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저자 : Robert D. Putnam[1]
서평 글쓴이 :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공고화됨에 따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평가기준도 다양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선거권, 표현의 자유와 같은 형식적, 양적 민주주의나 독재에 대한 반대로서의 민주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 질적 민주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민주주의 제도가 단순히 양적 형식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질적 성과(Performance)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논한 책이 바로 Robert D. Putnam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이다. 이 책은 90년대 쓰여진 정치학 서적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인 푸트남은 1993년에 저술한 『Making Democracy Work』라는 저서에서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에서 지방정부의 정책추진 성과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사회적 자본’ 축적의 차이 때문이라는 점을 논파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간의 협력적 행동을 활발히 촉진함으로써 사회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장치를 말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에 의하면, 이탈리아 북부 지방이 보다 효율적인 통치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세부터 계속되어 온 시민사회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평적이며 자발적인 시민들의 활동과 시민단체의 존재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을 밝힌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적 연결체’, ‘사회 전체의 인간관계의 풍부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지역의 자생력(力),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OECD에서는 푸트남의 사회적 자본의 개념을 “그룹 내부 또는 그룹간의 협력을 용이하게 하는 공통의 규범이나 가치관, 이해를 동반한 네트워크”로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제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극대화하기 위해[3] 푸트남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시민들간의 의사소통 밀도나 시민과 행정간의 파트너쉽이 활발할수록 풍요로운 사회가 형성된다는 인식을 반영한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푸트남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시민이나 지역 전체의 연결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지역사회의 자녀교육의 성과 향상이나 치안, 지역경제발전, 지역주민의 건강 개선 등 경제사회면에서 바람직한 효과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박영사, 2006.2, 안청시 옮김, 347pp, 18,000원)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소개해보기로 하자.
푸트남은 권위주의적이며 중앙집권적인 이탈리아 정부가 1970년에 들어서면서 지방자치제도 시행을 통해 지방정부로 권한이양을 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지자체 시행 후 20여 년 동안 각 지방정부가 경제성장, 행정 효율성, 정치제도, 사회문화적 면에서 어떤 성과를 나타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계량분석, 질적 연구, 역사적 분석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규명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로의 제도개혁과 시행과정에서 이탈리아 지방정부들은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중앙정부에 집중되었던 주요 정책들의 예산편성과 집행 권한, 경제적 성과 및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지방정부에게로 넘어갔다. 그런 가운데 각 지방정부는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안정성, 산업정책, 개혁입법 현황, 복지정책, 관료의 반응성 등과 같은 지표를 통해 드러난 성과는 지방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북부 이탈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사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의 원인에 대한 기존의 성장인과론(경제발전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제도의 유효성도 높다) 주장을 비판하면서, 방대한 계량적,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지방정부간의 성과 차이가 각 지역마다 상이한 시민참여, 사회적 신뢰수준, 협력적 정치문화 유무, 제도적 안정성 등을 의미하는 이른바 ‘사회적 자본’의 수준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즉 지방정부 및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의 성숙도가 제도의 유효성과 구성원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론과 현실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선 이론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배타적 자유, 원자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공동체의 존재와 역할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 간의 이론적인 모순과 대립을[4] 실천적으로 해소해주고 있다. 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지역의 시민일수록 더욱 자유주의적인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민주주의 제도의 유효성(성과)를 측정하던 형식적인 거시적, 제도적 분석 방법론과는 달리, 시민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와 민주주의 제도적 성과가 반영된 질적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분석방법론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기존의 양적 민주주의 발전에서 중시되었던 경제성장이나 산업기술과 같은 경제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신뢰수준,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구축과 문화적 성숙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이 민주주의의 질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사용하면 할수록 고갈되고 희소해지는 경제적 자원이나 자본과는 달리, 사회적 자본은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공급과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오히려 사용하지 않으면 고갈되고 희소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자본이 선순환적인 자기증식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자본의 현실적 효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못한 지역에서는 권위적인 지방정부조차 사회적 자본 부족으로 인해 정책의 효율적 집행이 불가능해지고 오히려 정부간섭의 강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지역은 지방정부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지역주민의 협조와 법집행에 대한 자율적 협력으로 효과적인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와 시민사회는 대립적 또는 상쇄적이라는 주장(즉 이들의 이해관계는 항상 불일치하며, 어느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약화되어야 한다고 보는 주장)과는 반대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민사회와 민간영역(시장)의 역할 증대가 반드시 정부역할 축소를 의미하거나 정부의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풍부한 사회적 자본과 제대로 설계된 제도 속에서는 양자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자본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제도개혁도 어려운데, 일견 추상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칫하면 사회적 자본에 대한 회의적 생각을 갖게 한다. 