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경제이야기

[스크랩] 경제전문가에게 경제 전망을 물으신다면,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19:10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은

왜 참수당할까?>

 

기술적 분석에 ‘감’ 더해 전망

혼자 맞는 것보다 같이 틀리는 것이 안전

 

 


  지난 해 11월 말 경 한 중견 기업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올해 경제 전망을 제시할 때의 일이다. 당연히 내용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고, 금융기관은 못 미더웠다. 불확실한 저성장 경제가 불가피한 가운데 금융 불안까지 예고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전망이 경영진 귀에는 사뭇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긴 당시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여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 불황의 전조를 알리는 난, 여러 모로  기분 좋은 취객들에 찬물을 끼얹는 방해꾼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경영진 가운데 한 명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대화를 청했다. 그는 내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도 그런 비관적 전망을 무색하게 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 대통령의 탄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 경제는 엔진(성장 동력)과 엔진의 힘을 차체에 전달하는 전장품(분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자동차와 흡사하다. 가속 페달(경제 정책)을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잘 안 난다. 운전자 한 사람 바뀐다고 이런 차가 속도를 낼 리는 만무하다. 이것이 당시 내 주장이었다. 결국 말문이 막힌 이 임원은 쐐기를 박듯 한 마디 하고 돌아섰다. “어쨌든 그런 부정적인 전망은 더 이상 안 돼요!”

 

  이 얘기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경제 전망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을 암시하는 말로 뇌리에 남아 있다. 경제 전망은 결국 그걸 소비하는 대상이 있고,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경 중국 펀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무렵, 내가 진행하는 경제 방송에서는 이 이상 과열 현상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경제의 거품이 꺼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중국 펀드의 인기는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경고는 열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소비자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전망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점이 중요하다. 오늘날에 와서 당시 비슷한 경고를 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그렇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뒤늦은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소비자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경제 전망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오죽했으면 경제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의 존재 의의가 기상 예보관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경제 전망이 대충 감으로 아무렇게나 한다고 오판해서는 곤란하다. 기상 예보가 자주 틀린다고 해서 예보관이 아무렇게나 예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은 슈퍼 컴퓨터까지 동원하지만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는 기상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할 따름이다. 경제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경제 예측 모델이다. 대부분의 경제 전망기관들은 자신들만의 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요 변수들과 그 변수들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상수로 이뤄진 연립방정식 모델이다. 어떤 모델들은 수백에서 수천 가지 변수와 과거 자료에서 얻은 엄밀한 가중치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경제 전망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기술적인 분야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전망치는 기관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모델을 통해 나온 수치를 시장의 분위기나 심리를 고려해 약간씩 수정한다. 물론 다른 기관들의 전망치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각 전망 기관은 나름의 색채를 띠게 된다. 경제 부처의 전망치는 목표치에 근접해야 하는 탓에 가장 낙관적일 때가 많다. 한국은행은 비교적 보수적인 편이다. 민간 씽크탱크의 전망치는 해당 연도가 다가오면서 워낙 수정하는 경우가 많아 전망으로서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상태다.

 

  놀라운 사실은 경제 전망의 성과가 모델에서 나온 수치를 윤색하는 과정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복잡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느냐 여부는 정작 중요하지가 않다. 시장의 분위기가 심리를 사심 없이 능숙하게 반영하는 기관이나 전문가일수록 전망치가 실제치에 더 가깝다. 올해 상반기 유가 전망에서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도, 금융 불안과 그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지 유가 예측 모델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시장의 분위기나 심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경제 전망 기관이나 전문가가 가장 쉽게 빠지는 오류가 바로 구조적 요인를 놓치고 주기적 분석에 매몰되는 것이다. 미래 역시 과거의 경제 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예측하는 경우다.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기술적 분석에 매달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일단 시장이나 경제가 어떤 구조적 요인에 의해 정상 궤도를 벗어나면 이런 전망은 완전히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만다. 지난 3년간 매 상반기에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봤던 기관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경제 회복 주기를 믿었고, 더욱이 그에 부합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던 일부 소비 관련 지표에 현혹됐다. 돌이켜 보면 그런 지표들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소비 여력이 생긴 상위 계층이 좀 써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경제 주기에 매달리느라 경제의 큰 변화 양상을 읽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 전문가들이 쓰는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과거의 수치들을, 그것도 다양한 돌발변수(disturbance)를 제거해 순화된 형태로 사용한다. 미래 예측의 근거로 이런 지표를 쓸 경우는 두루뭉수리 한 전망치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기상 이변을 제외한 과거 기상 자료를 넣어 기상 예측을 한다고 하면, 결코 기상 이변을 예보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설령 기상 이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감을 예보에 포함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대중이 그 예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경제 전망을 해야 하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경영 컨설턴트의 역설(consultants' paradox)라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영자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 경영 컨설턴트들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만일 이들이 경영자가 수용하기 힘들 만큼 엉뚱한 조언을 한다면, 경영자들은 컨설턴트들을 평가절하 한다. 그렇다고 경영자들이 수용하기 쉽도록 편한 조언만 하면 다 아는 얘기라고 폄하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 컨설턴트들의 선택은 중간 지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컨설팅 보수를 지불하는 경영자의 입장을 더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가능하면 경영자의 판단에 가깝게 조언하되 약간 색다른 얘기만 가미할 뿐이다. 경제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정확한 전망을 했을 때의 편익보다는 홀로 틀려 크게 망신당할 위험을 더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기꺼이 틀린 경제 전망을 수시로 내놓는 무능 동맹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소비자가 정부든, 기업이든, 그리고 국민 전체든 매 한가지다.

 

  한 달여 전쯤 한 기관이 주최한 내년 경제 전망 세미나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세션에서 못 볼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이 자신 있게 자신은 현재와 같은 주식시장 상황을 예견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는 지난해 말 우리 코스피지수가 3000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제기랄. 당장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끝내 참고야 말았다. 그렇다. 비이성적인 대중과 광기에 휩싸인 시장은 붕어만큼이나 짧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쉴새없이 경제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처 : Lifestyle Report
글쓴이 : 김방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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