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경제이야기

[스크랩] 비주류 논객 전성시대, 경계인의 경고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18:54

 

 

비주류 논객 전성시대,

경계인의 경고

 

 


  바야흐로 비주류 경제 전문가 전성시대다. 올해 리먼브라더스사 파산을 경고한 미네르바는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아예 그를 ‘내가 아는 한 최고의 경제 스승님’이라고 칭송했다. 지난해 중국 펀드 과열을 경고한 시골의사는 방송 진행과 출간, 그리고 강연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다.

 

  반면 주류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환 위기 당시에도 비슷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주류 경제학자와 이들이 이끄는 경제 씽크탱크가 위기 경고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신 위기를 경고했거나,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득세하고 있다. 적어도 시장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란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제계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무엇일까? 일단 이런 구분 자체를 거부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20년째 경제계를 들여다보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 구분의 존재를 부인하기는 힘들다. 이론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두 집단 사이의 교류는 전혀 없다. 주류는 경제 진단에 대한 독선적 권위나 정책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독보적 존재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유수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정부 관련 위원회나 산하 기관의 직책을 맡고 있다. 경제부처나 청와대의 직책을 맡은 적이 있거나 맡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진짜 주류는 양적인 면에서 소수다. 곧 주류가 될 것이라고 자부하는 잠재적 주류를 빼고 나면, 실은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경제학계를 포함한 경제계에 비주류가 오히려 다수를 차지한다. 주류가 소수이고, 비주류가 다수라는 점은 지극히 역설적이다. 그런데도 소수에 권위와 영향력이 집중된다. 그들의 빈곤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감안하면 언제나 지나치게 후한 보상이 주어진다. 요즘 같은 구조적 위기 상황에 취약한 주류 경제 전문가들을 보면, 그들에게 잘못 매겨진 몸값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학자인 엘리스 앰스덴은 이미 한국 경제계의 이런 기형적 구조를 개탄한 바 있다. 당시 그가 펴낸 소논문, ‘영미식 자본주의의 망령이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는 국내 경제계에서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을 'ATKE'(미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경제학자·America Trained Korean Economists)라고 정의했다. 이들의 숫자가 일본에 버금갈 만큼 많아서인지, 한국은 일본과 달리 영미식의 자유방임주의적 접근법만 고집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이런 무조건적인 모방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 후 외환 위기를 맞았고, 또 10년만에 글로벌 금융 위기 와중에 우리 경제가 유독 더 출렁거리고 있다. 권위와 영향력을 독점한 진짜 주류는 ATKE 가운데서도 소수일 뿐이라는 점을 빼고 나면, 앰스덴 교수의 경고는 상당히 예지력이 있는 것이었다.

 

   현재의 비주류 경제 전문가 전성시대는, 시장 원리상 불가피한 주류의 몸값 재조정 과정의 일환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할까? 비주류의 몸값은 또한 제대로 매겨질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부작용과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에 대한 섣부른 전망을 함부로 던지는 이들이 너무 많아져서다. 전망의 대부분은 지극히 비관적인 것들이다. 비유하자면,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결정적으로 빗나갔다고 쪽집게를 자처하는 점쟁이들이 지나치게 출몰하는 격이다. 점쟁이들은 기본적으로 비관을 판다. 맞으면 예지력을 입증받지만, 틀리더라도 안도하는 마음에 잊게 되는 그런 부류의 전망이다. 그들이 변고(變故)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메카니즘 덕에 역술가의 절반 이상이 1994년 김일성 사망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자신은 예견했노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비주류 경제 전문가들로 인해 비관 상업주의가 횡행하게 된다면, 이는 우리 시장이나 대중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바라건대는, 지금과 같이 경제의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주류의 엄밀성과 비주류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만나야 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불길한 경제 예언서들의 틈바구니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장점을 두루 갖춘 경제 전망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갓 출판돼 내 앞으로 배달된 책 한 권이 운 좋게도 그런 부류다. <글로벌 위기 이후>(이콘, 2008년 12월)라는 책이다. 저자는 증권가에서 이름 난 애널리스트인 홍성국 대우증권리서치센터장. 국내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우증권 리서치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소수의 주류로 분류될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주류도 아니다. 시장을 들여다보는 일을 본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계인이다. 그래서 통찰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대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디플레이션(deflation) 시대를 예고해왔다. 2004 이후 그가 낸 <디플레이션 속으로>와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 같은 책이 그 근거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금융 파생상품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가 디플레이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미국과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경고였다. 비록 디플레이션의 시발점은 그의 전망과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의 말대로 ‘21세기 최초의 호황은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호황으로 귀결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왜 그의 경고는 주류 경제학자들보다 더 신랄하며, 비주류 경제 전문가들보다 더 불길한가? 현재의 경제 위기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글로벌 위기여서다. 이 점은 현재의 위기를 1930년대의 대공황보다도 더 위험해 보이게 하는 요소다. 적어도 당시는 선진국만의 문제였다. 동시에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주기적인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위기이다. 따라서 미국을 정점으로 한 전세계가 시스템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답을 찾기 전에는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이 상당 부분을 국제 정치경제학에 할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세계 금융시장과 국내 자산시장에 대한 시나리오까지 다루다 보니, 이 책은 전례 없는 성격이 되고 말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분야에서는 세계 경제권의 대결을 다룬 레스터 서로우 교수의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의 진화와 변혁을 다룬 애마뉴엘 월러스타인의 세계 시스템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기존의 틀로 보면 좀처럼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법도 하다.

 

  그러나 비상한 시기는 비상한 시각을 요하는 법이다.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얽매여 나무만 들여다보지도 말고, 그것이 싫다고 숲만 외치지도 말 일이다. 현재의 위기를 읽는 데 실패한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나서는  통찰력과 상상력 부재를 더 이상 전공이니 방법론이니 하는 말로 둘러대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경고하는 데만 급급한 비주류 경제 전문가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당장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의 바닥이 얼마가 될 것이냐 보다 중요한 이슈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류, 비주류를 따지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 돌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때면, 차선(車線)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

출처 : Lifestyle Report
글쓴이 : 김방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