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에 대한 단상(斷想)-4
11.죄 속함의 법칙은 피의 제사이다.
인간의 죄를 해결키 위하여 하나님이 땅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하셨는가?에 대하여 간단하게나마 죄와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성경을 통하여 고찰해보기로 하겠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을 하나님의 동반자적인 존재로 만들었다고 앞에서 논급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선택을 함으로서 죄 구덩이에서 딩굴며 사는 인생이 되어서 성경(聖潔)하신 하나님과 교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 덩어리에 묻혀 살아도 인간을 외면 하실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죄악에 묻혀 사는 인생들이라도 거룩한 하나님께 나올 길을 마련하셨는데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제사법(祭嗣法)이다.
이 제사법은 속죄제(贖罪祭)가 중심인데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 먼저 인간의 죄를 용서 받아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으므로 먼저 죄를 용서 받는 속죄제를 드렸다.
세상에서도 거지 생활을 하던 사람이 국가에서 제일 존귀한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어 만나러 갈 때에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만난다. 냄새 나는 누더기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목욕하고 단정하게 하여 깨끗한 모양으로 만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죄로 누더기가 된 모습으로 그냥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으므로 죄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 정결하게 하는 법이 제사법이요, 속죄법이다.
죄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인 속죄법은 "피로서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오직 피로써 만이 죄를 깨끗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하나님이 율법을 정하실 때에 죄를 깨끗케 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한다고 정하신 것이다. 죄는 사망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의 방법을 외면하고 인간의 방법대로 멋대로 살아감으로 발생함으로 결국은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의 댓가는 사망이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어야 한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죽으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게 되므로 인간의 죄 대신 양(羊)이나 소를 죽여서 그 피로 하나님 앞에서 뿌리면 죄를 용서 받도록 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은 피에 있다. 그러기에 피를 많이 흘리면 죽게 된다. 그러기에 피 흘리므로 생명이 죽게되는 것이고 제사 드린 사람은 죄의 몸이 죽게 된다는 의미가 있었다.
양이나 소는 본능에 사는 동물이므로 인간처럼 제멋대로 죄를 짓는 존재가 아니다.하나님이 프로그래밍 한대로 본능에 살므로 죄가 없다. 그러므로 이 죄없는 양에게 인간이 안수하여 인간의 죄를 전가(轉嫁) 시킨다. 그리하여 이 양을 죽여서 피를 뿌리면 인간대신 흘린 양의 피가 인간의 죄를 속한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다. 죄없는 짐승을 죽이고 짐승의 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서라도 인간과의 교제를 원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고대 제사법의 핵심 사상이다.
12.완전한 속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 졌다.
이 제사법은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법이었지만 불완전한 제사법이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죄를 범하면 죄가 하나님 앞에 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려 양을 죽여서 피를 흘리면 죄를 용서 받아 죄인을 면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곧 죄를 범하는 삶을 일상화 하고 산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다음 제사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함 받기 전에는 또 다른 죄를 범하고 살게 되므로 여전히 죄인의 몸이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법으로 죄를 용서 받는 짧은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죄 구덩이에서 먹고 딩굴므로 곧 죄인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죄인의 모습으로 살수 밖에 없다 인간이 한가지 죄를 범하면 그때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수가 없다. 인간은 마음속으로나 입으로 행위로 항상 죄를 먹고 마시는 삶을 살게 되므로 제사법으로 모든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 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 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10)"
위의 구절을 간단히 해석하여 보면 율법의 제사로는 인간의 죄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다. 인간이 제사드릴 때의 잠시 동안 만 지나면 항상 죄인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제사로는 온전함을 얻지 못하므로 온전히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원한 제사를 마련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제물(祭物)이 되어 자신의 목숨으로, 피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면 인간의 죄가 사함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피를 흘리고 목숨 바쳐 제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할 때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흘리며 그 때 그 때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오직 하나님이 친히 피를 흘려 나의 죄를 위한 영원한 속죄물이 되었으므로 이를 믿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구하면 나의 죄가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죄가 생각날 때마다 입술로 죄 용서를 구하면 죄를 사함 받아 죄없는 의로운 인생이 되므로 온전하게 하는 속죄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한다는 진리는 이러한 죄 속함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리고 죽은 것은 이러한 온전한 속죄제사를 이루기 위한 것이요, 죽은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되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인간이라면 죽음에서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고 부활하신 하나님인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를 믿는 사람도 같이 부활 한다는 약속도 이 부활 사건에는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13.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하나님의 구원방법.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 받는 다른 종교와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만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이 없는 것은 어떤 고상한 이론과 종교 철학이라도 비 본질적인 것이요,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특징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죄와 민족과 국가의 죄와 저주의 덩어리를 소멸하고 진정한 구원과 해방의 길을 제시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뿐이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은 냄새 나고 썩어가는 죄악 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한 죄 덩어리로 세상은 오염될 때로 오염되어 발 한 발자국 옮겨 놓기도 힘들고 부패한 죄악 덩어리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숨쉬기 조차 어려운 상태인 지도 모른다. 개인의 죄나 민족과 국가의 죄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어려운 형편에 있을 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를 바라보며 그의 은혜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그에게 나아갈 때에 우리는 그 몸에서 흘린 피가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어 죄악덩어리로 가득찬 병든 이땅을 고치며 나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보혈(寶血)의 강수(江水)가 되고 생명수(生命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구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죄악에 대한 심판에서 나 자신을 건지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악 덩어리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길 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마련 하신 길이기 때문이다.
