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드림의 화신
오바마의 본명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Barack Hussein Obama Jr)’이다. 그는 케냐 출신 미국 유학생과 캔사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1961년 8월 4일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무슬림으로 성장했던 아버지는 결혼할 때 종교를 버렸다고 한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백 결혼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2년 뒤 이혼했다. 그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Stanley Ann Dunham)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을 했고 오바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오바마의 청소년기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이 파경을 맞게 되자, 7살 때 하와이로 돌아와 외조부모 슬하에서 고독하게 자랐다.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중간이름이 ‘후세인’이어서 아이들로부터 이슬람교도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정체성으로 고민하면서 술, 마약에 손을 대는 등 어두운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사는 동서양의 접점, 하와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돕는 ‘알로하 정신’을 체득했고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암울했던 경험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이를 성장동력으로 바꾸어 일어섰다.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틀대학에 입학하고 인종차별정책 항의집회에 참가하면서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옮겨 1983년 콜럼비아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로 돌아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철강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슬럼화가 된 시카고 교외 흑인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했다.
낙후된 주거환경, 범죄와 실업증가 등 지역문제 해결에 앞장서면서, 법률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하버드법대에 진학했다.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법률학술지 편집장이 되었고 1991년 수석졸업의 영예도 얻었다. 보통 하버드법대를 졸업하면 최고연봉을 받고 뉴욕의 초대형 법률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달랐다. 시카고로 돌아와 자선봉사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고 지역인권변호사로서 명성을 쌓아 갔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였다. 오바마는 2000년 로스앤젤레스 스태플센터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당시를 회고하면, 렌트카로 어렵게 대회장에 도착했지만 입장권을 낼 돈이 없어서 TV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해 그는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경선에 나갔다가 고배를 마셨다. 2002년 주상원의원에는 재선되었지만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로 주목을 받게 되었던 그해 2004년 11월, 같은 흑인인 공화당 앨런 키스(Alan Keyes) 후보를 누르고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다. 키스 후보가 27% 득표에 그친 반면 오바마는 70%의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오바마는 역사상 세 번째 흑인 연방 상원의원으로 기록되었고 이 때부터 그의 ‘흑인대통령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 출 처 : 오바마 시대의 세계를 움직이는 10대 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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