저자는 14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탈리아 역사분석을 통해 사회적 자본과 역사적 전통이 단기간에 형성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 이탈리아의 지방자치제도 개혁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지방자치제 도입과 같은 제도의 변화가 정치관행의 변화 및 사회적 자본의 형성 그리고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사회적 자본이 저절로 생겨나거나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given)이 아니라 섬세한 제도의 설계와 효과적인 정책추진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축적된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5]
이러한 사실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민주주의 제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과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경영과 생존은 리더쉽, 기술개발, 효율성을 통한 이익극대화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조직내 및 조직간 신뢰수준,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과 효과성, 노사관계, 기업 이미지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자본도 중요하다.
IMF사태 이후 한국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자본을 육성하고 활용하기보다는 눈 앞의 단기적 이익을 우선하여 오히려 사회적 자본을 잠식시켜 왔다. 인적 자본에 대한 고려 없이 비용절감만을 고려한 구조조정으로 조직원들간의 신뢰와 기술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문화 형성에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더 이상 기술개발이나 신성장동력 발굴이 필요하다는 슬로건 강조만으로는 타개할 수 없는 구조적인 성장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6] 특히 사회적으로 선도적 위치에 있는 기업의 조직문화와 고용행태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기업의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의 효율적 운용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발전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과 확산을 위한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제도나 정치시스템뿐만이 아니라 기업조직, 사회적 네트워크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면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협력게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와 같이 공적 조직과 권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고 사적 인맥과 집단이기주의로 사회적 기회비용과 폐해가 막대한 경우에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기적이며 투기적인 시세차익 추구행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어떠한 정책도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참여정부가 보여준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국민들을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가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킨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을 믿고 실천하면 손해를 보는 현실 속에서는 단지 사회적 자본의 필요성만을 강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적 자본은 섬세한 제도의 설계와 효과적인 실천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공고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자본 축적을 위한 제도개혁의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을 효과적으로 축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자본의 효용을 자각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제도개혁과 정책추진을 통하여 시민들에게 경험적 학습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효용성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축적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자본의 필요성과 기반구축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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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D. Putnam 은 하버드대학교 정치학 교수로서 시민참여, 공동체, 민주주의의 질 문제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로 명성을 쌓은 학자이다. 저서로는 ‘Making democracy work(1993)’, ‘Disaffected democracies(2000)’, 'Bowling alone(2000)' 등 다수가 있다. 특히 미국의 공동체 쇠퇴를 주장한 'Bowling alone(2000)'은 베스트셀러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
[3] 실리콘밸리 등 산학연 지역혁신클러스터는 산학연간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공유 및 비용절감, 인적 자원 공유 등 지역내 사회적 자본 증가를 통한 기술혁신 및 산업발전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책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4]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스테판 뮬홀·애덤 스위프트, 김해성·조영달 옮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서울: 한울아카데미, 2001) 참조
[5] 제도적 장치가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시키는지에 대한 비교 연구로는 H. Farrell, 2005, "Trust and Political Economy: Institutions and the Sources of Interfirm Cooperation,"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38.
[6]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우석훈, 박권일 공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이다 (개마고원, 200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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