홍수 때에 의로운 사람인 노아와 그 일족만 살아나고 다른 인간들은 다 죽었다. 이렇게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려도 의로웠던 노아의 자손들은 그 조상과는 달리 여전히 죄악을 양산 하는 타락한 삶을 반복했다. 이로 보건대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의 죄악과 저주의 덩어리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결말은 영원한 파멸 뿐이었다. 민족과 개인의 육신의 삶에도 파멸의 심판이 오지만 개인이 죽은 후에 다가오는 영원한 파멸이 인간에겐 더욱 심각한 문제 였다.
13.인간의 영(靈)은 하나님과 동질성(同質性)이 있다.
원래 인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신은 썩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만 만드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속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것이 인간의 영(靈)이다. 그리고 이 영은 어떤 물질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기록되어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7)"
이 말씀은 흙으로 사람의 육신을 지었지만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생기(生氣)로 이루어진 것을 말해준다. 사람의 코에 하나님이 직접 생기를 불어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생기를 인간에 불어넣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의 속 사람인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진 것이란 의미는 하나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일부분이 들어와서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누어준 생명이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일부분에 속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하나님의 속성을 지녔다. 그러기에 흙으로 만든 육신은 죽지만 영원하신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구성 요소인 생기로 이루어진 인간의 영은 죽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인간을 만들 때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근거는 인간이 존귀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었다는데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형상이 하나님 모습인지 다른 무엇이 하나님 모습인지 잘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속 사람인 영은 하나님의 생기, 즉 하나님의 일부분인 생기가 들어 왔으므로 하나님을 닮은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것으로 이루어 졌으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것이고 하나님의 속성을 보이니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인간의 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간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루어졌기에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동질(同質)의 것이다. 하나님과 동질을 이루는 부분이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알게 되고 믿게 되는 모든 작용은 인간의 영의 활동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과 전혀 구성요소가 다른 것이기에 아무리 하나님을 알려고 하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육신의 두뇌활동에 기반한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의 구성은 몸(肉)과 혼(魂)과 영(靈)으로 구성되었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는데(살전 5:23) 몸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육신으로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혼은 인간의 육신의 작용중의 하나인 두뇌 작용에서 일어나는 정신 활동을 말한다.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이성(理性)의 작용을 말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흙으로 이루어진 두뇌활동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영적인 상황은 이해 못한다.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거나 느끼는 것을 기초로 작용하기에 육신의 세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부분으로서 육신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동질적인 요소가 있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믿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인간이 종교성(宗敎性)이 있어서 신(神)을 찾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의 작용 대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영의 활동이므로 이 영의 작용이 멈춘 사람은 아무리 이성으로 탐구하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육신에 기반한 감각을 기초로 한 이성의 활동이기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은 육신적인 감각에 기초하는 이성과는 별도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육신의 감각을 초월하여 느끼는 영적지각(靈的知覺)이 있다. 이러한 영적인 지각을 통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려면 영이 살아나야 한다. 태초에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 함으로서 하나님과 격리되었고 이로서 인간의 영은 죽은 상태와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존재든지 활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간의 육신이 활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인간은 음식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 받는데 이 영양은 에너지를 말한다. 인간이 활동의 자원으로서 영양소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도 활동을 하려면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하는데 영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인간의 영이 하나님과 격리되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에너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인간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에너지를 공급 받지 못하므로 죽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영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죽지 않는다. 그러나 에너지를 공급지 못한 상태이기에 활동을 멈춘 가사상태(假死狀態)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영이 가사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이해 못한다. 오직 육신적인 두뇌동인 이성만 있으므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 세상적으로 지혜롭다고 하고 현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성의 활동이 강한 사람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이성이 발달해도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없으므로 영적으로는 무식한 상태이다. 육적인 지혜는 뛰어날지 몰라도 영적인 지혜는 어리석기 때문이다.
세상적으로 유명한 대학자(大學者)나 철인(哲人)이 하나님에 관하여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의 영이 죽어있는 관계로 영적인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세상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로 하여금 세상에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영이 살아나면 영적인 지혜가 발생하여 세상에 지혜가 많은 학자나 철학자가 모르는 영적인 세계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전혀 우리 인간의 이성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있는 영의 활동이다.
머리로서는 이해되지 않고, 이성으로서는 전혀 믿을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영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을 살리고 깨워서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도 전혀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14.인간의 구원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위와 같은 말씀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활을 설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너희들이 즉, 에베소 교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죽었던 자에 대한 것은 육신의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고 살아서 이 편지를 읽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므로 이것은 육적인 죽음을 말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죽음을 말한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려고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영을 살리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함이라는 뜻이다. 영이 살아야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이 구원의 섭리인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게 되므로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영을 살리는 것이 우선임을 기록되어 있다.
"살리는 것은 영(靈)이니 육(肉)은 무익하니라(요 6;63)"
이 말씀은 인간의 중심은 영원한 속성을 지닌 영이고 죽으면 썩는 육신이 아니므로 우선 영을 살리고 구원하는 것이므로 육신의 작용은 구원에 도움이 못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이 살아야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므로 영의 활동이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육신에 기반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깨달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육과는 별개의 존재인 영의 작용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므로 살리는 것은 영을 살리어야 되고 영이 살면 육은 자연히 영을 따라 구원 받는 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15.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분신(分身)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구원은 영의 구원이 주가 되고 육신은 종속적으로 되어서 육신은 마지막 부활 때에 영과 결합되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 그러므로 인간 구원의 중요한 대상은 인간의 영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존귀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일부분이요, 하나님의 분신(分身)과도 같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요, 하나님의 분신과도 같으므로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同一視)하시고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신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하나님 자신의 몸에서 분리 되서 나간 것이 인간의 영이 되므로 하나님의 일부분이 되는 것으로 인간으로 말하면 자신의 자녀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근본 이유는 자신의 피와 살을 기초로 이루어진 존재가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신이고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각별한 애정이 발생하게 된다. 남의 자녀에게 느끼지 못하는 뜨거운 사랑이 친 자녀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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