지요 구원의 은혜는 동일합니다.
이러한 강한 체험을 위해서 일부러 죄를 짓는 삶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감격을 맛보기 위해서 일부러 죄를 짓고 감옥에 갈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강하게 느끼기 위해서 죄악에 빠진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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