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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 Beginning Of the Middle Ages (중세의 서막) -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28. 06:56

 

Beginning Of the Middle Ages (중세의 서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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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샤를마뉴대제의 사진입니다. 자신이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 때문인지 말에서 기상 있게 손을 뻗습니다. (?)

 

 

 저번 시간에 피핀의 쿠데타까지 언급하였습니다. 오늘은 프랑크 왕국의 몇 가지 사건들을 소개하고 바로 중세의 시작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편 어떤 분이 꼬리말 다신 거에 카롤루스 마르텔에 대해서 말하셨는데요, 유럽의 계보는 상당히 헷갈립니다. 저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다음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카롤링거 왕조의 계보입니다.

 

 아, 헷갈린다! 피핀, 피핀, 피핀!

 

 피핀 1세(카롤링거 가문 최초의 시조이나 가문사람은 아님,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궁재) -> 피핀 2세 (중(中) 피핀이라 불림, 카를 마르텔의 아버지, 최초 카롤링거 가문 출신의 궁재 * 왕은 아님) -> 카를 마르텔 (이슬람 침입 격퇴로 유명한,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궁재) -> 피핀 3세 (소(小) 피핀이라고도 불림, 쿠데타로 왕위 찬탈, 카롤링거 왕조 출신의 최초 왕) -> 샤를마뉴대제(카를대제, 카를로스대제라 불림, 프랑크 왕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왕)

 

 여기서 주의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피핀 1세는 카롤링거 가문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딸 베가와 수도원의 우두머리인 주교(아르눌프)의 아들, 안젤기제라는 사람과 결혼시켜 탄생한 것이 카롤링거 ‘가문’입니다. 그래서 피핀 2세부터 카롤링거 ‘왕조’ 출신 최초의 궁재라고 부르는 겁니다.

1세, 2세, 3세 따지는 것은 아마도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순서대로 붙이는 것이 현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그 당시 역사학자들이 10세기 사람일지도, 8세기 사람일지도, 아니면 100년 전 사람일지도 모르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머리 복잡하시면 그냥 안 외우시는 게 낫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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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묘사한 그림>

 

 이슬람을 막아라

 

 각설하고 카를 마르텔. 프랑스 말로 샤를 마텔. 라틴어로 카를로스 마르텔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망해가던 프랑크 왕국을 향해 달려온 이슬람의 폭풍을 잠재운 인물인데요. 아까 앞에서 말한 그 꼬리말 달아주신 분 말처럼 아마도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카롤링거 왕조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입니다.

 

 중세 이슬람교도를 칭하는 말인 사라센인들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스페인으로 넘어왔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명목상으로만 프랑크 왕국의 영토였고 실질적인 무정부상태였기 때문에 사라센 군은 이 지역을 쉽게 평정하였습니다. 그리고 732년 8월, 드디어 사라센 군은 당시 스페인(에스파냐)총독이자 유럽 침략의 앞잡이였던 압둘르 라하만의 주도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최남단의 보르도를 침략하였습니다.

 

 보르도를 지키던 아우데스(에우데스라고 발음하는 데도 있음)는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아우데스는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당시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궁재 직을 맡았던 카를 마르텔이 나서게 됩니다. 대군을 이끌고 간 마르텔은 10월에 투르(뚜르)와 푸아티에에서 극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막아냈습니다. 유명한 투르-푸아티에 전투입니다.

 

 유럽 여러 사서에서는 이 전투를 매우 신성화하고 있지만, 이때의 승리는 그다지 큰 규모의 승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승전 후에도 15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추방까지 계속하여 이슬람 세력들은 산발적으로 침략을 감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사건은 그다지 중요한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를 마르텔은 이 사건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백년 전쟁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공격한 푸아티에 전투와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샤를마뉴, 그는 누구인가?

 

 프랑크 왕국은 잠시나마 프랑크 제국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카롤루스 대제 통치 시기입니다. 하지만 웬걸. 그가 죽자마자 바로 그 ‘제국’은 분할되었습니다.

 

 카를로스 대제(샤를마뉴 또는 카를대제라고 불립니다)는 아버지인 피핀 3세(대체로 소(小) 피핀이라 불립니다)가 751년에 힐데히리 3세를 폐위시킨 후 17년 만에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사실 실질적인 권력은 모두 궁재였던 피핀 3세에게 있었고 이때 일어난 쿠데타는 명함만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즉 피핀 3세는 2편에서 언급했듯이 교황령을 바쳐 교황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북부를 평정하고 독일 남부 바이에른을 굴복시켰습니다. 따라서 샤를마뉴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선조가 차려준 밥상에 앉아 식사를 했다’는 식 말이죠.

 

 그는 초반부터 대단한 포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라센인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에스파냐 국경에 방어를 강화시키고, 주변 야만족을 철저히 박멸시켰습니다(?). 800년, 레오 3세는 샤를마뉴를 위해 깜짝 파티를 엽니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교황령으로 오라는 말을 들은 샤를마뉴는 생각지도 못하게 황제로 대관하게 되었습니다.

 

 말년에는 그는 로마문화를 부흥시키고 각지에 수도원(지금 말하자면 학교의 기원)을 세워서 카롤링거르네상스를 열었습니다. 뭐, 그가 죽으면서 바로 끝났지만요.

 

다음 시간에는 Beginning Of the Middle Ages (중세의 서막) -2)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출처 : 삼국지 커뮤니티
글쓴이 : 7로군근로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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