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저술한 ‘대화’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김용옥이 그 당시 대우그룹 총수였던 김우중과 둘이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대화를 나눈 내용을 엮어서 출판한 책인데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김용옥이 이리에 있는 원광대학 운동장에서 김우중을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김우중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고 말하면서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생면부지의 김용옥에게 절을 드렸다는 것이다.
김용옥이 고명한 학자이기는 하지만 일면 서생에 불과하고, 김우중이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는 잘 나가는 일국의 재벌이었고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도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용옥은 1948년생이고 김우중은 1936년생이니 자기 보다 12살이나 젊은 사람에게 절을 드렸던 것이다.
나는 김우중의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식견과 혜안, 겸손할 줄 아는 자세와 도량에서 깊은 감동과 감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김우중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서 나를 낮추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오래 된 일이지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초등생일이지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드릴 것이다.”
내가 또 존경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문학가 사르트르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 않아서 소설책을 읽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서 사르트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큰 사위로부터 사르트르가 지은 ‘구토’라는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구토(오바이트)’라는 제목이 역겹기도 하고 시간도 없어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다가 사위의 성의를 생각하여 대충 넘겨보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사르트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문학가이기보다는 세계적인 정치에 정열을 불태웠던 사람으로 68세 때 실명이 되고 그런 와중에도 정치 활동을 계속하다가 75세(1980년)에 죽었다고 한다.
샤르트르를 존경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샤르트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지만 나도 사르트로처럼 정치적인 성향이 좀 있어서 ‘대통령 자격시험’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17대 대선에서 ‘대선공약연구회’ 명의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에게 정책 제안을 한 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샤르트르가 59세(1964년) 때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는 데도 수상을 거부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여 안달을 부리는 세상에서 노벨상을 거부할 수 있는 양심과 명리(名利)에 연연하지 않고 살았던 샤르트르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존경하는 분 중에 성철 스님이 있다. 스님이 세상에 남긴 유산은 떨어진 장삼과 지팡이와 염주가 전부였다고 한다. 내가 스님을 존경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가 무소유로 세상을 살았다고 해서가 아니다.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내가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쌓은 죄업은 수미산보다 높다.”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용기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수미산은 우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스님의 참회를 한 마디로 풀이하면 “나는 우주 최고의 사기꾼이었다.”는 뜻이 된다.
무소유로 세상을 살았다는 고매한 스님이 살아생전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비참하기 그지 없는 말을 남기고 운명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명리(名利)로 이해한다. 스님이 모든 것을 버렸지만 명리를 놓지 못하는 바람에 완전 무소유로 살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나에게 “명리도 버려라.”는 주옥같은 가르침을 주었으니 어찌 스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사르트르와 성철 스님과는 언강생심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분들의 명리를 상상도 할 수 없고, 명리를 걱정할 필요도 없지만 혹여 나에게 손톱만큼 만큼의 명리가 있다면 나는 샤르트르가 갔던 길을 가고 싶다.
딸들에게 보낸 러브레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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