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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죄(罪)에 대한 단상(斷想)-5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07:34

죄(罪)에 대한 단상(斷想)-5  
 
하나님이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도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 같다. 부모가 자녀에게 피와 살을 전해서 자녀를 잉태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생기(生氣)라는 구성요소로 인간의 영(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일부분이, 인간의 영이기에 하나님은 인간들을, 즉 인간의 영을 자신의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 것 같다.

 

인간을 자신의 자녀같이 사랑하는 존귀하고 거룩하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인간대신 바쳐가면서 인간을 구원하셨는데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고 이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사건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성경(요일 4:7-10)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광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까지 베푸신 사랑은 실감(實感)이 안 된다. 우리는 5분 동안만 마시지 못하면 죽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우리가 애쓰며 구하지 않아도 공기는 대기 중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해도 너무 많아서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공기에 대해서 인간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 같은 이치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모르듯이 하나님의 사랑에 별다른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은 좁고 편협하여 너무도 크고, 너무도 중요한 은혜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의 대기가 오염되어서 비용을 지불하고 공기를 호흡할 수 있을 때에야 인간은 공기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영이 지옥에 문 앞에 서있을 때에 인간을 지옥에서 건지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할지 모른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깨닫게 하여 주셔야 체험할 수있는 은혜인 것 같다.

 

16.하나님의 애통(哀痛).

 

하나님이 애통(哀痛)해 하시는 것은 죽으면 썩어서 흙이 되는 인간의 육신의 죽음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인간의 영이 멸망의 지옥 불덩이에 빠져서 영원한 고통에 빠지는 것을 애통해 하신 것 같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여기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인간의 영을 하나님은 그냥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인간의 영을 구원하신 것이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는 생명이다. 생명이 상실된 후에 돈이나 명예나 그 어떤 세상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생명을 잃은 그 인생에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보다 귀중한 가치(價値)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칠 수 있다. 자신이 지닌 능력이나, 재물이나, 타인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타인을 위하여 이러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이나 능력을 전부 내놓기는 힘들다. 일부는 나눌 수 있어도 자신의 소유를 전부 나누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자신의 재산을 전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정신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신이 이룩한 전 재산을 남을 위하여 기증(寄贈)하였을 지라도 자신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재산은 자기 인생의 일부이지 자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부는 자신의 생명이다. 생명이 끝나면 다른 어떠한 가치 있는 것도 그 자신의 인생에서는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오직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만이 자신의 전체를 바친 사람이므로 세상에서는 이를 가리켜 의인(義人)이라고 존경하고 흠모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존귀한 호칭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호칭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호칭이다. 세상에서 떠받드는 영웅(英雄)이나 위인(偉人)이나 성인(聖人)이나 열사(烈士)라도 남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인 생명을 희생한 의인(義人)보다는 못하다. 의인 속에 들어있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정신, 위대한 영혼이 이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을 가장 존경하고 흠모한다. 자신의 전부를 희생으로 바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피와 희생(犧生)으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인간을 구원할 길을 마련하신 것은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의롭고 선한 분은 하나님 뿐이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쳐서 인간을 살리고 인간과 화목(和睦) 하기를 원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롬5:8-10).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수 노릇 하는 인간이, 인간의 영이, 영영 헤어날수 없는 지옥의 불에서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애통(哀痛)이,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던지게 하였다고 성경은 강렬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 증거가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인 인간들은 자신을 반역(反逆)하고 자신을 떠나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과 원수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과 원수가 된 인간을 위하여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지으신 광대(廣大)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바친 것은 기이(奇異)하고도 놀라운 사랑이다. 인간이 자동차를 만든 조물주이지만 자동차가 고장나면 폐차처분을 하지 자동차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자동차는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든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창조주 자신을 희생한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앞에서 논증(論證)한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의 영을, 자신의 분신(分身)처럼, 자신의 자녀(子女)처럼 사랑하였기에 이런 희생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 같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사랑이고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이 가장 순수하고 고귀하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보면 하나님도 이런 사랑으로 인간을 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17.하나님의 보편적(普遍的)인 사랑.

