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지순례이야기

[스크랩] 아라드(Arad)로 가는 사해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22:46

11. 아라드(Arad)로 가는 사해길(1996년 8월 9일)

 

 

 

 1)종려의 성읍 여리고

(1)여리고의 자연

 우리 일행은 북편의 시험산을 바라보며, 옛날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 갔던 고대 가나안의 관문 도시였던 여리고로 올라갔다. 여리고(Jericho)는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8km, 성도(聖都) 예루살렘에서 동북 약 29km에 위치한 도시로 예수당시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유대 제 2의 큰 도성이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요르단 서안의 이스라엘 점령지구로서 PLO(파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자치구역이다. 그 변두리 한 곳엔 PLO자치군의 천막병영이 있었다. 우리 순례단은 그 자치지역의 외곽으로 돌아서 지나가며 쿰란으로 가는 길 한 중턱에서 잠시 멈추어 넓게 펼치어 있는 여리고 평원을 바라 보았다. 여리고는 뜨거운 건기(乾期)의 지중해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갈색 광야의 한가운데에 그린 카펫(green carpet)처럼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 숲의 도시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일찍이 성경에서 종려의 성읍이라고 일컬었다.(신 34:3) 여리고 의 지세는 북쪽의 헬몬산과 남쪽의 아카바만까지 약 450km에 이르는 긴 요단 계곡지구대(溪谷地溝帶)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평지이다.이 지구대는 요단계곡을 지나 아프리카 동안(東岸)의 켄야(Kenya), 탄자니아, 모잠비크까지 이른다. 이 지구대 중 사해(死海, Dead Sea)는 해발 -390m로서 지구 위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약 40km 서쪽, 해발 800m의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에 비하여 약 1200m나 낮은 요단 계곡은 지중해 특유의 아열대성 기후로, 여름은 건기이고, 겨울은 우기이다. 이러한 급격한 단층지형에 의한 고도차이에서 만들어진 급격한 대기압차로 종종 여행객들이 잠시 청각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 여리고는 예로부터 비옥한 토질과 넉넉한 수원(水源)으로 오렌지, 바나나, 대추야자등 과일나무가 풍성하다. . 이곳은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지만 겨울과 봄에는 각종 꽃들의 향기로 진동한다고 한다.

 -해설:

 지구대: 지구의 균열(龜裂)로 생긴 함몰지대다. 즉 거의 평행을 이룬 단층사이에, 지반이 꺼져서 생긴 낮고 기름한 골짜기이다. 요단 계곡이 지구의 육지중 가장 낮은 지구대다.

 

 (2)여리고의 역사 이야기

 (가)여리고 평지의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41년 1월 10일 (BC1406년경)에 긴 40년의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길갈에 도착했고(수4:19) 41년 1월 14일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었다. 그 다음 날에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가 그쳤다. 그 해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다.(수5:10-12)

(나)여리고성의 정복

 이스라엘 백성의 여리고 평지의 도착은 이제 가나안 정복을 위한 긴 7년(BC 1406-1390)의 첫출발 지점에 섰을 뿐이었다. 가나안 정복은 그들이 헤쳐왔던 광야 40년의 시련 못지 않는 태산의 장벽들이 첩첩히 가로 막고 있었다. 이때 하나님은 군대장관(강림하시기 전의 예수님이라는 설이 있음)을 보내셨다.(수5:13-15)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시작되는 가나안 정복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후원군으로 군대장관을 보내신 것이다. 먼저 첫 장벽인 여리고성을 이 군대장관의 작전 능력으로 무너뜨렸다.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일은 하나님의 군대장관의 말씀(여호수아는 대언자임)에 따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제일 앞에 서고, 그 다음에 무장군인이 따르고, 그 다음에 언약궤를 모시고 가고, 그 뒤를 이스라엘 백성이 따르며 매일 한번씩 엿새동안 여리고 성을 돌고 제7일에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백성들은 다 큰 소리를 외칠 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수 6:1-20). 이때 여호수아가 초토화된 여리고성을 보고 예언하길, 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 장자를 잃을 것이고,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고 했다(수6:26). 이 일이 있은 약 550년후 북왕국 이스라엘 제7대왕 아합시대(BC874-853)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다.(왕상16:34)

(다)엘리사의 샘터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 여리고에 선지자 학교가 있어서 이들이 방문한 적이 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왕하2:15-19) 그런데 여리고는 성읍의 자연은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해서 토산물이 잘 익지 못하고 떨어졌다고 한다. 이 사정을 들은 엘리사가 물샘에 소금을 넣어 물을 고쳤다고 한다.(왕하2:19-20) 그래서 이샘을 '엘리사의 샘'이라고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이 샘은 옛 여리고의 길 건너편에 있고 당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셨을 뿐만 아니라 여리고를 지나시며 전도사역을 행하셨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마셨을 것이라고 한다.

(라)시드기야왕의 종말

 남왕국 유대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20대왕, BC597-586)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 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에 토성을 쌓아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18개월간)포위하였더니, 4월 9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의 양식이 떨어졌다. 갈대아 군사(바벨론 사람들)가 예루살렘 성읍을 둘러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고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사이의 왕의 동산 곁문길로 도망하여 아라바길(사해로 내려가는 요단계곡)로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갈대아 군사가 시드기야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 미치매 왕의 모든 군사가 왕을 버리고 흩어졌다. 갈대아 군사가 시드기야왕을 사로잡아 립나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서 저의 목전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는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갔다.(왕하25:1-7) 이 비극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BC627-570)와 에스겔(BC597-545)선지자에 의하여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을 경고(예언)했음에도 그 백성이 순종하지 않은 죄의 결과였다.(렘32-34장, 37장, 겔 12:1-16)

       

       

                                  [종려의 성읍 여리고 들]

 

      

          [여리고의 종려나무]                         [엘리사의 샘물]

                                             (1분당 400 이상의 샘물이 솟아 난다고 한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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