 

다만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눈 자신의 자식에만 국한된다. 자신의 자식에 대하여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대하지만 남의 자식에게는 이러한 사랑이 없다. 이는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영을 자신의 분신인 자식으로 여기고 사랑하시기에 차별이 없다. 인간 개인간의 차별을 넘어서서 차별 없이 보편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중심 사상중의 하나이다. 이점은 다른 가르침이나 종교에서 인간의 신분제도(身分制度)를 만들어 놓고 인간을 차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간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랑하는 보편적(普遍的)사랑은 하나님이 보여주는 사랑의 특성이다. 인간의 좁은 감정과 편협한 정신활동인 이성(理性)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별하고 기이(奇異)한 사랑이다.


다만 영의 활동인 영적 지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바친 의로운 분이므로 가장 최고의 존경과 찬사(讚辭)를 받는다. 이 사랑에 감격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그리스도의 사도(使徒)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복음의 정신에 따라서 인간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바쳤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여 하나님의 피로써 이루어낸 구원의 복음(福音)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장 원하시는 뜻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이루어낸 구원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저주의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까지 인간을 사랑한 사랑에 대하여 반역하는 것으로 가장 큰 죄다.

 

18.소돔과 고모라 같은 성 윤리의 타락.

 

지금 세상은 날이 갈수록 윤리와 도덕이 타락해지고 있으며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부패와 타락이 극심해지고 있다. 인간이 바른 삶을 살도록 지도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점점 벗어나서 인본주의(人本主義) 신앙으로 변질되고 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청교도(淸敎徒)들이 세운 아메리카도 이제는 성경의 말씀을 무시하고 세속과 연합하여 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성적 타락을 교회에서 용인하는 것이다. 이혼을 금지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할 뿐 아니라 말세 심판의 징조인 동성애(同性愛)를 허용하여 교회에서 동성간의 결혼식까지도 허용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말세적인 타락상을 외국의 예라고 넘기기엔 한국의 타락해지는 성 윤리와 세상풍습이 언제 교회에까지 침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도 불과 1950년대까지는 성 윤리와 성도덕이 비교적 건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50년만에 이렇게 변질 될 줄이야 그 당시 사람들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윤리도덕의식은 이혼을 하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웠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그 당시 여러 번 이혼을 많이 한 유명 여배우에게 분노한 시민들이 계란을 던졌던 방송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연예계 인물에게도 허용할 수 없었던 성도덕의 부패에 대한 저항은 그당시 미국인들의 보수적이고 건전한 윤리의식을 보여준다. 이러했던 미국의 성도덕이 불과 50여년 만에 이렇게 타락한 것은 인간의 타락의 속도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9.성경교육의 폐지로 초래한 미국 성 윤리의 타락.

 

이렇게 타락한 성도덕의 원인을 여러 면에서 찾지만 그 증에서 유력한 원인중의 하나로 공립학교에서 실시하던 성경교육을 1960년대 초에 폐지한 것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카톨릭 출신인 케네디 대통령이 종교의 자유에서 어긋난다고 폐지한 성경교육은 어린 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관을 수립할 기회를 미국 민의 다음세대에게서 박탈했다.

 

인격이 형성되고 인생관을 확립해야할 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훈육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서 인간의 사상과 정신과 인격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근대 미국 시민들이 보여준 건전한 사회관과 국가관은 성경교육의 영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청소년기의 성경교육으로 인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야할 기회를 잃어버린 다음 세대들이 급속히 타락하고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성경교육으로 훈육 받아 보수적이고 건전한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구세대들과 성경 교육을 받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건전한 인격형성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약과 성적방종과 타락으로 병들어 가는 미국의 젊은 세대를 보면 성경교육이 인간의 인격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성경교육의 폐지를 막을 수 있었다면 미국 민들의 성도덕의식이 이렇게까지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점에서 보면 케네디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으로 인하여 미국 민들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였지만 미국의 건전한 발전에 대하여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선거풍토가 이십세기 중반부터 발달한 영상문화의 영향으로 인하여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국민들의 인기투표 하는 식으로 변질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으로 미남 배우 같은 풍모와 유창한 연설로 국민의 인기를 모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선택한 케네디는 영화배우 같은 풍모와 세련된 구변으로 미국 민들의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진정한 국가의 발전과 방향을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린 정책적 실수가 미국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키는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케네디보다는 보수적인 닉슨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성경교육의 폐지 같은 조치는 막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워터게이트 같은 정치적 허물은 있었을지라도 신앙적으로는 케네디보다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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